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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칼럼] 반둥회의, 우리의 대응은?

비동맹회의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논설위원칼럼] 반둥회의, 우리의 대응은?
반둥,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남쪽으로 150km쯤 떨어진 인도네시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입니다. 18세기 네덜란드 지배 시절 주변의 플란테이션 농업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해발 750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어서 연 평균 기온이 23.6도인 상대적으로 서늘한 기후 조건 때문에 살기 좋은 도시로 인식돼 있습니다. ‘자바의 파리‘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국제회의도 자주 개최돼 왔습니다.

이번 주 반둥에서 또 한 번 국제적인 이목을 끄는 회의가 열립니다. 아시아 아프리카(AA) 정상회의, 일명 반둥회의가 그것입니다. 이번 회의는 첫 반둥회의 개최 60년을 기념하는 행사입니다. 1955년 4월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정권은 세계사적으로 의미 있는 국제회의를 개최합니다. AA 정상회의, 사상 처음으로 제3세계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회의입니다. 아시아 아프리카 지역의 29개국 대표단이 참석해 평화 증진과 반식민주의 강령 등 10개항의 반둥선언을 채택합니다. 인도네시아는 이때부터 제3세계의 확실한 리더로 자리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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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회의에 대한 인도네시아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지난 2월에 반둥회의장을 찾은 적이 있었는데, 회의장에는 당시 주석단에 있던 수카르노 대통령 등 7인의 정상들의 밀랍인형이 전시돼 있습니다. 또 정상회의장이 그대로 보존돼 있고, 회의장 곳곳에서는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정상들의 육성이 흘러나옵니다. 회의장을 찾은 학생들은 교사의 설명에 귀 기울이며 제3세계를 이끌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배웁니다. 당시 참석했던 인사들의 면면은 화려하기만 합니다.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비롯해 저우언라이 총리(중국), 자와할랄 네루 총리(인도), 가말 압둘 나세르 대통령(이집트), 요시프 티토 대통령(유고) 등 이후 세계사를 주도하는 인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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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둥회의는 우리에게는 쓰라린 패배의 단초가 되기도 했습니다. 반둥회의는 이후 비동맹회의(NAM)로 발전하는 데, 60년대 이후 미소 양 블록 간의 냉전 상황에서 중간지대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1975년 8월 페루 리마에서 제2회 비동맹회의가 열렸습니다. 베트남 전쟁 종전 직후 회의가 열렸는데, 남북한 모두가 가입 신청을 했습니다. 이 회의에서 북한의 가입 요청은 가결되고, 남한의 가입 요청은 거부됐습니다. 베트남 대표의 태도가 결정적이었다고 당시 기사는 보도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주한미군 철수라는 북한 주장이 그대로 담긴 성명이 채택됩니다. 냉전 체제에서 남북 간 체제경쟁을 하던 우리 정부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패배였을 것입니다.

75년 8월 28일 자 당시 외무부의 성명에 그런 당혹감이 그대로 묻어납니다. 먼저 한국어 성명을 보면 ‘금번 회의가 한국의 가입신청을 지지하는 다수의 의견에도 불구하고 북괴 가입만 승인함으로써 균형을 잃은 결과적 조치를 취한 것을 심히 유감으로 생각하며 이같은 조치가 인류 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미칠 영향을 우려한다’라고 강하게 표현돼 있습니다. 영어 성명을 보면 ‘다수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가입신청에 대해 회의에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돼 있습니다. 북한을 북괴라고 표현하던 시절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어느 정도 냉정한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데 대내적으로는 외교의 실패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비동맹회의에 대한 강한 비난 어조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런 충격은 이후 오랫동안 이어집니다. 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는 동안 북한은 비동맹회의를 이용해 국제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남한은 늘 수세적인 처지에 몰려야 했습니다. 우리가 비동맹회의에 처음으로 참가한 것은 리마 회의 이후 22년만의 일입니다. 1997년에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비동맹회의 외무장관 회의에 게스트 자격으로 처음 참석했습니다. 이때는 이미 소련이 무너지고 동구가 소련권에서 이탈하는 등 엄청난 격변이 있은 이후여서 비동맹회의가 제3세계의 대표라는 위상을 잃어버린 지 오래된 뒤였습니다.

반둥회의 60년을 맞아 이번 주 반둥에는 각국의 정상들이 집결합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일본 총리,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등이 직접 반둥을 찾고, 100개국이 대표단을 보낼 것이라고 통보했습니다. 북한에서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한국에서는 황우여 부총리가 대표로 참석할 예정입니다. 60년 전 첫 반둥회의의 주인공이 저우언라이 총리였다면 이번에는 시진핑 주석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지금 인도네시아는 반둥회의의 성공에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공식통신사인 안타라 통신은 반둥회의 특집면을 만들어 연일 계속되는 행사와 회의를 집중 보도하고 있습니다. 자카르타에서 반둥까지는 고속도로로 연결되는데 150km라지만 워낙 교통체증이 심각해 한번 가려면 3,4시간이 걸립니다. 고속도로 중간은 차량이 제 속도를 낼 수 있는 데 반둥 부근 또는 자카르타 부근에서 대책 없이 밀립니다. 제가 갔을 때 평일에 반둥에서 자카르타까지 3시간 정도 걸렸는데 아주 빨리 왔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자카르타 시내에서도 회의가 이어지는데 자카르타의 교통상황은 최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카르타 당국은 기업들에게 행사기간인 19일부터 24일까지 닷새간 휴무를 권고하는 고육책까지 내놨다고 연합뉴스는 보도했습니다. 안타라 통신은 바수키 자카르타 주지사가 교통대책에 만전을 기하라고 연일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앞으로 비동맹회의를 중국이 주도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습니다. 90년대 이후 비동맹회의가 주춤한 감이 있었지만 앞으로는 세계의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게다가 G-2의 한 축으로 성장한 중국이 미국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비동맹회의를 끌고 간다면 앞으로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요동칠 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비동맹회의에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가 아쉽습니다. 반둥회의에는 당초 북한의 김정은이 참석할 수도 있다는 얘기도 나와서 관심을 끌기는 했지만, 우리 정부는 이번 회의에 그다지 주목하지 않는 듯합니다.

세계 100개국이 모일 정도라면 상당한 규모가 될 것이고, 이들이 하나의 이념 아래 뭉친다면 영향력도 상당할 수 있습니다. 과거 비동맹회의라면 우리가 들어가서 힘을 쓰기 어려웠겠지만 이제 변화된 세계에서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단계라면 적극적으로 참석하고 회의를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세안+3라는 회의체에 적극 참여하면서 그보다 더 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회의를 경시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과거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장기적으로 우리 외교의 나아갈 길을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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