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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안산 대신 팽목항으로 간 대통령

[취재파일] 안산 대신 팽목항으로 간 대통령

 세월호 1주기를 맞은 4월 16일 오전, 진도 팽목항에는 평소와 다른 긴장감이 감돌았습니다.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두어 시간 전부터 경호 인력들이 배치되기 시작했습니다. 진도군 주관 추모식이 진행되고 있던 정오 무렵 대통령이 도착했습니다. 대통령은 먼저 팽목항에 마련된 분향소에 들러 5분 정도 추모의 시간을 가진 뒤, 차를 타고 방파제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세월호 선체 인양에 나서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팽목항에 머문 시간은 20분 남짓.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은 만나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 선언 등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에서 대통령의 위로를 받을 수 없다며 가족들이 미리 팽목항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드는 의문이 있습니다. 대통령은 왜, 안산 합동분향소가 아닌 진도 팽목항을 방문했을까요. 물론 팽목항은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추모방문 장소로 손색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에 있어 상징성이 큰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사고 직후 구조작업을 총괄하는 상황실이 차려지고 희생자들의 시신이 옮겨져 신원을 확인하던 곳. 가족들이 셀 수 없는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울음을 토해냈던 방파제. 대통령이 방문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에 제격인 장소입니다. 그럼에도, 대통령의 팽목항 방문에는 의아한 점이 남습니다. 위로받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팽목항에는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 수백 명이 있었습니다. 1년 전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희생자들을 가슴에 품었던 그곳에서, 가족들은 위령제를 치르고 사고 해역을 둘러봤습니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 9명을 생각하며 차마 추모라는 말도 입에 올리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애도의 시간을 보낸 뒤 가족들은 15일 저녁 팽목항을 떠났습니다. 세월호 1주기인 16일에는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공식 추모식이 예정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은 인천항에서 별도의 추모식을 치렀습니다.) 진도에는 실종자 가족 일부만 남았습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팽목항 방문을 선택했습니다.

세월호 취재파일_6
결국, 남아있던 일부 가족들마저 대통령과의 만남을 거부했습니다. 대통령은 분향소에 들렀지만 끝내 분향은 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이 분향소 입구를 막았기 때문입니다. 낮 2시 공식 추모식 전까지 대통령이 어떤 식으로든 세월호 인양을 선언하고 특별법 시행령안을 폐기하지 않으면 추모식을 무기한 연기하겠다는 방침이 세워진 상황이었습니다.

 가족들을 만나지 못한 대통령은 방파제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팽목항을 방문해 있던 추모객들조차 대통령의 말을 들을 수 없었습니다. 경호원들이 방파제 입구에서 일반인 출입을 통제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곁에는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유기준 해양수산부 장관 등 정부 관계자들과 일부 취재진만 머무를 수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경호 인력에 의해 철저하게 배제됐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가 아닌 현장 취재기자들 역시 방파제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당해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전해 들었습니다.)
세월호 취재파일_6
결과적으로 대통령은 희생자 가족도, 국민도 없는 곳에서 희생자를 추모하고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한 모양새가 됐습니다. 그리고 발표문에는 가족협의회가 요구했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관련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습니다. 안산 합동분향소에 모여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공식 추모식을 취소했습니다. 대통령의 발표문 내용이, 그간의 지지부진했던 정부의 태도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네 번의 계절이 바뀌고 365번의 하루가 지났지만 가족들은 아직도 모든 게 제자리라고 느낍니다.

 4월 16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취재하던 동료 기자의 말에 따르면, 가족들은 대통령이 안산이 아닌 팽목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오늘 추모식은 못하겠구나, 직감했다고 합니다. 그날 대부분의 희생자 가족이 안산에 있을 거란 사실은 이미 며칠 전부터 공지된 사실입니다. 가족들을 진정으로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면 가족들이 모여 있는 안산 합동분향소로 향했어야 한다는 사실을 대통령은 정말 몰랐을까요? 대통령이 달래야 하는 건 희생자의 넋뿐 아니라 남은 가족들의 상처와 국민들의 마음입니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앞에서, 그리고 국민들 앞에서, 조금 더 당당하게 세월호 1주기를 맞을 순 없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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