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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움받을 용기'…아들러 열풍

[취재파일] '미움받을 용기'…아들러 열풍
● 제목 한 번 절묘하네…‘미움받을 용기’?

‘미움받을 용기’. 서점 매대에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장사하기 참 적절한 제목은 누가 붙였을까’. 두 번째 생각은 ‘나는 미움 받을 용기가 이미 충분하니, 읽을 필요 없겠군’ 이었다. 그런데 몇 주 되지 않아, 이 책은 종합 베스트셀러 2위가 됐다. 그리고 다시 얼마 뒤, 색칠 유행을 몰고 온 ‘비밀의 정원’의 오랜 독주를 깨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5주째 1위. 마침 출간 4개월만에 25만부 정도가 팔렸고, 판매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고 출판사는 설명한다. 마침 저자들이 한국에 온다고 하니, 기사를 쓰려면 나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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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왜 이 책에 열광하는가.

‘미움 받을 용기’는 오스트리아의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알프레드 아들러의 이론을 설명한 책이다. 아들러에 정통한 일본 철학자 ‘기시미 이치로’와 작가 ‘고가 후미타케’가 지었다.  2014년 일본에서 같은 제목으로 출판돼 70만부가 팔리며 연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아들러의 책은 과거 ‘행복론’이 조명될 때마다 출간돼 왔다. 기시미 이치로씨가 펴낸 책만도 여러 권이다. 그런데 유독 ‘미움받을 용기’가 유독 압도적으로 많이 팔렸다.

앞서도 말한, ‘절묘하게 잘 지은’ 제목 덕을 무시할 순 없겠다. 오히려 책 속에는 ‘평범해질 용기’나 ‘자기 수용’ 같은 다른 키워드도 많다. 이 중 굳이 ‘미움받을 용기’를 제목으로 정한 이유를 이 책의 두 저자에게 물었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을 인간관계에서 비롯한 문제로 봅니다. 인간관계에서 제일 어려운 게 뭘까 생각하니, ‘미움을 받는 용기가 아닐까’하는 결론을 내려서, 제목을 그렇게 붙였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남들한테 미움을 받으라는 게 아니라, 미움을 받을 용기를 가지라는 겁니다. 만약 주변에 나를 미워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면, 나는 자유롭지 못한 너무 불편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두 번째는 독특한 구성이다. 철학자와 젊은 청년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뤄져 있다. 철학자의 설명에 청년은 ‘일반 독자’가 가질 법한 궁금증과 수긍이 가지 않는 점들을 집요하게 묻는다. 이 때문에 강의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극본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아들러의 주장은 매우 이상적이어서 중간중간 책을 덮어버리고 싶기도 한데, 이 때마다 ‘청년’도 독자와 마찬가지로 ‘답답하다’, ‘이해가 안간다’, ‘모순 아니냐’ 등 이의를 제기한다. 이 점이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다른 책들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를 저서로 남겼잖아요. 그것이 이 책의 바탕으로 깔려 있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책 속 청년의 의문은 실제로 제가 기시미 선생님 댁에 찾아가서 대화했던 내용입니다. 실제 제 질문들이죠.” (고가 후미타케)

 
여기에, 타인과 자신과의 비교를 ‘24시간 체제’로 만들어버린 SNS시대와 ‘잘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사회 분위기에 지친 젊은 독자들이 큰 위안을 얻은 것으로 풀이된다. 교보문고 집계를 보면, 아들러 심리학 책을 산 사람의 41%가 20~30대 여성이다. 30~40대 남성이 20.7%로 뒤를 잇고 있다.
 
● “타인의 기준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라.”

‘심리학’의 외피를 썼지만, 알맹이는 ‘자기계발서’나 다름없는 이 책은, ‘무엇이 주어졌냐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책 한 권에 담긴 내용을 상세하게 다 옮기긴 어렵지만, 대략 요약하면 이렇다. 과거나 조건에 대해 불평 말고, 남이 세워 놓은 기준에 맞추려고 애면글면 하지 말아라. ‘평범한 나’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도 여행의 모든 순간이 소중하듯, 삶은 매 순간이 소중하다. ‘지금, 이 순간’을 진지하게 살면 된다. 행복해지는 건 ‘선택’과 ‘용기’의 문제다 ‘남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라 상대방의 일이니, 내 일과 남의 일을 분리해 생각해라.

그렇다고 ‘남 배려 안하고 피해 주면서 제 잘난 맛에 도취돼 살라’는 건 아니다. 사람의 모든 고민이 ‘인간관계’에서 비롯됐듯, 행복도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본다.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이라며, 내가 사회에 ‘공헌을 하고 있구나’ 하는 ‘공헌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 나는 나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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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바라는 바와 제가 하고 싶은 게 달라요. 부모님이 저를 많이 사랑하시는 걸 알고 있고, 저도 부모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 결정하기 어려워요. 전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
지난 12일 밤,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열린 저자 강연회 참석자의 질문이다.

기시미 이치로씨의 답이 인상적이다. “부모님의 말대로 하고 싶지는 않으면서 그래도 ‘좀 맞는 것 같기도 한데’ 라고 생각하는 건, 나중에 부모님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핑계거리를 찾고 있는 겁니다. 결정은 당신이 내리는 겁니다. 당신 인생이니까요.”

그리고 또 다른 참석자의 고민에 기시미 이치로 씨는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시라”고 조언하면서 “그런데, 우리가 꼭 잘날 필요가 있는 걸까요”라고 반문했다.
 
책을 읽으며, 강연을 들으며 내내 이 노래가 생각났다.
뮤지컬 ‘라 카지’ 中 주인공 앨빈(배우:정성화)이 부르는 노래 ‘나는 나일 뿐’.
(앨빈은 좀 특수한 상황이긴 하지만, 이 노래에서 느낄 수 있듯이, 특수성을 넘어선 보편성으로, 매 공연 때마다 이 작품은 큰 호응을 받고 있다.)

“내 세상 여기 나만의 조그만 행복,
내 세상 여기 부끄럽지 않아 결코…
… 내 인생 결국 그건 바로 나의 선택…”
 
 
● 그러나, 여전히…


“프로이트 같은 경우는 인과응보적인, 원인이 있으니까 결과가 있다는 건데, 아들러는 굉장히 긍정적이어서, 지금부터라도 원하는 순간부터 변화가 가능하다는 점이 고무적인 것 같아요.”(한선경, 독자)

“저는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굉장히 많은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인정을 받아도 생각처럼 그렇게 기쁘지 않더라고요. 그냥 내가 나를 인정해줄 때 기쁨이 훨씬 좋더라고요. 저의 이런 생각을 책으로 확인하고 확신을 갖게 됐어요.” (송인혜, 독자)

“요즘 사람들이 너무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본다고 해야 할까요. 남들 눈치 보고, 스펙에 연연하고.. 그런데 감사나 예쁨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공헌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김준형, 독자)

“책을 읽으면서 내내 통감한 건, 내 얘기를 써놓은 건가라는 거였어요. 저는 열등감이 많았고, 잘되는 사람들 보면서 나는 왜 안될까, 왜 적이 많아지는걸까 했는데, 문제는 저 자신이더라고요.” (임보람, 독자)

저자 강연회에 온 독자들은 SBS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일반인 인터뷰를 숱하게 했지만, 이 날 강연회 독자들처럼 행복한 표정의 인터뷰이들은 또 없었다.

값싼 힐링이고, 개인에게 모든 걸 뒤집어씌우는 자기계발서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그러나 독자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토닥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읽고 나면 '용기'가 생기고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특히 ‘칭찬도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라’고 하는데, 야단은 그렇다 치자. 그래도 칭찬은 ‘결과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과정과 노력에 대한 격려, 칭송’은 해도 되는 것 아닌가.

“과정에 대한 격려 역시 신중해야 할 부분입니다. 결국 상대를 조종하려는 목적이 있으면 안됩니다.” (기시미 이치로)

아들러는 ‘상벌 교육’도 금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지금 학교나 회사에서 하는 ‘평가’도 모두 없애야 하는 건가?

“학교에서 성적을 매기고, 회사에서 직원들을 평가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겠지요. 대신,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하더라도 “내가 학교에서, 직장에서 학업이나 근무 실적으로 나쁜 평가를 받았을 뿐, ‘나’라는 존재가 나쁜 평가를 받은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기시미 이치로)
 

저자의 설명을 들었지만, 여전히 수긍이 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아들러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좀 모순적이고, 지나치게 이상적인 것 아닌가.

“이상적인 생각이죠. 그러나 이상을 알아야 현실을 바꿀 수 있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8뉴스] "미움받을 용기 가져라"…'아들러 심리학'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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