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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준금리를 내려라! 전격 대작전

[취재파일] 기준금리를 내려라! 전격 대작전
* 1월7일 경제관계장관회의. 최 부총리. “(현재의 경제상황은) 수요 측면에 따른 디플레이션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 1월15일 부산항만공사. 최 부총리. “올해 여러 리스크가 있지만 정부가 당초 예상한 연간 경제성장률 3.8%를 달성할 수 있다”
연초라서 경제에 긍정의 마인드를 불어넣을 필요는 있겠다.

* 2월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 최 부총리. “적극적인 정책 대응으로 경제회복 불씨를 살렸지만 지난해 4분기 부진 등으로 회복 모멘텀이 미약한 상황이다. 공공, 금융, 노동, 교육 등 4대 부문에서 누적된 문제 해결에 매진하겠다”
다소 현실적이지만 여전히 3.8% 성장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 2월9일 로이터통신 인터뷰. 최 부총리. “(현 2.0%의 기준금리는)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이다...재정-통화 정책상의 확장 기조는 유지되고 있다...금리 인하나 인상보다는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외신에 대한 립서비스 성격이 있다고 해도, 이 때까지는 금리인상을 적극적으로 주문하는 입장은 아니었다.

* 3월 들어 일부 언론이 한국은행을 때리기 시작한다. 물가안정이라는 고유 목표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세계적으로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파이터 역할을 하는 시대는 갔으니)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처럼 돈을 풀어 경기에 적극 대응(디플레이션 파이터로서의 역할)하라는 요지다. 생산, 소비, 수출의 경기지표는 급속히 악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 3월4일, 완벽한 터닝포인트. 최 부총리는 한 조찬강연에서 “(경제가) 옆으로 횡보하는 답답한 움직임을 보이는 게 5∼6년째 지속하고 있다...고도성장기는 다시 오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저물가 상황이 오래 가서 디플레이션 우려 때문에 참 큰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후 금리인하 논쟁이 본격적으로 불붙는다. 정부, 언론, 여권까지 전방위적인 압박이다. 한국은행은 점점 수세에 몰렸다.

*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하루 앞둔 11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카운터 펀치를 날린다.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전 세계적으로 통화완화 흐름 속에 우리 경제만 거꾸로 갈 수 없다” 한국은행은 외통수에 몰렸다.
* 3월12일 전격적으로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내린다. 한국은행 기자실은 순간 술렁였다. 당황의 표시다. ‘전격적’이라는 표현이 주관적이지 않다는 건 3월10일 나온 금융투자협회의 설문 결과에도 나타난다. 채권시장 전문가 114명 가운데 92.1%가 기준금리의 동결을 예상했다.


사실 다음과 같은 분석이 채권시장에서는 우세했다. “금통위가 그동안 금리인하 시그널을 제대로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부와 여권이 전방위로 압박한다고 해서 바로 기준금리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존심이 있지. 하지만 생산, 소비, 수출 등 경기지표 전반이 악화되고 있으니 3월 금통위에서는 소수 의견으로 금리인하 주장이 있었다는 시그널을 주고 4월에 내릴 것이다” 이같은 ‘3월 소수의견 시그널 - 4월 기준금리 인하’라는 순진한 기대를 금통위는 과감하게 깨버렸다. 금통위는 나름의(?) 독립성을 과시했다. 한 달 더 압박을 받고, 시장의 예상대로 4월에 기준금리를 내리는 시나리오가 한국은행, 그리고 금융통화위원회로서는 더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하지만 한국은행이 나름의(?) 독립성을 발휘했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보는 것은 아니다. 김기식 새정치연합 의원은 금리인하가 단행되기 무섭게 이런 논평을 내놓았다. “김무성 대표의 금리인하 촉구 발언에 이은 이번 기준금리 인하 조치는 한국은행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함으로써 한은과 향후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훼손시켰다. 이런 점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금리인하 압박에 굴복한 이주열 한은 총재에 대해서도 매우 실망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울러 이번 기준금리 인하 과정에 비추어 볼 때, 한은의 독립성 문제를 다시 한 번 논의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을 밝혀둔다”

정부와 여권의 전방위적인 압박은 의도하든 않았든 이런 부수적인 효과도 낳았다. ‘정부는 경기를 살려보려고 발버둥치고 있는데 고고한 한국은행이 머뭇거리는 바람에 경제가 더 안 좋아졌다’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경기침체에 대한 책임의 화살은 어느 새 세종시에서 남대문로로 방향이 돌아가 있다.

금융위원회의 가계부채 대책도 효과를 키울 수 있게 됐다. 기존 변동금리-일시상환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분할상환 형태로 바꿔주는 ‘안심전환대출’의 메리트가 커졌다. 전환대출 금리는 지금까지 2.8~2.9%로 예시돼 왔는데, 이번 기준금리 인하로 2.5% 언저리까지 더 낮아질 것이다. 기존 변동금리-일시상환 대출보다 금리가 (평균적으로) 1%p 가까이 낮다는 것은 (평균적으로) 0.5%p 정도 낮은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가계부채 구조개선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더 좋은 여건이 조성됐다는 의미다. 물론, 고정-분할로 바꿀 만큼의 소득이 뒷받침되는 기존 대출자 가구가 얼마나 많을지가 관건이지만.

물론 나름의 취재 결과,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시장에서는 다수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양새가 영 좋지 않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한은의 독립성은 다시 의심받게 됐다. 한은 관계자는 “일부 언론의 바람몰이와 위기를 조장하는 정부 관계자의 발언 때문에 오해를 받게 됐다. 이런 방식은 중앙은행이 적절한 통화정책을 수행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절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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