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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열정페이, 얼마까지 받아봤니

문화예술분야…"빛 좋은 개살구"

[취재파일] 열정페이, 얼마까지 받아봤니
'열정페이'라는 게 원래 '일에 열정으로 임하는 사람에게 지불하는 대가', 그리 부정적인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열정페이.. 요즘은 그렇게 쓰이진 않죠.

돈을 얼마나 받아야 '열정페이'라고 할까요. 얼마나 못 받아야 '열정만 노린 저임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실 회사원 대부분은 열정페이를 받고 일하고 있죠. 일 조금 더 했다고 업무 외 수당을 받진 못하니까요. 그럼에도 어떤 업종의 열정페이라는 말이 나오고, 뉴스에 그 사례가 나오는건 그 '혹독함'이 남들보다 더 하기 때문입니다.

미용업계에서 터져나온 '열정페이' 논란, 그 분야 못지 않게 문제가 되고 있는곳이 문화 예술분야입니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문화예술 열정페이

모 시립합창단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맡는 박 모 씨입니다. 지난해 말 해고당했습니다. 2년 넘게 일해서 무기계약직이 됐는데, 근무 평정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해고된 겁니다. 무기계약직을 해고하기 위해선 적절한 절차를 밟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평가로 해고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됐습니다.

박 씨의 첫 월급은 119만 원이었습니다.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을 뚫고 시립합창단에 취업한 결과라고 하기엔 적죠. 비정규직으로 뽑혀 2년 넘게 일하면 정규직이 되는건줄 알았습니다. 공공기관에서는 원래 '무기계약직' 제도가 없었습니다. 지난해 초에 생겼습니다. '업무의 특성상' 쉬는 날도 정하기 어렵습니다.

<박 모 씨 / 연주자>
"원래 뭐 병가는 어떻게 내고 연가는 어떻게 되고 그런 거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하게 돼 있고, 처음엔 모르니까."

문화예술 열정페이

한국무용을 전공한 최 모 씨, 석사까지 받고 지자체 소속 무용단에 입사했지만 역시 비정규직입니다. 문화예술 분야의 특성상 석사, 박사 졸업생이 많지만 처우는 비슷합니다. 운 좋게 정규직으로 입사하면 좋겠지만, 공공부문에 있는 정원규정(TO)가 있어서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지금까진 2년 하면 정규직 전환 기회가 주어졌지만, 지난해초부터 '무기계약직'이 생기면서 상황은 더 열약해졌습니다.

<최 모 씨 / 무용가>
"흔히 말하면 빛 좋은 개살구라고.. 저희가 소득도 높다고 주변에서 생각하는데 현실과는 전혀 달라요. 상황이 너무 달라요."

문화예술 열정페이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공공부문 중에 중앙(문화체육관광부)과 지방(광역 지방자치단체) 산하 문화예술 공공기관 42곳에 종사하는 6개 전문직(연극뮤지컬, 무용발레, 양악, 학예사, 기타 전문직) 3천여 명을 상대로 고용 및 노동실태를 분석했습니다. '생각보다 처우가 좋네'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네요. 하지만 이 실태는 '공공부문'에 한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최소한'입니다. 공공부문의 민간에 선행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처우가 안좋아 질수록 민간은 공공을 기준으로 처우를 열악하게 하는 구실이 됩니다.

● 4명 중 1명, 무기계약직·비정규직

조사 대상이 된 3,111명 중에 정규직은 2,257명, 무기계약직은 494명, 비정규직은 360명입니다. 전체 4명 중에 한 명이 무기계약직과 비정규직(27.2%)입니다. 특히 연극 뮤지컬의 경우에는 조사 대상중에 43%가 비정규직으로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문화예술 열정페이
● 정규직 10년 vs 비정규직 1.4년

평균 근속기간은 정규직이 10년, 무기계약직이 8.1년인데 반해 비정규직은 1.4년입니다. 이를 반영하듯이 문화예술 종사자 중에 비정규직의 연간 평균 이직 인원은 8.1명으로, 정규직 2.5명에 비해 세 배 이상 많았습니다.

● 아파도 참자…비정규직 병가사용 평균 2.9일

위에 사례에서 봤듯이 연차 휴가, 쓰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정규직이 유급연차휴가를 14.9일 쓸때, 정규직은 8.4일을 썼습니다. 병가 사용일도 비정규직은 2.9일 정도였네요. 1년에 3일을 채 쓰지 못한겁니다.

● 같은 무대에 선 예술가…정규직 219만 원 vs 무기계약직 155만 원

공공부문 문화예술 종사자의 임금(기본급+상여금)은 평균 176만 원 정도였습니다. 정규직 평균은 219만 원, 무기계약직은 155만 원, 기간제는 183만 원이었습니다. 비정규직 중에 무기계약직이 해고 될 일은 적은데(원래는 아예 해고가 없어야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 임금은 그만큼 적었습니다. 같은 공연, 같은 전시를 하는 분들이 임금이나 고용환경은 제각각인 거죠.

몇 년 전에 방송작가 한분이 자살을 하면서 문화예술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에 대해 반짝 조명된 일이 있습니다. 제가 만나본 연주가, 무용가들 역시 열악한 처우에 대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말할 순 없습니다.

<박 모 씨 / 연주자>
"음악계가 워낙 좁다 보니까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고, 이러다 보니까 쉽게 말을 못하는 거죠. 아무리 외쳐봤자 일단 인맥이나 학연, 지연으로 나오면 내가 오히려 바보가 되지."

문화예술 열정페이

조사를 진행했던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도제식 교육이 열악한 처우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만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김종진 연구위원>
"다른 직종에 비해서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업무 과정에서 선후배들한테 배우는 도제 형성이 잘 형성돼 있는 직종 중 하나. 그렇다 보니 비정규직이나 임금이 열악해도 일을 해야 되고. 문화 예술 종사자들이 사실 외국의 석박사도 꽤 있거든요. 거기에 맞는 보상을 받아야 되는데 우리나라는 문화 예술 종사자라도 해도 공공부분 임금테이블에 딱 맞춰서 어느 직종은 월 88만 원이 기본급으로 책정돼 있는 데도 있어요."


앞에도 말했지만, '이 정도면 내가 일하는 것보다 더 좋네'라고 무시하는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공공부분에서조차 이렇게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처우가 열악하다는 건, 수십 배 많은 민간 부분의 문화예술 산업의 종사자 처우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정부가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처우와 고용형태를 개선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종사자들이 '열정 있게'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게 정부의 역할입니다. 열정페이는 열정있으면 덜 받아도, 해고 위험이 있어도 열심히 일하라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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