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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빈곤층만 쥐어짜는 걸까, 매섭게 관리해야 맞는 걸까

어떤 노숙자와의 만남

[취재파일] 빈곤층만 쥐어짜는 걸까, 매섭게 관리해야 맞는 걸까
● 노숙자 이 씨 

이 모 씨가 지금 '있는' 곳은 서울 도심 거리의 한 모퉁이다. 있다고 쓴 이유는, 산다고 할 수 없어서다. 이 씨는 노숙자다. 

이 씨가 나를 만나준 건 처음 소개를 받은지 2주가 지나서였다. 어느 패스트푸드점 뒷편 골목으로 오라고 했다. 약속보다 한시간쯤 일찍 도착해 장소를 확인하러 가봤다. 허름해뵈는 골목 주변엔 식당과 술집, 카페들이 즐비했다. 오가는 이들도 많았다. 머리가 허연 노인 한 명은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마 이 씨는 골목 안쪽 어딘가 쪽방 같은 데 있나보다' 하며 발길을 돌렸다. 

한 시간 뒤 다시 그곳으로 갔다. 아까 그 노인이 그대로 같은 곳에 앉아 있었다. 이 씨에게 전화했다. 신호음이 세 번 울리고 이 씨가 전화를 받았다. 그 노인이 이 씨였다. 70은 넘어 보이는 외모였는데 63세라고 했다. 

"어디 계시는 거예요?" 

(앉아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 있지요."

"아, 어디 방이 있는 건 아니고요?"

"네, 요즘은 날씨 괜찮잖아요."


원래 고향이 강원도라는 이 씨는, IMF 이후부터 집을 나와 이곳저곳을 전전하다 이 거리에 정착했노라고 했다. 

"그럼 어디서 주무시나요?"

"저기 모퉁이 가게에서요."

"아, 가게 주인이 양해를 해줘서 가게 문 닫으면 거기서 주무시는군요?"

"그게 아니라 몰래 자는 거죠. 가게 앞에서."


이 씨가 매일 잔다는 곳은 이 씨가 앉아있던 곳 근처에 있던 가게 앞이었다. 영업 끝나고 가게 문을 닫으면 그 앞에서 이불 깔고 잔다고 했다. 날이 밝으면 일어난단다.

좀 조용한 데 가서 얘기하자고 하니 바로 앞 골목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 골목 어귀엔 나무로 된 상자가 하나 있었고 낡은 등산용 배낭과 쇼핑백 하나가 걸려있었다. 상자 안에는 이불 2개가, 배낭 안에는 검정색 점퍼와 몇 가지 약과 통장, 종이 뭉치가 있었고 쇼핑백에는 수건 2장과 무가지 몇 장, 맥심 커피 3봉 등이 있었다. 

"짐이 또 있나요?"

"이게 전부예요. 추울 때는 이 잠바 입고요."

"식사는 어떻게 하세요?"

"거의 뭐.. 안 먹다시피하죠. 아침에 일어나면 막걸리 한 잔 먹고 그러고 밥은 건너뛰고."

"사먹을 돈이 없어서 안 드시는 건가요?"

"아니요, 없어서 안 먹는 게 아니라.. 사는 게 귀찮으니까. 근처에서도 점심 한끼 해결하려면 여러 곳 있어요. 저기 가도 주고 여기 길 건너 가도 조금 주고. 주는 데는 있는데 줄서고 이러는 게 귀찮고 창피해요. 차라리 굶고 막걸리 한 잔 먹고 말지. 그러다가 하루 한 끼만 먹어도 안 죽으니까."

"막걸리 값은 어떻게 하시나요?

"자고 일어나면 박스 주우러 다니죠. 하루종일이죠. 밤에도 뭐 도와주고.. 그러면 한 만원 벌이는 해요. 비오면 공치는 거고. 그거 해서 막걸리값 하고 담뱃값 하고 충당하고."


조금씩 모아놓기도 했다가 겨울에 추우면 쪽방 구해 들어간다고 했다.

이 씨는 퇴행성 관절염 때문에 다리를 절고 있었고 오랜 노숙생활에 간을 비롯해 몸 상태가 온전하지 않다고 했다. 앞니가 전부 없는 등 이 상태도 부실했다. 일반병원에는 가지 않았고 정 안 좋을 때면 노숙자를 받아주는 무료병원에 한번씩 들어갔다 나온다고 했다.
 

● 석 달 만에 수급자 탈락…"이달부터 안되니까 그런 줄 아세요."

집도 다른 재산도 없고 소득도 거의 없는 노숙자 이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아니다. 정확히는 석달간 수급자였다가 탈락했다. 2년 전쯤에 한 노숙자 단체가 신청을 도와줘서 한때 수급자가 됐었다. 그런데 석 달을 받았는데 넉 달째 구청에서 전화가 왔노라고 말했다.

"4개월 될 때 복지과에서 전화가 왔더라고요. 아저씨, 이달부터 급여가 안되니까 그런 줄 아세요. 이유가 뭡니까 하니까 그때까지는 우리 아들 혼자서 벌었는데 며느리 하고 같이 직장을 나가니까 소득이 많다 이거죠. 근로능력 평가라는 것도 있어요. 그것도 걸어다니기야 하니까 해당 안된다고 하고."

"아들한테 한달에 얼마씩이라든가 좀 받으시는 건 없나요?"

"이렇게 노숙하며 사는 자체를 알리지도 않았죠."

"아, 모르시나요?"

"그럼요, 내가 뭐 그거를 자랑이라고 떠들고 다녀요. 걔네들도 자기들이 벌어서 살고 결혼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보태줘야 하는 입장이지, 어떻게 달라고 그래요."

"아들과는 자주 만나시나요?"


"내가 집 나가고 걔를 우리 어머니가 키웠어요. 1년에 한 번 어머니 기일 때만 잠깐 봐요. 평소에 연락 안해요."


부양의무자인 아들과 며느리의 소득이, 이씨를 부양할 만하다고 판단돼 수급자에서 탈락시켰다는 얘기다. 실제 부양하는지는 판단의 근거가 되지 않았다.

"다시 정부 지원을 받고 싶지는 않나요?"

"누구나 욕심이야 다 같지. 그런데 법적으로 아직까지 안된다는데 어떻게 해요. 내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는 나보다 월등히 환경도 낫고 이런 사람도 받는데 난 그런 게 없단 말이죠."


이씨가 말한 '이런 사람'이 부정수급자인지, 아니면 이씨보다는 형편이 나은 저소득층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절대빈곤층 500만 명이라는데…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내놓은 <2014 빈곤통계연보>를 보면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조사했을 때 2013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인 절대빈곤층 비율인 절대 빈곤율은 시장소득 기준 11.7%, 경상소득은 7.7%, 가처분소득 9.0%, 소비지출 12.4%, 가계지출 6.6%다. 가처분 소득을 제외하고는 다 2012년에 비해 높아졌다. 대략 10% 전후라고 보면 5천만 인구라 할 때 5백만 명 정도를 절대빈곤층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007년 155만 명에서 2014년 133만 명으로 20만 명이 줄었고, 의료급여 수급자는 2007년 185만 명에서 2014년 145만 명으로 40만 명이 감소했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기초 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일부로 구성된다. 7년 사이 수급자 수가 저렇게 급감한 데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으나,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복지 재정 효율화와 부적정 수급자 선별과 관리에 주력한 게 주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료급여 수급자 중 차상위계층은 2008년 의료급여에서 건강보험으로 전환돼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단순히 수급자 40만 명이 줄었다고 할 순 없다고 설명했다.)

절대빈곤층으로 추정되는 500만 명과 수급자 133만 명, 혹은 145만 명, 무려 350만 명은 수급 대상에서 제외돼 있는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복지 사각지대'다. 

● "매섭게 관리해야 누수 낭비 없다"…3조 원 절감 목표

최근 제시된 정부의 정책 방향은 '복지재정 효율화'다.

4월 1일 이완구 총리는 국가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하며  "본질적으로 복지는 현장집행 단계에서 매섭게 관리해야 누수나 낭비가 없다", "정부는 ‘있는 돈이라도 알뜰하게 쓰는 노력’을 우선 하는 것이 납세자인 국민에 대한 도리"라며 중앙·지방이 함께 복지재정 효율화에 적극 나서줄 것을 지시했다. 올해 안에 복지재정에서 최대 3조 원을 절감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올해 전체 예산 중 보건복지 예산의 비중은 30%정도, 그중 안에서 기초생활보장 관련 예산은 30%의 8% 정도다. 

빈곤사회연대의 김윤영 사무국장은 정부의 복지재정 효율화 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건 엄청나게 넓은 사각지대를 방치하고 있는 거든요. 그 넓은 사각지대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에 대해 논의를 먼저 해야 되는데 정부에서는 의료급여 받는 사람을 좀더 조여보자 이런 구조로 계속 나가고 있는 거죠. 지금 의료급여가 굉장히 과잉소비되고 있다는 정부의 지적이 있는데 사실 의료 수급자들의 과다한 의료행위가 문제라기보다는 의료행위의 과다한 비용을 책정해 완전히 시장방임하고 있는 의료체계의 문제점이 더 크거든요.

완전히 방임된 시장이 얼마든지 이윤을 추구하게 만들어져 있는 이런 전달체계가 개선되지 않는 이상 의료급여자들은 아무리 쥐어 짜봤자 건강보험을 비롯해 재정이 나아질 수 있는 건 별로 없어요. 첫 번째로 지금 의료체계가 변화하는 게 필요하고 두 번째로 복지 사각지대 전부를 포괄할 수 있는 수준으로 의료급여가 커져야 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이 씨가 다시 수급자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부 정책도 그렇지만 이 씨 자신이 그럴 마음이 없다. 근처에 오면 인사 드리러 오겠노라며 이 씨와 헤어졌다.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절대빈곤율 10%는 허수일까, 정말로 그렇게 혈세를 빼먹는 부정수급자들이 많기에 계속 솎아내야 하는 것일까. 다음에 와도 그 자리에 이씨가 앉아있을까 등등. 날이 따뜻해져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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