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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안하다, 서운하다…다시 떠오른 6년 전 정동영에 대한 기억

[취재파일] 미안하다, 서운하다…다시 떠오른 6년 전 정동영에 대한 기억
정동영 전 의원이 무소속 재보선 출마를 선언했다. 불과 4일 전 불출마 선언을 번복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냈던 정 전 의원은 통해 기득권 보수정당 체제를 깨는 데 자신의 몸을 던지겠다며 오는 29일 치러지는 서울 관악구 을 지역 보궐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밝혔다. 사실 불출마 번복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던 날 많은 사람들은 오히려 역으로 출마를 예상했다. 정 전 의원의 출마의 변은 이렇다.

"각기 보수를 표방하고, 각기 중도를 표방하는 이 거대 기득권 정당. 그분들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바꿔야 합니다. 바꾸는 균열을 위대한 시민이 살고 있는 관악구에서 몸을 던져 정면 승부를 하고자 합니다. 국민모임 그리고 정동영의 승리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진정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왜 진정한 심판이냐. 지금 우리는 야당다운 야당이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모임과 정동영이 승리하면 정치판에 지각변동이 올 것입니다. 여당도 야당도 정신을 차리게 될 것입니다."

새삼 6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2009년 이맘때쯤 정 전 장관은 미국 체류 생활을 끝내고 귀국해 전주 덕진 재선거에 출마했다. 2007년 대선에서 패배한 지 1년 남짓 지난 시점이었다. 기자도 정치부에서 취재를 시작한지 1년 남짓 지났던, 국회 기자 중에선 막내급 기자였다. 그래서 그런지 정 전 장관의 취재를 맡아 하면서 경험한 기억들은 오래 남아 있다. 정 전 장관이 귀국하던 날 인천공항에 수백명이 운집해 공항 로비에서 '정동영!'을 연호하던 모습,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탈당과 무소속 출마 기자회견을 하던 장면, 그리고 덕진 곳곳에 붙어 있던 '어머니, 정동영입니다' 라는 현수막까지... 그렇게 6년 만에 정동영 전 의원은 탈당 후 무소속 당선, 복당, 그리고 탈당의 길을 다시 걷는다.

2009년 출정식 당시 정 전 의원이 했던 말을 보면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라는 몇 단어만 다를 뿐 전반적인 내용은 이번 4.29 재보선 출마의 변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9년 출정식 당시)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이명박 정부에게 실망한 국민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는 대안정당이 되는 게 불가능합니다.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겠다던 이번 선거를 자신을 죽이는 선거로 만든 민주당이야말로 바로 바뀌어야 할 대상입니다. 야당다운 제1야당을 세워야 합니다. 저에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통합과 연대의 정치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전주 시민들이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으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신건 전 의원과 무소속 연대를 통해 전주에서 모두 당선되면서 입지를 과시하고 열달만에 민주당에 복당까지 성공한다. 하나돼서 싸우기를 바라는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민주당에 빚을 진 사람이라는 표현을 써가면서 말이다.19대 총선에 불모지나 다름없는 서울 강남을에 출마했지만 낙선하고 그 뒤론 노동운동과 세월호 현장 등을 찾아다녔다.

그랬던 정 전 의원이 이제 다시 관악을에 정치생명을 건 승부를 다시 시작한다. 정 전 의원이 다시 나온 걸 보면 재보선 당시 약속했던 당선되면 통합과 연대의 정치, 제1야당을 야당다운 야당으로 세우는 일이 실패한 게 분명하다. 만약 그런게 실현됐다면 다시 무소속 출마의 길을 걷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정 전 의원은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지금 야당으로는 안된다는 말을 반복하며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나섰다.

무소속 출마의 이유가 현 야당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불신을 자신이 나서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소명일 수도, 탈당 후 몸담은 국민모임이 후보 한 명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신이라도 나서지 않는다면 미래가 없을 것 같다는 절박함이었을 수도, 그도 아니면 더이상 새정치연합에서 찾지 못하는 자신의 정치 행로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정 전 의원의 말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저 아래엔 늘 서운함이 깔려 있다. 처음 전주 출마를 선언하며 밝힌 탈당의 변에서 절절이 묻어나는 서운함말이다.

(2009년 탈당 선언 당시)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었지만 이렇게 뿌리칠 줄 몰랐습니다. 정치를 하면서 제가 지은 업보라고 생각합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가볍다고 손을 내밀었는데 설마 뿌리치랴했던 것이 현실이 됐고, 당 지도부가 당원과 지지자들의 뜻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시 민주당 대표였던 정세균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였던 무주 진안 장수 임실에 불출마까지 선언하고 다음 재보선에서 공천을 약속하면서 만류했지만 정 전 의원의 탈당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은 다른 점이 있다. 정 전 의원은 당시에는 그래도 "잠시 민주당의 옷을 벗지만 다시 함께 할 것입니다"라며 당선 후 복당의사를 분명히 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런 말은 없었다. 새정치연합과 다시 만날 날을 전혀 기약하지 않았다. 

(2015년 1월 탈당 기자회견)

"민주당 안에서 실천하려고 몸부림쳤습니다. 민주당은 저에게 정치적 뿌리이자 어머니같은 따듯한 품입니다. 이 세상에 누가 어머니 품을 떠나려고 하겠습니까. 저도 정치인 이전에 고독감 앞에서 몸부림치고 낯선 길에서 두려움 느끼는 한 작은 인간일 뿐입니다. 

당헌 강령에서 제가 정치적 생명 걸고 추구해 왔던 진보적 가치들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습니다. 중도 우경화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이런 가치는 천덕꾸러기 취급받았습니다. 새정치연합은 사회적 약자 대변 정당으로 더 진화하지 못하고 사회적 강자를 위한 정당으로 퇴화한 것을 보면서 제가 모든걸 바친 6년 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됐구나 하는 생각에 참담함을 느낍니다."


특히 서운함이 더 컸던 것은 자기 편이라고 생각했던 이른바 비주류마저도 자신에게 역할을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라고 새정치연합 내 일부는 분석한다. 친노그룹에게 배제되는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비주류마저 자신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새정치연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본 것 같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7.30 재보선 지역 가운데 한 곳이 자신이 18대 총선 당시 출마했던 동작을이었다. 실제로 선거 초반에는 정 전 의원 출마 얘기가 나오긴 했지만 적극적으로 그를 찾은 사람은 없었다. 

새정치연합 내에서는 '당의장에 장관, 대선후보까지 하고 싶은대로 다 하고 지낸 분이 이제와서 그런 얘기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당을 바꾸려면 자기가 열 번은 더 바꿀 수 있었던 사람이 비판할 자격이 있느냐는 말이 곳곳에서 나온다. 대선 후보까지 지낸 정치인이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반복하며 '떴다방 후보'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모습은 이유야 어떻든 씁쓸한 야당의 자화상이다. 본격 선거전에 돌입하면 새정치연합과 무소속 정동영 후보 모두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서로를 비하하고 약점을 부각시키는 데 집중될 것이다. 이미 서로에게 서운할 대로 서운한 새정치연합과 정동영 전 의원 모두 패배할 경우 치명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명운을 건 전투는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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