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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태워진 태극기, 그리고 세월호 참사

자본의 수렁에 빠진 참사의 가벼움

[취재파일] 불태워진 태극기, 그리고 세월호 참사
백화점이 붕괴된 자리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습니다. 무덤조차 밟지 말라던 수 천 년의 민족 신앙은 부동산 광풍 앞에선 예외가 됐습니다. 500명의 희생은, 회사 수익을 위해 건물 구조를 마음대로 바꿨던 천박한 '자본 논리'의 대가였지만, 역설적이게도 대한민국 '부동산 자본'의 상징인 주상복합 아파트가 그 위에 세워졌습니다. 삼풍백화점 희생자 위령탑은 거대 자본에 무력하게 자리를 내줬습니다. 죽은 자에 대한 추모보다 산 자를 위한 경제 논리가 우선했기 때문이겠죠. 결국, 위령탑은 참사와 관련도 없는 양재 시민의 숲에 외롭게 서있습니다. 우리는 아무 일 없었던 듯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2014년 4월 16일, 그리고 지난 1년. 참사의 시작과 끝은 모두 돈이었습니다. 세월호는 조금이라도 이문을 남겨보겠다며 더 싣다가 중심을 잃었습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 선장과 임시직 승무원에게 수백 명의 목숨을 맡겼습니다. 이들에 대한 엄중한 처벌은 당연하지만, 끝까지 남아 승객을 구해야 한다는 도덕적 사명감을 월급 200만 원에 맞바꾸려했던 건 역시 과욕이었습니다.

문제는 공적 영역이었습니다. 해상 안전은 우리가 낸 세금으로 해경이 지키는 줄 알았지만, 구조를 주도했던 건 민간 수난구조 업체였습니다. 비영리 외주법인인 한국선급이 선박검사를 맡았고, 정부와 구조업체 사이에는 민관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해피아의 온상 해양구조협회가 있었습니다. 공적영역이 민영화, 외주화 같은 자본논리 앞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걸 우리는 참사를 통해 열공했습니다. 가만히 있으라했던 선장, 구조 업무에 소홀했던 해경, 대가에 눈이 멀어 편의를 봐준 해피아, 이들의 본질적인 문제는 천성이 글러먹었던 게 아니라, 책임의식과 도덕적 자원마저 고갈시켜버리는 자본 논리의 밑바닥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데 있었습니다.

결국, 실패의 책임은 사적 영역이 떠안았습니다. 사적 영역 말단에 있던 비정규직과 임시직 승무원들은 평생을 감옥에서 살아야 합니다. 사적 영역의 수장은 경찰의 추적을 피하다 변사체로 발견됐고 그 아들은 태권도 유단자 여성과 몇 개월을 도피하며 뼈 없는 치킨을 시켜먹다가 전 국민적 웃음거리가 됐습니다. 하지만, 공적영역이 지는 책임은 말단에 있던 해경 몇 명이 구속된 게 전부였습니다. 자본 논리는 공적 영역에 책임을 따져볼 근거조차 잃게 만들었습니다.

유족은 진상규명을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유족의 눈물을 소비할 대로 소비한 우리 사회는 그 요구마저 철저히 자본 논리로 해석했습니다. 배상을 받으려고 반기를 든 장사꾼으로, 장사를 합리적으로 하기 위해 정치 세력과 결탁한 영리한 이익집단으로 말입니다. 언론도 한 몫 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진상 규명'이라는 중심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참사는 여당과 야당의 정치적 논쟁거리가 됐습니다. 진상 규명의 첫 단추인 인양은 비싸다는 이유로 반대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지금 우리는 참사를 정치 쟁점의 최전선인 시위 현장에서 소비하고 있습니다. 유족을 정치 집단으로 해석하는 건 더 손쉬워졌고, 경찰은 동정 느낄 필요도 없이 물대포와 최루액을 뿌릴 수 있게 됐습니다. 태극기는 이렇게 불태워졌습니다. 유족과 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애국심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돈 때문에 참사가 시작됐고, 돈 때문에 참사는 잊혀 갔으며, 돈 때문에 희생은 매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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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했던 지난 1년의 모습입니다. 우리 사회는 안전 불감증, 관피아, 해피아 등 수많은 수사를 동원하며 참사를 설명하려 애썼지만, 그 중심을 꿰뚫고 있는 건 역시나 자본 논리였습니다. 백화점이 무너진 지 30년이 지난 지금, 지독했던 참사의 원인은 또 그렇게 자유를 얻었습니다.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참사 자리에 세워진 주상복합 아파트와 양재의 숲에 자리 잡은 위령탑은 잔인했던 지난 1년의 일그러진 자화상이었습니다. 돈에 살고, 돈에 죽어나갔던 우리 시대 신자유주의의 뒤안길을 오롯이 담아내고 있습니다.

미국 9.11 테러의 자리에는 추모 공원이 만들어졌습니다. 쌍둥이 빌딩이 있던 딱 그 자리에 건물 크기의 인공폭포가 생겼고, 그 주변엔 동판을 둘러 희생자 이름을 일일이 새겨 넣었습니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 그것도 세계에서 땅값이 가장 비싼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말입니다. 적어도 9.11 테러는 돈 때문에 잊혀가진 않을 것 같습니다. 과연 우리는 참사를 어떻게 다뤄왔던 걸까요. 또, 어떻게 마무리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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