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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교통카드, 새벽 잠복까지 하며 찾아준 경찰

지난 17일 오전 5시.

서울 강동구의 한 버스정류장에서 강남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 김정환(35) 경장은 첫차에 올라탄 한 여성을 숨죽여 주시했습니다.

분명히 폐쇄회로(CC)TV에 찍힌 그 '용의자'였습니다.

닷새에 걸친 잠복근무가 끝나는 순간.

하지만 김 경장은 여느 때와 달리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보통 첫차를 타는 사람들은 매일 같이 얼굴을 보기에 서로 알아보는 법이어서 이 여성도 다른 승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빴습니다.

김 경장은 30여분간 버스 뒷자리에 앉아 그녀가 '버스친구'들과 헤어지길 기다린 뒤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경찰입니다. 버스카드 본인이 산 게 아니죠?"

순간, 이 여성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그녀는 A(48.여)씨가 분실한 버스카드를 주워서 쓴 40대 환경미화원 서 모 씨였습니다.

김 경장이 버스카드를 주워간 이를 찾으러 잠복근무까지 한 것은 강력범죄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소홀할 수밖에 없는 생활밀착형 범죄를 전담하고자 최근 신설된 '생활범죄수사팀' 소속이기에 어째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김 경장은 지난 9일 경찰서에 찾아와 피해를 호소한 A씨의 간절한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식품회사 경리인 A씨는 경기도 남양주 집에서 서울 강남구의 직장까지 매일 버스를 타고 40여㎞를 왕복하는데 지난 4일 오후 20만 원이 충전된 티머니 카드를 역삼역 인근에서 잃어버렸습니다.

평소 티머니 회원으로 가입해 소득공제까지 받을 정도로 알뜰했던 A씨는 '경찰이 설마 이 카드를 찾아줄 수 있을까' 싶어 속만 끙끙 앓다가 닷새 만에 경찰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김 경장이 확인해 보니 A씨의 카드는 이미 누군가가 주워 사용하는 중이었습니다.

티머니는 환불이나 카드정지 서비스가 없습니다.

김 경장은 카드결제 명세를 근거로 지하철 개찰구와 인근 편의점을 돌면서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했습니다.

유력한 '용의자'가 나왔지만 김 경장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는 매일 새벽 첫차를 타고 출근해 오후 3∼4시에 퇴근하는 키 165㎝가량의 중년 여성으로, 직업은 환경미화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파악됐기 때문입니다.

이 여성은 본인이 등장한 절반의 CCTV에서 같은 옷을 입고 등장해 넉넉지 못한 서민이란 예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김 경장은 사건을 덮을 수는 없어 테헤란로와 강남대로 주변 70개 빌딩을 하나하나 뒤져 비슷한 용모의 환경미화원을 찾았습니다.

13일부터는 역삼역 등지에서 출퇴근 시간 잠복까지 했습니다.

그는 결국 닷새 만에 A씨의 카드로 버스를 탄 서 씨를 찾아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서 씨는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형편이라 환경미화원 일과 빌딩 청소를 병행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엔 부인하던 서 씨는 곧 "주웠는데 어떻게 돌려줘야 할지 몰라 쓰게 됐다"며 고개를 떨어뜨렸습니다.

서씨가 10여일 동안 사용한 금액은 모두 3만 원에 불과했고, 카드를 돌려받은 A씨는 서 씨에 대한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서 씨는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로 즉결심판에 넘겨지지만 선고유예나 1만∼5만 원의 벌금을 받는 데 그칠 전망입니다.

김 경장은 "사람들이 피부로 겪는 사건은 사실 강력범죄보다 이런 소액·생활밀착형 범죄"라면서 "서로 좋게 마무리된 것 같아 기쁘고 더 열심히 해서 경찰의 치안 서비스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습니다. 

(SBS 뉴미디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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