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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만신창이 된 '이달의 스승'…졸속 선정 후폭풍

[취재파일] 만신창이 된 '이달의 스승'…졸속 선정 후폭풍
설 명절연휴를 앞두고 교육부는 '이 달의 스승' 사업을 벌이겠다며 보도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올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 다달이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모두 12명의 인물과 공적내용 일부도 공개했습니다. 취지는 "존경받는 사도상을 정립하고 스승 존경 풍토 조성을 위해서"라고 교육부는 설명했습니다.

처음 시작 달인 3월의 경우 최규동(조선교육연합회회장),4월 최용신(화성 샘골학교 설립), 5월 오천석(보성전문학교 교수), 6월 김약연(간도 명동학교 설립), 7월 김교신(양정고보 교사), 8월 조만식(오산학교 교사, 민족교육자), 9월 남궁억(독립운동가, 교육자), 10월 주시경(개화기 국어학자), 11월 안창호(독립운동가, 대성학교 설립), 12월 황의돈(간도 명동서숙 교사), 2016년 1월 김필례(정신학원이사장), 2월 이시열(만주 동창학교 설립)등 12명입니다. 교육부는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인물의 삶과 교육자로서의 일화를 포스터와 동영상 등으로 제작해 학생들의 교육 자료로 활용할 것 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출발부터 순조롭지 못했습니다. 언론 보도가 나간 뒤 20여 일만에 3월의 스승으로 선정된 최규동 씨의 친일행적 논란이 역사정의실천연대로부터 터져 나왔습니다. 일제 강점기 관변잡지인 '문교의 조선' 1942년 6월호에 최 씨가 "죽음으로 임금(천황)의 은혜에 보답하다"는 제목의 글을 일본어로 게재한 것으로 확인된 것입니다. 교육부는 곧바로 해명자료를 내고, 최규동 씨가 친일인명사전에 올라있지 않아 친일 의심을 하지 않았다며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12명 모두에 대해 재검증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습니다. 이미 제작된 최규동 씨 관련 포스터 등 교육자료도 황급히 회수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와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친일행적 조사가 이루어지면서 '이달의 스승' 친일논란은 일파만파로 번졌습니다. 단지 최규동 씨 뿐 아니라 12명 중 무려 8명이 친일논란에 휩싸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달의 스승'으로 선정된 인물 가운데 3분의 2가 친일행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조사 결과는 '이달의 스승' 선정 과정에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됐습니다.

황우여 사회부총리는 교육부장관으로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9월 교원단체총연합회소속 지부회장단과 간담회를 갖고, 교원사기진작방안의 하나로 '이달의 스승' 사업을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교육부는 곧바로 10월과 11월 두 달간 국민들로부터 온라인 추천을 받아 선정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추천된 1천 명 가운데 1차로 40명을 뽑았고 이들 가운데 최종12명의 선정작업을 벌였습니다.

선정위원회는 모두 9명으로 구성됐습니다. 교육부 산하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소속 교수2명, 대학교수2명, 초중등교사 3명, 교총대표 1명, 그리고 퇴직 교장모임인 삼락회 대표 1명도 포함됐습니다. 위원장은 삼락회 회장이 맡았습니다. 선정위원회는 올초 최종 12명을 선정해 교육부에 통보했고, 교육부는 추가 검증절차 없이 언론에 발표를 한 것입니다. 학생들이 본받을 스승의 표상을 선정하겠다면서도 철저하고 진실된 검증절차를 건너 뛴 셈입니다.

'이달의 독립운동가' 선정 사업을 벌이고 있는 보훈처의 경우 10명의 선정위원을 두고 있는데, 보훈처 차장을 위원장으로 근현대사학자 7명, 독립기념관장, 광복회장 등이 참가해 꼼꼼하고 신중하게 선정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정위원회에서 1차 선정작업이 끝난 뒤 독립기념관 석, 박사 전문가들에게 1-2개월간 검증을 의뢰해 친일행적을 조사한 뒤 매년 12월 최종 결정해 발표합니다. 이렇게 검증절차를 거치다보니 1992년부터 23년째 진행해 오는 동안 올 연말까지 선정된 '이달의 독립운동가' 289명 가운데 친일논란을 겪은 인물은 지난 2004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던 장지연 씨 1명 뿐이었습니다.

황 부총리는 최근 국민들에게 야단을 좀 맞더라도 사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육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선정위원회에서 4월의 인물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통보해오면 예정대로 이달의 스승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사업추진의 의지를 밝히기에 앞서 부실선정 논란을 잠재우고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선정위원회 구성부터 되돌아봐야 합니다. 균형 잡힌 역사인식과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또 보훈처와 같이 별도의 기관이나 단체에 검증을 의뢰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다시 졸속선정 이라는 비판을 받아서는 그나마 남아있는 사업추진 동력 자체가 사라질 것입니다. 미래 우리나라를 이끌고 갈 학생들에게 닮고 싶은 인물을 선정하는 일은 공사판에서 벽돌 찍듯 서두를 게 아닙니다. 천천히 따져보고 잘 해야 합니다. 다른 부처도 아니고 교육부이기 때문에 더 신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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