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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내년 리우 올림픽에 태극기가 없을 수도…"

[취재파일] "내년 리우 올림픽에 태극기가 없을 수도…"
지구촌 대축제인 올림픽에 대한민국 선수단이 태극기 없이 출전하는 게 상상이 가십니까? 저도 물론 상상이 잘 가질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될 수도 있다는 얘기가 체육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이 내년 8월5일에 막을 올리는데 한국 선수단이 태극기와 태극마크 없이 출전할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말은 이렇습니다.

대한체육회와 국민생활체육회(이하 국생체) 두 단체가 하나로 통합하는 국민체육법 개정안이 지난 3월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이로써 엘리트 체육을 대표하는 대한체육회와 생활 체육을 대표하는 국생체가 25년 만에 통합하게 됐습니다. 두 단체의 통합 이유와 그동안의 과정에 대해서는 설명할 게 너무 많아 여기서는 생략합니다.

두 단체는 규정에 따라 내년 3월까지 통합을 완료해야 합니다. 통합 작업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임명하는 15명으로 구성된 협의체를 통해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런데 대한체육회는 지난달 27일 문화체육관광부에 ‘통합준비위 구성 건의서’를 제출하면서 대한체육회가 추천하는 인사가 15명의 협의체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울러 이 문제와 관련해 김종덕 문체부 장관과의 면담도 요구했습니다. 쉽게 말해 국생체와의 통합은 문체부가 아니라 대한체육회가 주도하겠다는 뜻입니다.

통합을 둘러싸고 대한체육회와 문체부의 '힘겨루기 1라운드'가 벌써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여기에는 미묘한 배경이 숨겨져 있습니다. 김정행 현 체육회장의 임기는 2017년 2월에 끝납니다. 지난달 새로 선출된 강영중 국생체 회장은 서상기 전임 회장의 잔여 임기가 종료되는 내년 2월까지 회장직을 맡습니다. 그러니까 내년 3월 통합체육회가 탄생할 경우 김정행 회장은 보장된 임기가 1년 정도 날아갈 위험이 있고, 강영중 회장은 자칫 국생체 회장을 1년밖에 하지 못하고 물러날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정행 체육회장은 지난 2월 23일 기자간담회에서 "통합까지 진통이 없을 순 없다. 그러나 공정한 회장 선거 룰에 따라 주도권 다툼을 하게 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강영중 국생체 회장은 당선 직후 "오늘은 예선이고 내년이 본선(통합체육회 회장 선거를 의미)이다"며 일전불사 의지를 다졌습니다. 국내 체육계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이렇게 내다보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국생체는 한마디로 동상이몽(同床異夢)에 빠져 있다. 대한체육회는 역사나 한국 스포츠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고려할 때 당연히 국생체보다 자신들이 우위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생체는 1대1로 완전히 대등한 통합을 원하고 있다. 핵심은 통합 정관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달려 있다. 정관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내년 통합 체육회장 선거 결과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이다. 문체부가 국생체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으로 통합을 추진한다면 체육회는 강력히 반대할 것이다. 김정행 회장이나 체육회에서 미는 인사가 선거에서 떨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받아들이겠는가? 반대로 체육회 위주로 구도가 짜여지면 강영중 회장 보고 이제 그만두라고 하는 셈인데 이건 국생체가 용납할 수 없다. 문체부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파란이 일 것이다.”

또 하나의 변수는 현 정부와 대한체육회의 관계입니다. 김정행 회장이 2년 전에 취임할 때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현 정부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아왔다는 것이 체육계 안팎의 중론입니다. 문체부가 추진하는 두 단체 통합이 사실상 내년 선거를 통해 김정행 회장을 합법적으로 조기에 낙마시키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대한체육회 일각에서는 “만약 정부가 김 회장과 체육회의 의사를 무시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사람을 통합체육회장으로 세우려는 의도를 보일 경우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 수단의 하나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고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올림픽 헌장 27조 6항>에 따르면 “국가올림픽위원회는 정치·법·종교·경제적 압력을 비롯한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자율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이 규정을 위반할 경우 IOC는 해당 국가의 자격을 정지시킨 뒤 국제 스포츠 행사 참가를 금지해왔습니다.

아래 사진에 나오는 것처럼 지난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회식에서 쿠웨이트 선수단은 자국 국기를 사용하지 못하고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했습니다. 쿠웨이트 선수들도 쿠웨이트 국가대표가 아니라 개인자격으로 출전했습니다. 당시 쿠웨이트 정부가 올림픽 헌장을 어기고 자국 올림픽위원장을 비롯해 경기단체장들을 직접 임명해 IOC로부터 징계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취재파일] 권종오
지난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는 인도가 똑같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2012년 11월 인도올림픽위원회(IOA)가 집행부 선거를 치렀는데 인도 정부 간섭 아래 이뤄져 IOC로부터 자격정지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IOC는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올림픽운동을 지키기 위해 각국 올림픽위원회(NOC)의 자율성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습니다.

현재 대한올림픽위원회(KOC)는 대한체육회에 포함돼 있습니다. 즉 문체부(정부)가 두 단체 통합 과정이나 신임 통합 체육회장 선거에서 노골적으로 한 쪽 편을 들거나 개입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쿠웨이트나 인도처럼 징계를 받게 됩니다. 이럴 경우 한국 선수들은 내년 리우올림픽에서 한국 선수가 아닌 ‘독립 선수(independent athletes)’로 출전하고 태극기 대신 ‘올림픽기’를 달고 뛰어야 합니다. 또 개회식에도 올림픽기를 들고 입장하게 되며 우승하더라도 애국가 대신 ‘올림픽 찬가’가 연주됩니다.

물론 대한체육회도 이런 사태가 절대 벌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두 단체의 통합은 체육회와 국생체 양측이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문체부는 관리 감독만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 스포츠를 대표하는 두 단체는 체육 행정의 통일성과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위해 통합이라는 총론에 합의했습니다. 하지만 총론보다 더 중요한 게 각론입니다. 문체부는 필요 이상의 개입이나 간섭을 해서는 안 되고 두 단체는 통합 작업이 자칫 ‘밥 그릇 싸움’으로 흐르지 않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합니다. 아무 실익이 없이 분열과 갈등만 조장하는 통합은 차라리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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