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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성완종 살생부' 인물들은 떨고 있을까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가장 많은 서운함을 표명하며 '사정 1호' 대상으로 거명했던 이완구 국무총리가 성완종 메모에 이름이 적힌 사실이 알려진 지 열흘만에 사의를 표명했습니다. 성완종 리스트 첫 낙마입니다. 성 전 회장이 경향신문 기자와 인터뷰한 내용을 곰곰히 살펴보면 그가 정치인들에게 돈을 뿌렸다고 강조한 시기들에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선거철'입니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상황을 강조했습니다. 지난 2006년 9월 롯데호텔 헬스크럽에서 김기춘 전 실장을 만나 10만 달러를 전달했다며 시간과 장소, 금액을 정확히 밝혔습니다. 이어 2007년 대선 경선을 앞두고 허태열 전 실장에게 7억 원을 줬으며, 이 돈이 당시 이명박 후보와 경선을 치렀던 박근혜 후보의 자금으로 쓰였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명박 후보가 정권을 잡게 되고, 2009년 경남기업 워크아웃에 들어갈 만큼 자금난을 겪게 됩니다. 그런 악재 속에서도 성 전회장은 2011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에 선출되기 전후의 홍준표 경남지사에게 1억 원을 간접적으로 전달했다고 말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지만 한달 만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성완종 전 회장은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유력인사를 더 열심히 만났습니다. 2012년 대선 때 새누리당 조직총괄본부장이던 홍문종 의원에게 2억 원을 전달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향신문 기자와의 대화 녹취록 일부입니다.

"대선 때도 우리 홍문종 같은 경우가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잖아요. (조직을) 통합하고 이렇게 같이 매일 움직이고 그렇게 하는데, 제가 한 2억 줘서…. 이 사람도 자기가 썼겠습니까. 대통령 선거에 썼지."

성 전 회장의 기자회견과 그의 메모, 신문기자와의 인터뷰에 대해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살생부'라고 평가합니다.

"마지막까지 호소를 하고 마지막까지 구명운동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실패했습니다. 그럴 때 '아 내가 이사람들에게 어떻게 했는데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이 사람들만큼은 용서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는 하나의 살생부라고 보시면 됩니다."

사실 우리 국민들에게 정치인과 검은 돈의 커넥션은 그리 생소한 일이 아닙니다. 간략히 SBS 8뉴스에 소개된 기사를 추려볼까요.

- "한나라당이 97년 대통령 선거 전에  24개 기업으로부터 총 166억 7천만 원의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것으로 밝혀졌고…" <97년 대선 세풍사건>

- "총선 당시 진승현 씨의 돈 5천만  원을 받은 민주당 허인회 씨도 불러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2000년 진승현 게이트>

- "설 연휴 이후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한 여야 정치인 7·8명이 잇달아 검찰에…",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차떼기로 돈을 받은 것과 관련해…" <2002년 민주당 불법 대선자금 사건,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은 6억원도 성공한 사업가로부터 대선, 경선을 위한 필요자금을 순수하게 받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007년 파이시티 게이트>

선거 때마다 드러났던 이런 불법 정치자금은 어디에 쓰였던 걸까요? 취재팀은 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비용 예산안을 어렵게 입수했습니다. 법정 선거비용 제한액은 1억 2천만 원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 홍보물과 선전벽보물, 유세차량 1대를 운영하는데만 6천600만 원이 든다고 잡혀 있습니다. 전체 선거비용 제한액의 53%입니다.

그러면 가장 목돈이 드는 선거 사무소 임대료와 직원 인건비, 교통비 등은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답이 나옵니다. 또 정식 직원이 아닌, 예를 들면 자원봉사자 같은 이들에게 밥 한끼, 돈 한푼 주면 안되는 현행법 아래에서는 선거 조직을 운영하려면 검은 돈의 유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정말 어렵게 섭외한 전직 국회의원 보좌관의 고백입니다.

"자원 봉사자들의 경우 본인을 위해 도와주러 온 사람에게 밥 한끼도 못 주거나 뭔가 대가를 주지 않는다는 게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기 때문에 위법이지만 사실은 비용을 지급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러니까 선거사무소 개소식이나 이전식 등 이벤트를 마련해서 관련된 피감기관이라든지 이해관계자들이 축하하러 오도록 합니다. 그러면 사실은 별도로 마련된 방에서 서로 봉투가 오가는 겁니다. 보좌관 한명은 정책을 열심히 해도 다른 한명은 정치후원금 때문에 피감기관을 쪼는 경우도 있고, 주변에 후원금 걷으러 다니는 역할만 주로 하게 됩니다."

대선도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심합니다. 매년 중앙 선관위에서는 인구 증가율과 물가 변동률에 따라 대선 선거비용을 조정합니다. 이 비용은 15대 때 310억 원, 16대 342억 원, 17대 466억 원이었고 지난 18대 대선에선 560억 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액수 역시 어디까지나 '공식적' 액수라는 겁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의 말입니다.

"공식적인 대통령 선거 때도 560억 원이 상한선이라고 하면 여야가 선거가 끝나고 난 다음에 각 내역을 조사해서 중앙선관위에 신고를 합니다. 그건 공식 선거 비용입니다. 비공식 선거비용은 얼마냐? 알수가 없습니다, 이건. 각 시지부에, 도지부에 또 군단위 별로 수많은 조직과 직책이 다 있는데, 선거 때 돈이 들어가지 않으면 이 조직이 움직입니까? 공식 비용 가지고는 게임이 안 되는 거죠."

우리나라에선 정치자금 모으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일단 법인이나 단체, 외국인은 못 냅니다. 연간 2천만원 안에서 개인만 낼 수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는 1천만 원, 국회의원은 500만 원이 한도액입니다.

법이 이렇다보니 쪼개기 후원이나 기업의 차명 후원 등 이상한 방법이 동원되는 게 현실입니다. 정치권에 후원하는 방식에 따라 범법자가 되기 쉽습니다. 이런 엄격함이 물론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면 검은 돈을 합리화 하는 그릇된 인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참여연대에서 의정감시센터 소장을 맡고 있는 조성대 한신대 국제관계학 교수의 진단입니다.

"사실 민주주의에서는 돈이 들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어요. 적절한 선에서 후보자가 지출할 수 있는 정치자금을 조금 완화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지 검은 돈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거죠."

매니페스토 실천본부의 이광재 사무총장의 진단도 소개해 드립니다.

"정치자금과 관련해서 미국의 경우는 실시간 공개를 합니다. 그래서 투명성을 강화해 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선거가 다 끝나고 난 이후에 사후보고를 하게 돼 있습니다. 그렇다보니까 여러가지 편법적으로 모금을 하거나 편법으로 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죠."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의 정치자금법은 매우 엄격한데도 그것을 꼭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건 아주 약하다는 겁니다. 조성대 교수와 박상병 평론가의 말을 이어서 읽어 보시죠.

"과거에 불법적인 정치자금으로 정계를 은퇴했다는 얘기 들어보셨어요? 제가 알고 있는 한에서는 불법 정치자금 받아서 그걸 책임지고 정계를 은퇴했다는 소리를 못 들어봤거든요."

"우리 역대 선거를 보면 대선 때 문제가 있었던 사람들이 몇몇은 현역에서 의원직을 잃더라도, 대통령의 국정을 위해서는 크게 부담됐던 적이 없습니다. 그냥 넘어갑니다. 그러다보니까 이번 선거나 다음 선거에서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는 거죠."

정치에서 돈 문제는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맡깁니다. 문제가 되거나 걸리면 '혼자 안고 가는 것'이고, 안 걸리면 '실세'로 행세할 수 있습니다.

국민들의 시선은 이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2012년 대선 때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던 홍문종 의원 등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에 오른 여권 실세들로 모아지고 있습니다. 검찰 수사가 과연 시작될 수 있을지 또 수사가 제대로 진행될지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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