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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진의 SBS 전망대] 표창원 "훈민정음 해례본 소장 배 씨, 조건부 반환 의사 내게 밝혔다"

대담 : 표창원 소장 (표창원 범죄과학연구소)

▷ 한수진 / 사회자 :

훈민정음은 1443년, 세종대왕이 창제한 우리글 한글의 원전입니다. 국보 제70호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인류의 보물이죠. 그런데, 그 훈민정음을 반포할 때 인쇄한 해설서 중 하나인 '상주본'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배 모 씨의 집에서 어제 아침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과연 훈민정음 상주본은 안전할까요?

오늘 <표창원의 사건과 사람들>에서 이 사건, 살펴보겠습니다. 표창원 소장님, 어서오세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안녕하세요?

▷ 한수진 / 사회자 :

우선, 국보급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왜 이렇게 허술하게 보관되어 있었던 거죠?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사건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어제 불이 난 집 주인이죠, 52세 배 모 씨가 집을 수리하다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발견했다며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글을 올렸습니다. 배 씨는 경북 상주 토박이로 골동품 업계에선 잘 알려진 사람이었습니다.

현장조사를 나간 문화재청 학예사들은 종이재질과 인쇄된 글자의 모양과 서체 등으로 보아 진본이라는 평가를 내렸고요. 곧 지역언론에 이 사실이 보도됩니다. 그러자 배 씨와 거래관계에 있던 상주시내 골동품 업자인 조 모 씨가 그 훈민정음은 본래 자신의 가게에 있었는데, 배 씨가 30만 원에 고서적 두 상자를 사가면서 몰래 가져갔다고 주장합니다. 배 씨는 아니라고 부인했고요. 그러자 조 씨가 경찰에 절도죄로 배 씨를 고소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그야말로 보물을 사이에 둔 법정공방이 벌어지게 되었군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그렇습니다. 조 씨는 배 씨를 절도죄로 고소하면서 자신의 물건인 훈민정음을 반환하라는 민사소송도 제기했습니다. 절도 혐의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지만, 민사재판에서는 훈민정음이 조 씨 것이니 반환하라는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자 화가 난 배 씨가 훈민정음을 감춰버립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내 것인데 무슨 소리냐, 이렇게 나온 거죠?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그렇죠. 문화재청에서는 배 씨에게 우선 국보급 문화재인 훈민정음 해례본이 진본인지 정식으로 감정하고 제대로 보존할 수 있게 원본을 제출하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하자 배 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합니다. 검찰은 2011년, 배 씨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고요.  

▷ 한수진 / 사회자 :

그래도 내놓지 않은 거에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그렇습니다. 이 과정에서 배 씨의 심사가 뒤틀리는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하는데요, 배 씨가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2012년 5월, 법원에서 소유권을 인정받았지만 실제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을 가지고 있지 않은 조씨가 국가에 기증한다면서 문화재청에서 기증식을 가진 것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요.

▷ 한수진 / 사회자 :

훈민정음 해례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기증식을 한 거에요. 그러니까 민사소송에서 법원이 조 씨가 훈민정음의 주인이라고 판결을 했으니 조 씨가 법적인 소유권자인 셈이고요, 하지만 실제 훈민정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배 씨였고, 이 상황에서 조 씨가 훈민정음을 국가에 기증해 버린 것이군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그렇습니다. 문화재청에서는 이 기증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서 배씨를 압박했죠. 분쟁의 다른 당사자인 배 씨는 구치소에 구속된 채 문화재관리법 위반에 대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였고요. 당시에 제가 문화재청의 요청으로 배 씨를 만나 면담을 했었는데요.

▷ 한수진 / 사회자 :

훈민정음을 감춘 채 구속돼서 재판을 받던 배 씨를 직접 만나셨다고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그렇습니다. 약 2시간 정도 면담을 하면서 배 씨의 의도와 심경, 심리상태 등을 확인을 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그랬더니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당시에 배 씨는 크게 세 가지의 감정에 있었습니다. 하나는 분노인데요, 자신을 고소한 조 씨와 조 씨 편을 들어준 문화재청, 그리고 자신을 범죄자 취급해서 구속하고 몇 차례나 집을 압수수색하며 뒤집어 놓은 검찰에 강한 분노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당시에 완전히 뒤졌다면서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집은 뭐 말할 것도 없고 근처에 무덤이 있었는데, 거기도 다 뒤졌죠. 

▷ 한수진 / 사회자 :

당시 가치가 엄청나다는 말이 많았죠? 수백억에 달한다, 이런 이야기도 있었고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어떤 전문가는 1조 원에 달한다는 평가까지도 했고, 그러니까 쉽게 내놓을 마음이 더 없어진 거죠. 그러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훈민정음의 재산적 가치에 대해 명확히 인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가 있고, 대한민국에서 그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고 언급할 정도였으니까요. 경제적인 이익과 보상에 대한 기대가 강하다는 이야기죠. 여기에 또 하나, 명예심과 인정욕구라는 심리적 요인이 추가됩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명예심과 인정욕구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배 씨는 스스로를 평생 문화재 발굴과 보존에 힘 써 온 애국자요, 문화재 전문가로 인식하고 있었고, 세상과 사람들이 그렇게 인정해 주길 바라고 있었습니다. 본인은 학위는 없지만 한학 공부도 오래했고, 문화재 가치를 잘 알고 있는 사림이라는 자부심이 있었죠.

▷ 한수진 / 사회자 :

하지만 주변에서는 장사치 정도로 평가했고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그래서 더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했죠. 게다가 이번에 훈민정음 사건으로 절도범, 문화재훼손사범, 장물 절취범 등의 비난과 낙인을 받고 구속까지 되었으니 명예회복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아주 강한 상태였습니다.

당시에 배 씨는 만약에 국가가 자신을 모함하고 괴롭힌 조 씨와 조 씨 편을 들어 증언을 했던 증인들, 그리고 일부 문화재청 담당자, 그리고 검사와 수사관들을 형사처벌하고, 자신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고 적정한 수준의 보상을 해준다면, 훈민정음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며서 자신은 결코 후손에게 부끄러운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그런 상태에서 해결책이 있었나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배 씨의 이런 심경토로가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봤습니다. 그래서 문화재청에 의견서를 제출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배 씨의 감정 문제, 경제적 보상 문제, 그리고 명예욕구 문제를 적정하게 충족시켜주면서 훈민정음을 국가에 기증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방안들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죠. 문화재청 조사관도 저와 유사한 의견이었고요, 당시 배 씨를 변호하던 변호사가 배 씨 형의 친구였는데 그 변호사도 유사한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그런데, 왜 해결이 되지 않았죠?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당시 배 씨는 문화재관리법 위반으로 1심 재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는데요, 압박용이라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훈민정음 안 내놓으면 이렇게 큰 벌을 받게 될 거라는 압박이죠, 이를 통해 항소심 중에 배 씨가 훈민정음 해례본을 내놓기를 기대했습니다.

배 씨도 항소심 재판을 받으면서 명예회복 등 적절한 조치가 취해진다면 훈민정음을 국가에 기증하겠다고 공개 약속을 했습니다. 해결의 기미가 보였던 것이죠.

그런데, 그 사이 조 씨가 사망을 하면서 조 씨에게 원한을 갚을 길이 없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으면서 생각이 달라진 것이죠. 굳이 훈민정음을 내놓지 않아도 풀려날 수 있게 되었고, 혹시 훈민정음을 내놓으면 국가가 응징, 처벌하지 않을까, 다시 자신을 구속하고 처벌할지 모른다는 의심이 생긴 것이죠. 오랜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 동안 일종의 편집증적인 불신이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게다가 문화재청이나 어느 누구로부터도 구체적이고 충분한 보상이 제시되지도 않았고, 이후 자신의 명예가 회복되고 지켜질 지에 대한 보장이 마련된 것도 아니었던 것이죠. 배 씨는 당시에 문화재청과 다른 골동품업자들, 심지어 조폭까지 훈민정음을 노리고 자신과 자신의 집 등을 감시하고, 뒤지고 노리고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그런데, 배 씨가 분명히 갖고 있다고는 했나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안전하게 잘 보관하고 있고, 해외로 반출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워낙 고문서기 때문에 얼마나 안전하게 오래 있을까가 관건인데요, 제발 이번 불에 타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상주본이 간송본보다 가치가 더 높다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 표창원 소장 / 범죄과학연구소 :

네, 이 훈민정음 해례본 상주본은 지금 국보 제 70호로 지정된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본보다 더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간송본과 달리 상주본에는 조선시대 당시에 이 해례본을 보던 학자가 주석을 달아두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노트필기를 해 둔 것이죠. 한글창제의 원리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기 쉽게 부가해서 써 놓은 것입니다. 부디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 한수진 / 사회자 :

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표창원 소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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