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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주차장 사고, 정말 도망이 최선입니까?

◇ 주차 테러 '문콕'…사라지지 않는 이유

#사건1

지난해 여름 서울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 모씨는 출근을 하기 위해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나갔다가 주차선 안에 세워진 자기 차를 보고는 기분이 확 상했습니다. 

운전석 문의 손잡이 아래쪽에 세로로 길쭉한 흉터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른바 '문콕'피해를 본 것이었습니다. 가해자 연락처는 물론 없었습니다.

경비실 CCTV를 확인한 결과, 그 날 아침 옆 자리에 서 있던 대형 승용차 운전자가 무심결에 차 문을 확짝 열어 젖히면서 낸 '문콕 상처'인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차 주인에게 연락하니 '그런 일 없다'고 펄쩍 뛰었습니다. 경비실 CCTV에 찍혀 있다고 말하자 그제서야 돌아온 말은 '죄송하다' 한마디였습니다.

한 아파트 주민끼리 벌어진 사건이란 생각에 김 씨는 그냥 자비로 차 문을 수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도 억울했습니다. 그 때 CCTV 화면을 반년이 지난 지금도 보관하고 있는 것도 그 때의 억울함이 남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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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2

경기도 동두천에 사는 유치원 교사 최 모씨는 1년전 구입한 RV차량을 애지중지 관리해 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5일 조수석 쪽 앞 범퍼와 문에 빨간 페인트 자국과 함께 상처가 남겨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역시 가해자 연락처는 없었습니다.

블랙박스를 확인해 보니, 밤에 승용차가 후진을 하다 들이받더니 그대로 사라지는 장면이 잡혔습니다. 번호판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블랙박스 영상 가져오면 찾아는 보겠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최 씨는 직접 범인을 찾기로 했습니다. 블랙박스 동호회에 올려 네티즌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본인은 출근 전 아파트 단지 주차장을 돌며 빨간색 차를 일일히 살폈습니다.

이러길 사흘째, 네티즌 수사대가 찍어둔 차종과 차량 번호와 일치하는 차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네티즌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크림빵 사건의 가해자도 경찰이 아닌 네티즌이 찾았다는 사실이 상기됐습니다.

가해 차량에 자신의 연락처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가해자라는 중년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자기는 그런 사실이 없는데 연락처까지 남기는 등 왜 범죄자 취급을 하냐고 오히려 따졌습니다.

블랙박스 영상이 있으며 경찰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그제서야 사실을 시인하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보험사를 통해 처리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최씨는 가해자에게서 진심어린 사과를 받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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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두 사례는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상의 사건입니다. 그런데 두 사건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차장에서 벌어진 사고에도 분명히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가해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도로교통법 151조에 의하면 운전자가 주의를 게을리 하거나 중대한 과실로 다른 사람에게 재산 피해를 입히면 2년 이하의 금고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내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차장은 도로가 아닙니다. 이 법 적용이 안되는 겁니다.

물론 주차장 사고라 할 지라도 실수가 아닌 의도적 사건이거나 피해차량에서 파편이 튀어나와 다른 사고를 일으킬 정도가 된다면 처벌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차장 사고는 이 2가지 경우를 벗어날 가능성이 큽니다. 

한문철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의 지적입니다. "주차장 사고의 경우 증거를 확보해 가해자를 확인했다고 해도 실수로 인한 사고였다면 법적으로 처벌할 규정이 없습니다. 합의를 하거나 보험처리를 하는게 전부입니다. 가해자가 계속 발뺌을 하면 민사소송을 해야 하는데, 소송비나 정신적 고통을 생각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인터넷에서는 주차장 테러에 대한 허술한 법적용을 풍자하는 글들이 넘쳐 납니다. 

'어느 뺑소니범의 편지'라는 글입니다. "주차하려다 당신 차를 손상시켰습니다. 주변의 목격자들이 지금 이 쪽지를 쓰고 있는 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들은 분명 제가 제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그럼 이만."

주차장에서 사고를 내면 도망가는 게 최선이라는, 말 그대로 '도덕적 해이'가 넘쳐납니다.

동두천 사고 사례의 피해자 최 모씨도 이렇게 솔직한 심정을 말하더군요. "경찰에 전화해도 뭐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그냥 둘이 합의만 보게 해주니까 나도 나중에 이런 일이 벌어지면 도망가면 되겠다, 이런 나쁜 마음까지 먹게 되더라고요."

한문철 변호사의 지적입니다. "지금 현재의 법 체계에서 주차장 사고에 대한 법원의 해석은 '양심불량 양산법'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한 변호사는 주차장 사고도 어느 정도는 교통사고로 처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야 주차 테러 피해자들을 구제할 수 있다는 겁니다.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조심성도 생길 수 있고 말이죠.

이번엔 가해자 입장에서 따져 볼까요.

차 문을 열면서 옆차에 상처를 입히는 문콕의 경우 대부분 무심결에 문을 열거나 아이들이 문을 열면서 가해자가 되는 것이지, 옆차에 해를 주기 위해 일부러 문을 세게 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문제는 우리나라 주차장이 문콕 가해자를 만들기 쉽다는 데 있습니다.

일반 주차장은 1990년 정한 주차장법에 의해 폭이 230cm 이상 돼야 합니다. 1994년 가장 대표적인 승용차라 할 수 있는 쏘나타의 차폭은 177cm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2015년형 쏘나타는 차폭이 186.5cm로 10cm 가까이 넓어졌습니다.

하지만 법정 주차장폭은 여전히 230cm 그대로입니다. 차 문을 열고 탈 때 그만큼 여유 공간이 좁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들어 대형 차량 보급이 크게 늘면서 중대형 차량과 RV 차량이 전체 승용차의 8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주차 여건이 더 나빠진 겁니다.

김경배 교통환경문제연구포럼 전문위원과 서울 시내 주요 주차장을 둘러봤습니다. 우선 대형마트 주차장의 폭을 재 봤습니다. 상봉동과 제기동, 목동 등의 대형마트 일반 주차장은 모두 폭이 230cm를 넘었습니다.

문제는 공공기관이었습니다. 특히 주차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구청이 심각했는데요. 실외 주차장은 거의 220~230cm 수준의 폭을 유지했습니다. 기준에 맞거나 약간 미치지 못하는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실내 주차장은 어김없이 210~220cm 수준이었습니다.

건물을 지을 때 만든 기둥을 고려해 주차선을 긋다보니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이러다보니 차를 대고 문콕을 조심하더라도, 차에서 내리는 게 쉽지 않고, 내리더라도 옆차에 옷을 스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경배 위원의 말입니다. "건설을 하거나 건축을 할 때 교통량과 자동차 수 등을 따라 주차장을 함께 짓는 공조의 패턴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건축만 먼저 해놓고 나중에 주차장을 꾸몄던 겁니다."

실제 일부 구청에선 차를 한대라도 더 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주차장 폭을 좁게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습니다. 

고객 입장에서는 가고자 하는 장소를 선택할 때 주차장의 유무, 주차장의 편리성이 한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손님을 끌어야 하는 대형마트 등 민간상업시설은 알아서 규정보다 더 크고 편리하게 주차장을 꾸며 놓습니다.

주차 요원도 상주시키며 서비스를 합니다. 발렛 파킹 서비스를 하는 곳도 늘었습니다. 운전자 입장에서는 주차 스트레스가 확실히 줄어듭니다.

그러나 구청 등 공공기관은 다릅니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입장에서는 민원인이 찾아오든 안 찾아오든 상관 없습니다. 민원인 중심의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주차 불편이니 주차 테러니 주차장 폭이니 아무 관심이 없는게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원이 쇄도하자 정부는 부랴부랴 2012년부터 50면 이상 주차장을 신축할 때는 주차장 폭을 250cm로 늘리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기존 주차장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문콕'은 운전자 개개인의 양심에 따른 문제입니다. 그러나 취재를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적어도 공공기관이나 지자체 만큼은 앞장 서서 주차장 현실화를 이뤄야 할 의무가 있는게 아닌가 하는 점이었습니다.

민간시설보다 못하면서 민간시설의 주차장을 관리 감독한다는 게, 무언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 '폭력'에 '살인'까지…내 집앞은 내 주차장?

서울시 다산콜센터에는 하루 평균 1천600건의 생활 민원이 들어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55%, 880건이 주차와 관련된 민원입니다. 주차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 겁니다.

그런데 서울시는 주차장 확보율이 2006년 100%에 도달했고, 2013년엔 차량 297만대에 주차면 376만면으로, 확보율 126%를 돌파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주차장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충분하다고 느끼지 못할 겁니다.

물론 신축 상업시설이나 고급 아파트, 대형 쇼핑몰 등의 주차장은 충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도심형 생활주택, 빌라 등이 밀집한 실제 주택가에선 주차장 확보율 126%는 남의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는게 현실입니다.

현실이 이렇다보니 주차시비나 주차전쟁, 주차테러는 이런 주택가에서 벌어지는게 다반사입니다. 다음 사건들을 살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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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1

지난해 10월 인천 부평에 사는 이 모씨는 한 동네로 이사온 후배의 집들이에 갔습니다. 몰고 간 승용차를 후배 집 근처에 세웠습니다. 앞뒤 공간도 여유가 있었고, 혹시나 해서 휴대전화 번호를 승용차에 붙여 두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걸려온 전화에선 다짜고짜 차를 빼라며 화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남의 주차장에 왜 차를 댔냐는 항의성 전화였습니다.

어이가 없어 '후배 집들이와서 그 앞에 잠시 세웠을 뿐 남의 주차장에 댄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지만 되돌아 오는 건 욕설 뿐이었습니다.

결국 차를 빼주러 나간 이씨는 전화를 건 남성에게 무차별 폭력을 당했습니다. 5분 정도 폭력이 이어졌고, 이씨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이 사건은 119와 112가 와서야 일단락 됐습니다.

이 씨는 자신이 왜 시비에 얽혔는지, 왜 맞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이씨의 차 앞 뒤로 공간이 충분했습니다. 다만 한마디 기억나는 말은 있었습니다. '왜 남의 집 앞에, 남의 주차장에 차를 댔느냐'는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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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2

지난해 11월 경기도 부천의 한 주택가에서 집 앞 주차 문제로 40대 남성이 옆집 자매를 흉기로 살해했습니다. 너무 많이 알려진 사건인만큼 더 설명은 않겠습니다.

취재팀은 경기개발연구원 류시균 교통연구실장과 함께 부천 살인사건 현장을 찾았습니다. 좁은 골목길에 차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을 거란 기대를 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사건 현장 앞 골목은 상당히 넓었고, 차를 댈만한 공간은 상당히 많았습니다. 특히 사건 현장 앞쪽과 옆쪽은 학교 건물이었습니다. 차를 댈 주민들이 주차 공간 때문에 멀리 가야할 일은 없어 보였습니다.

실제 이 동네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상인에게서 뜻밖의 말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주차는 그렇게 심각한 지역이 아닙니다. 내가 여기서 20년을 살았는데 주차 가지고 그렇게 심한 동네가 아니라고요. 주차 공간이 없어서 싸운게 아니죠."

다른 주민은 '자기 집 앞 주차'를 고집하다 벌어진 일 같다고 말했습니다. "우린 여기 다 오래 살았는데, 피해자 집만 이사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선을 그어서 이 선을 왜 넘어왔냐, 그것 때문에 그랬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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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는 이런 생각을 한 겁니다. '내 집앞은 내 차만 댈 수 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가 '이 곳이 당신 땅이냐?'라는 말을 하면 분을 참지 못하는 겁니다. 폭발하는 거죠. 이 상황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을 겁니다.

류시균 실장의 말입니다. "골목을 돌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기 차를 빼면서 그 자리에 장애물을 갖다 놓더라고요. 그 자체도 불법입니다. 집 앞은 자기 땅이 아닙니다. 고질병이에요. 내 집 앞 도로는 나만의 전용 주차장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시비의 단초가 되는 겁니다."

경기개발연구원이 2013년 4월 시행한 불법주차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가 '주차장이 없거나 너무 멀어서'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 곳보다 가까운 집 앞을 자기만의 '공짜' 주차장으로 생각하는 게 굳어진 겁니다.

결국 주택가의 부족한 주차장 문제는 '공유'개념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일부 자치구에서 실시되는 게 '거주자 우선 주차제도'입니다.

야간제, 주간제, 전일제로 나눠 시간대별로 주차장을 공유하는 제도인데, 전일제가 한달 평균 4만원으로 저렴하다보니 이용자의 90%가 전일제를 선택해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실상 '공유'개념이 실종된 겁니다.

일부 자치구에서는 어플을 만들어 거주지 우선 주차장 공유사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담당 공무원 외에는 이런 어플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게 현실입니다.

주차 시비가 주차 폭력으로, 또는 주차 테러로, 급기야 주차 살인으로 이어지는 현재. 물론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관의 무책임과 무능력에 그 원인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 차만 중요하다, 남의 차는 상관없다'는 이기적인 습관, 그리고 '내 집앞은 내 차만 댈 수 있는 내 땅이다'라는 그릇된 인식, 마지막으로 '주차비는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낭비하는 것'이란 비뚤어진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자동차 2천만 시대를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주차 스트레스'는 사라질 수 없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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