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포스코 수사 암초 만났나?

[취재파일] 포스코 수사 암초 만났나?
이완구 국무총리의 '부정부패 척결' 발언 이후 검찰은 전광석화처럼 포스코 건설을 압수수색했습니다. 대한민국 기간산업의 한 축을 담당하는 철강업계의 큰 형 포스코의 계열사입니다. 베트남 고속도로 공사 과정에서 협력업체를 동원해 10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하고 이 가운데 40억 원을 리베이트 명목이 아닌 다른 곳에 사용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검찰의 수사가 공식화 된 이후 포스코를 둘러싼 비자금 조성의혹은 여러 언론을 통해 봇물처럼 쏟아졌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또 국내 공사에서도 비슷한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정준양 전 회장 시절 무차별 인수합병이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부실기업을 특혜 인수했다는 의혹도 나왔습니다. 전 정권의 유력인사가 압력을 행사했다며 벌써부터 이니셜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언론이 포스코 수사에 지대한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전 정권의 실세가 개입됐을 것이라는 예상도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수사가 이른바 각종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도 있습니다.

포스코 수사를 주도하고 있는 곳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입니다. 특수 2부를 책임지고 있는 조상준 부장검사는 이른바 검찰내 특수부의 계보를 잇는 대표적인 칼잡이입니다. 론스타부터 SK, LIG 넥스원 수사를 두루 경험한 기업수사의 실력자로 손꼽히는 인물입니다. 최근 SBS 드라마 '펀치'의 주인공인 박정환 검사의 보직이었던 대검찰청 반부패부 수사지휘과장을 역임하기도 했습니다.
포스코_640

그런데 이번 주부터 검찰 내 분위기는 심상치 않습니다. 포스코 수사가 암초를 만난 분위기입니다. 베트남 공사에서 비자금을 조성에 가담했던 베트남법인장 출신 박 모 전 상무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까지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습니다. 수사의 핵심은 40억 원이 누구의 지시로 빼돌려졌고 비자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를 규명해야 하는데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흐름대로라면 박 전 상무의 직속상관인 정동화 전 부회장을 이번 주에는 소환조사를 해야하고 다음 주에는 정준양 전 회장의 소환여부를 조율해야 합니다. 실제로 검찰내 분위기는 지난 주까지만 해도 다음 주에 포스코 고위 임원들에 대한 소환조사가 시작될 것이라는 분위기도 감지됐습니다. 실명이 거론된 인사들에 대해 검찰이 출국을 금지한 것만으로도 이번 수사의 1차 목표는 명백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40억여 원의 용처를 확인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비자금 조성 과정에 가담했던 인물들이 적극적으로 진술하든가, 아니면 포스코건설이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 개입한 협력업체 관계자들이 진술하는 것입니다. 계좌추적에 압수물 분석을 통해서 자금의 흐름을 활용하는 건 여전히 한계가 있습니다. 특수수사의 최고의 기법은 결국 '자백'을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미있는 '자백'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검찰 고위 관계자들조차도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하소연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한 모양입니다.

포스코 수사는 수사 초기부터 각종 의혹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첫번째 암초를 만났습니다. 수사는 보안이 생명인데 보안에 자신이 없다면 한꺼번에 여러 의혹들을 수사하는 전담팀을 분산해서 동시다발적으로 수사에 착수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상대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포스코입니다. 고작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의 소속검사 7명이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닙니다. 7명이 달라붙어 쉴새없이 계좌를 찾고 있지만 포스코 의혹 가운데 곁가지라고 불렀던 베트남 비자금 40억 원의 횡령건 만으로도 쩔쩔매고 있습니다. 다른 의혹에 대한 본격 수사는 아직 착수도 못했습니다.

국무총리에 이어 대통령까지 나서서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라고 지시한 상황입니다. 국가공무원인 검찰은 국정방향에 맞춰 환부를 도려내기 위해 칼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환부의 크기를 칼이 감당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아무리 잘드는 칼이라도 작은 건 작은 겁니다.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쓰고 부패전담 수사팀인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정권 출범 직후 사라졌습니다. 중수부 시절에는 저축은행 수사부터 론스타에 현대차 비자금 수사까지 굵직굵직한 대규모 사건들을 일사천리로 수사했습니다. 당대 최고의 특수검사들을 불러 검사장인 중수부장의 지휘 아래 규모있는 사건도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파헤쳐 갔습니다. 정관계 로비 의혹으로 확대돼 이른바 대규모 '게이트'급 수사를 치르기도 했습니다.

지지부진한 포스코 수사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며 검찰 내부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대검 중수부의 부활입니다. 중수부 폐지와 함께 거악척결을 위한 검찰의 역량도 한 풀 꺾였다는 볼멘 소리가 나옵니다. 일정 부분 맞는 얘기입니다. 냄새 풀풀 나는 사건인데 수사가 지지부진한 걸 보면 국민들도 답답할 겁니다. 기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포스코_640

대검 중수부라는 좋은 그릇을 팔아넘긴 건 정치권의 야합이라기 보다는 검찰 자체에 원인이 있습니다. 정치검찰이 아니라고 항변하지만 공교롭게도 대검 중수부 출범이후 검찰의 수사는 오해(?)와 불신의 연속이었습니다.

구체적인 사건들을 요목조목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2004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를 제외하면 검찰이 국민에게 과연 박수받았던 적이 있었는지 한번 과거를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어진 권력과 권한에 도취되지는 않았었는지 수사과정에서 법리에 충실하지 않고 공명심이나 사심에 취했던 적은 없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포스코 수사를 보며 답답한 건 검찰 뿐만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제와서 대검 중수부를 부활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이에 동조할 여론이 얼마나 될지는 다시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검찰엔 미안한 얘기지만 '업'입니다. 자업자득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