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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재혼 가정들의 속앓이…'동거인' 지우려 편법 감수

-가족인 듯 가족 아닌 가족같은 단어 '동거인'

[취재파일] 재혼 가정들의 속앓이…'동거인' 지우려 편법 감수
'가족' 

매일 쓰는 단어이지만, 막상 정의를 하려니 어려워 찾아봤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혼인, 인연, 입양 등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입니다. 초등사회 개념 사전은 '혼인이나 혈연으로 맺어진 집단, 또는 그 구성원과의 관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민법에서는 1) 배우자, 직계혈족 및 형제자매, 2) 직계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직계 혈족 및 배우자의 형제자매라고 정리하고 있습니다. (단 2의 경우에는 생계를 같이 하는 경우에 한함)

오늘은 어떤 ‘가족’들의 이야기를 전하려합니다. 재혼으로 맺어진 가족들 가운데 상당수는 ‘가족인 듯, 가족아닌, 가족같은’ 단어 때문에 속앓이를 한다고 합니다. 바로 ‘동거인’이라는 단어입니다.

10여 년 전 재혼한 이 모 씨의 주민등록등본에는 세 사람이 적혀 있습니다. 이 씨 본인과 재혼한 이 씨의 처, 그리고 ‘동거인’ 아들 A군입니다. A군은 아내가 초혼에서 얻은 아들입니다.  올해 A군을 고등학교에 입학시킨 이 씨 부부. 주민등록 등본을 학교에 제출했는데, 전화를 두통 받았답니다. 학교와 교육청에서 아들이 ‘동거인’으로 적혀 있다며, 그 맥락을 확인하려고 전화를 걸어 온 겁니다. 혹시 친부, 친모가 별도로 있는 상황에서 유학을 온 것인지, 위장 전입은 아닌지 의심하진 않을까, 담당자에게 재혼 가정이어서 ‘동거인’ 표시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설명해줘야 했답니다. 이 씨는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그걸 일일이 설명해야하는 아이 엄마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재혼했다는 것을 굳이 밝혀야할 필요는 없잖아요.”

이 씨 가정이 특별한 게 아닙니다. 

재혼 가정 가운데 상당수가 이 ‘동거인’이라는 단어 탓에 속앓이를 한다고 합니다. 재혼 가정의 경우, 세대주와 배우자의 이전 혼인관계에 의한 자녀는 가족란에 함께 기재되긴 하지만, 혈연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동거인으로 표기되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재혼을 하기 전까지, 아니 주민등록등본을 발급 받아보기 전까지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는 점입니다. 재혼 가정 가운데 상당수는 어떤 특별한 계기로 등본을 발급받아 보고서야 이 ‘동거인’이란 말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재혼 가정 구성원들로 이뤄진 인터넷 커뮤니티 회원의 글을 일부 옮깁니다.

“이사하고 첫등본 떼고 엄청 울었던 날이 있었네요. 제 아들이 자가 아닌 동거인으로 나오며 서열도 맨 아래 이름이 있더라고요. 정말 속상하고 원망스럽습니다. ”

일부 재혼가정들은 동거인 표기 하나 지우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합니다. 나눠보면, 크게 두가지 정도입니다.

1) 세대주 바꾸기 :  엄마 쪽 자녀가 있고, 배우자인 남성 쪽 자녀가 없다면 세대주를 여성으로 설정하는 것으로 문제가 일부 해결됩니다. 등본이 세대주와의 관계로 기록되기 때문에, 세대주를 친권을 가진 엄마로 하는 것이죠. 그런데, 세대주를 바꿀 경우에도 또 예상치 못한 불이익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저도 재혼 가정입니다.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세대주를 아내로 해서 저는 자녀로 표시 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연말 정산시 주택자금대출 이자를 제가 내는데 세대주가 아니라고 연말 정산에서 혜택을 못받는다고 하더라구요."

- 재혼남성 B씨


대부분의 남성이 세대주인 한국 사회에서 왜 굳이 여성을 세대주로 했느냐에 대한 질문, 그리고 그 답을 준비해야하는 것은 별도의 짐입니다.

2) 위장전입: 남성, 여성이 모두 자녀를 데리고 결혼한 경우에 동원되는 방법입니다. 세대주를 남성으로 하면 여성쪽 자녀 이름 옆에 '동거인'이 적힙니다. 그렇다고, 세대주를 여성으로 하면 남성쪽 자녀 이름 옆에 '동거인'이라고 적힙니다. 어느쪽이라도 '동거인' 표기를 피하기 어려운 겁니다. 이렇다보니 편법을 쓰는 것이죠. 한지붕 아래 살면서도 부부가 주소를 따로 올리면. 주말 부부인 것처럼 보이긴 해도 아이 이름 옆에 적힌 '동거인' 표기는 사라집니다.

“아이 유치원 입학문제로 등본을 떼어 내야하는데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단순히 입학지원서를 내는 것 인데로 등본을 내야하고, 그곳에 동거인이 표기되어야만 하는... 결국에는 부모님댁으로 전입신고하고 아이를 밑으로 넣었습니다... 다시 초등학교 입학시즌에는 이쪽으로 주소를 옮겨야 할테지요."

- 재혼 여성 C씨


"재혼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아이에게 재대로 된 가정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예요. 그런데, 정작 아이 이름 옆에 '동거인'이라고 적히잖아요. 가족이 아닌 것처럼. 편법인 것을  쓸 수 밖에 없어요."

- 재혼여성 D씨


그렇다면, 동거인이라고 표현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행정자치부에 문의해봤습니다. 행정자치부 측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주민등록법 14조를 보면, 주민등록표는 가족관계 등록에 따라 기록합니다. 그런데, 새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가족관계등록부상 친자가 아닙니다. (사실을 그대로 담은) ‘처의 자’, ‘배우자의 자’라는 단어로 표시해서 드리면, 재혼 사실이 드러나기 때문에 정책적인 배려로 동거인이라는 단어를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족관계등록부에 대해서도 짚어봐야겠습니다. 재혼을 한 이후에도 배우자 자녀 가족관계등록부 발급받아 보면, 새아버지, 새어머니 이름이 자동적으로 올라가진 않습니다. 남녀는 혼인이라는 절차 거친 탓에 부부의 관계를 얻게 되지만, 그 혼인이 배우자의 자녀에 대한 부모-자식 관계까지 동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물론, '동거인' 표기를 합법적으로 없엘 방법이 없진 않습니다. ‘친양자 제도’라는 게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자의 자녀를 정식으로 입양하라는 것인데, 실제로 당국에선, 민원인을 대상으로 이 제도를 안내하기도 합니다. (친양자 제도 : 친생부모와의 친족관계가 단절되고, 양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는 것. 혼인 중 출생자로 보게 되어 가족관계등록부 및 주민등록등본에 ‘자로’ 표시됨) 재혼 가정들은 그러나, 재혼 기간이 1년 이상이어야 자격 요건이 되고, 친부-친모의 동의를 얻는 것도 거의 어렵다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주장합니다.

‘동거인’이라는 ‘가족인듯, 가족 아닌, 가족같은’ 단어에 대해 현재로서는 관계부처에서 개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진 않은 듯 합니다. 물론, 용어를 변경함으로써 친부, 친모와의 법적 지휘가 혼동될 우려, 상속에 관한 혼란 등이 야기될 우려도 분명 있어 보입니다. 친부 친모의 반발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 재혼 가정이 늘고, 우리 사회의 가족 형태가 다양화하는 이 시점에서 '동거인'이라는 단어에 대해 재혼 가정이 아닌 이들도, 한번쯤 같이 고민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지금으로선, 적어도 ‘동거인’이라는 단어를 접하더라도, 색안경을 끼고 묻거나, 바라보지 않는 최소한의 배려가 꼭 필요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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