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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역사를 제대로 돌아봐야"…하루키, 반성 없는 日에 쓴소리

[취재파일] "역사를 제대로 돌아봐야"…하루키, 반성 없는 日에 쓴소리
<독일의 역사에서 무엇을 볼 것인가>

독자 :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걸친 독일의 역사에 엄청난 흥미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군사 마니아 같은 건 아닙니다.) 벌써 10년도 넘게 전쟁→고도 인플레이션→다시 전쟁으로 이어지는 당시의 흐름을 반복해서 동영상이나 책으로 보고 있습니다. 빈곤 등으로 나라가 혼란할 때의 인간(권력자와 대중)의 심리에 예전부터 꽤나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도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런 일이 일어날지도 모릅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불안해서 하루하루가 즐겁지가 않습니다. 어떻게 균형을 취해야 좋은 걸까요. (이를 가는 여자, 여성, 38세, 회사원)

무라카미 하루키 :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윌리암 샤일러의 《제3제국의 흥망》(명저입니다)을 독파하고 이내 나치의 역사에 빠져들었습니다. 그 시대의 역사는 정말로 재미있습니다. 재미있다고 하면 좀 그렇지만 농밀하다고 할까요, 보통은 아니라고 할까요. 아무튼 배워야 할 것들이 산더미같습니다. 지금도 나치와 관련된 것들은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일본의) 헌법을 개정하는 방법은 히틀러에게서 배워야만 한다" 같은 취지의 말을 지껄이는 멍청한 장관이 있습니다만 세상은 농담이 아니고 점점 무섭게 변해 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역사를 정확하게 되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출판사 신조사와 함께 만든 '기간 한정, 질문 답변용' 홈페이지 '무라카미씨의 거처'에 3월 24일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 원문 보러 가기

저는 지난 1월에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어떤 질문을 할까?'라는 제목의 취재파일로 이 사이트를 독자 여러분에게 알려 드린 뒤, 틈틈이 이 사이트에 들러 어떤 질문이 있었고, 하루키는 뭐라고 답했는지 지켜봤습니다. 그 가운데 눈에 띄는 질문-답변을 몇 개 골라 개인 블로그에 '발번역'이라는 제목을 달아 올리기도 했고, 설 연휴쯤에는 오디오 취재파일 두 편으로 인사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웹사이트가 개설된 것은 1월 15일이었고, 보름에 걸쳐 3만 건이 넘는 질문이 답지했습니다. '하루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 '하루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장소', '고양이와 야쿠르트 스왈로스 관련'으로 크게 분류된 질문과 이에 대한 하루키의 답변은 그동안 하루도 빼 놓지 않고 웹사이트에 10여 개씩 꼬박꼬박 올라왔습니다. 페이지를 빼곡하게 채운 수많은 질문과 답변들을 보면 이 사이트를 기획한 출판사 신쵸사도, 답변을 쓴 하루키도 참으로 성실하고 꼼꼼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당연히 향후 출판을 염두에 둔 기획이겠지만, 지금을 사는 현대인의 고민과 관심사, 그리고 그에 대한 하루키의 반응을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였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 것은 역시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하루키의 인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바로 앞에서 소개해 드린 질문-답변과 같은 내용입니다. '히틀러' 언급에 대해 하루키는 실제로 '말하다'가 아닌 '지껄이다'라는 어투의 동사를 사용했고,  '장관' 이라는 단어 앞에 '멍청이'라는 의미의 단어(ボケ)를 붙여서 직접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세상은 무섭게 변해 가고 있다"며 "이럴 때에는 역사를 정확하게 되돌아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것에서도 느껴지지만, 하루키는 비단 이 웹페이지 뿐만 아니라 매체 기고나 지면 인터뷰, 수상 소감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현재 한-중-일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긴장 관계가 상당 부분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혀 왔습니다.  

어제(24일)도 주미 일본 대사관이 홈페이지에 올린 홍보 동영상을 통해 전후 아시아의 번영은 일본의 경제 지원때문이라는 망언을 되풀이해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샀는데, 하루키가 보면 역시나 따끔하게 한 마디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다음 주면 이 '기간 한정, 질문 답변용' 홈페이지 '무라카미씨의 거처'는 사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당초 1월 말까지 질문을 받겠다고 발표한 신조사 측이 1월 31일 밤 11시 59분에 질문지 입력란을 없앤 '정확함'을 보면 역시나 3월 31일 밤 11시 59분에 사이트 폐쇄를 알리는 공지가 뜰 것 같습니다.

다소 결벽적이지만 그 쪽이 어쩐지 하루키답습니다. 정리된 '질문-답변'은 언젠가 책의 형태로 다시 나올 것이고, 어딘가의 답변에서 밝혔듯 새로운 소설도 쓰고 있다고 하니 책으로 하루키를 다시 만나게 될 날이 곧 오게 되겠죠. 본인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된 하루키가 다음에는 또 어떤 작품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세계의 독자들과 소통하게 될지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이트 주소(URL)로 쓰인 'welluneednt' 는 어디서 온 것일까요? 아마도 재즈 뮤지션 셀로니어스 몽크의 연주곡〈Well, You Needn't〉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입니다. 재즈 애호가인 하루키의 취향이 사이트 주소 같은 작은 곳에도 그대로 드러나 있어 흥미로운데, 곡 자체도 하루키의 글을 읽는 배경음으로 틀어 놓기에 딱 좋습니다. 취재파일 독자 여러분도 한 번 찾아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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