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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日 생방송 뉴스에서 "나는 아베가 아니다"

[월드리포트] 日 생방송 뉴스에서 "나는 아베가 아니다"
 ▲ TV아사히 메인 뉴스 '보도스테이션' 화면
 
지난 27일(금요일) 일본 TV아사히 메인 뉴스인 '보도스테이션' 생방송 도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우리로 치면 'SBS 8뉴스', 'KBS 9시뉴스' 같은 메이저 지상파 방송의 메인 뉴스입니다. 아베 정부에 비판적인 논평을 계속해 왔던 시사평론가 고가 씨가, 아베 정부 압력으로 방송 평론을 그만두게 됐다며 "나는 아베가 아니다"라는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 경제산업성 관료 출신인 시사평론가 고가 시게아키 씨입니다. 당초 출연 목적은 중동 정세에 대한 해설이었지만, 고가 씨는 "오늘이 마지막 출연입니다. TV아사히 사장 등의 의사에 의해 저는 물러나게 됐습니다"라며 돌발 발언을 시작했습니다. 아베 정부의 원전 재가동 정책과 IS 인질사건 대응을 강하게 비판해 왔던 인물의 돌발적인 행동에 스튜디오는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고가 씨는 "스가 관방장관을 비롯한 정부 인사들에게는 비난받아 왔지만, 많은 분들이 응원을 해줘 즐겁게 일했습니다."라면서, 자신의 중도사퇴가 아베 정부의 압력 때문임을 시사했습니다. 이어서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의미를 담은 "나는 아베가 아니다"라는 손팻말을 들어 올렸습니다.

보도스테이션의 유명 앵커인 후루타치 씨가 "방송국 측이 그만두게 했다는 건 사실과 다르다"며 발언을 제지했습니다. 그러자 고가 씨는 "후루타치 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정말 미안하다라고 (저에게) 말했습니다. (분장실에서 후루타치 씨의 말을) 모두 녹음해 두었습니다."라며 후루타치 씨의 말문을 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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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V아사히 메인 뉴스 '보도스테이션' 화면, 왼쪽이 유명 앵커인 후루타치 씨고 오른쪽이 고가 씨

방송 이후 TV아사히 측은 "해설자가 특정 인물로 고정된 것이 아니므로 고가 씨를 중도 하차시키는 것으로 볼 수 없으며, 고가 씨가 개인적인 의견이나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내용을 말한 것을 수긍할 수 없다"는 공식 입장을 밝혔습니다.

고가 씨는 2008년 경제산업성 관료 시절, '행정개혁'을 강하게 주장하면서 유명해진 인물입니다. 상명하달식 행정관행 개혁, 옥상옥 철폐 등을 주장했는데, 공무원 임금 삭감까지 주장하면서 관료사회 내부에서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2011년 9월, 권고 사직 형식으로 공무원 생활을 끝내야 했고, 그 이후부터 시사평론가로 활동해 왔습니다.

특히 아베 정부의 원전 재가동 정책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 왔던 인물입니다. 또 올해 초 이슬람국가 IS에 의한 일본인 인질 사건 때도 아베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아베 정부가 협상을 통해 인질의 생명을 구할 생각이 처음부터 없었고, 인질 사건을 계기로 '자위대 해외 확대'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려고 계획적으로 움직였다는 내용의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일본 정부와는 여러차례 갈등을 빚었지만, 반정부 성향의 시민사회단체나 한국 언론을 비롯한 해외 미디어에는 인기가 많은 평론가였습니다. 저희 SBS와도 여러차례 인터뷰를 했는데, 아래 사진은 지난해 위안부 관련 인터뷰를 했을 때 화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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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일, 아사히신문 위안부 관련 과거기사 취소에 관해 SBS와 인터뷰할 당시의 고가 씨

지난해 말 의회 해산에 이은 중의원 선거 당시, 집권 자민당은 주요 방송사에 선거 보도를 공평하게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서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언론사에 압력을 가한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아베 총리가 요미우리, 산케이 등 주요 신문사 편집국장들과 저녁을 함께 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었던 것도 이 무렵입니다. 고가 씨의 돌출 행동은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일어났습니다. 권력의 언론 개입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겁니다.

야후 재팬을 비롯한 일본 인터넷 여론을 살펴봤습니다. '네트 우익'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보수화되고 있는 일본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일단 고가 씨의 '돌출 행동 비난' 목소리가 우세해 보입니다. 또 주장 내용을 떠나 생방송 도중에 그런 식으로 행동한 것은 지나쳤다는 비판도 적지 않습니다.

아베 정권 언론 압력에 대한 비판이라는 지지 의견이나,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칭찬도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소수인 것으로 보입니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이번 사건을 보면서 묘한 느낌을 갖게 됩니다.

먼저 TV아사히가, 대정부 비판을 강력하고 줄기차게 해 온 고가 씨 같은 인물을 '출연자'로 써 왔다는 사실 자체가 놀랍습니다. 아베 정권에 대해 가장 날카롭게 각을 세워 온 아사히 계열 지상파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어찌됐건 지상파 방송이 권력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과 논평을 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언론자유도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점은 부러운 사실입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TV아사히까지 무너지고 있구나 라는 아쉬움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나마 지상파 뉴스 가운데 비판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를 견지해 온 '보도스테이션'마저 이번 사태로 좌우 양쪽의 공격을 받게 될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고가 씨의 이번 행동이 일회성 돌출행동으로 조용히 묻힐지(일본 권력과 언론이 그렇게 담합할지), 아니면 아베 정권의 언론 개입에 대한 상징적 사건으로 주목받게 될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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