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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독립출판, 어디까지 읽어보셨나요?

[취재파일] 독립출판, 어디까지 읽어보셨나요?
● '독립출판'은 무엇?

- 먼저, 잡지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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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록셔리'. 서가에서 제 눈길을 확 사로잡은 잡지입니다. 독특한 서체의 딸기우유색 '록셔리'라는 제호도 특이한데다, 병원이나 미용실에서 보곤 하던, '럭셔리'라는 잡지가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잡지 '록셔리'에는 실제로 곳곳에서 '럭셔리'의 패러디가 눈에 띕니다.

두어 페이지 넘기면, 곧바로 '발행인'이자 '저자'인 현영석 씨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유머감각에 배꼽을 잡게 되고, 투철한 실험정신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보통 잡지의 절반을 차지하는 '광고'는 일절 없습니다.
 
- 다음은 사진집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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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찍은 뒷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나이도 인종도 성별도 다른 뒷모습들인데, 책장을 넘기다 보면, 문득 내 뒷모습이 궁금해집니다. 다른 사진집에는 자전거만 가득합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곳곳에서 찍은 자전거 사진들입니다. 이 책을 펴낸 강영규씨는, 필름 카메라를 좋아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책으로 묶어보고 싶었지만, 기성 출판사에 가져가면 수지 타산을 따지고, 유명작가인지 아닌지를 따질 것 같아서, 출판사를 찾아가지 않고 그냥 '자가 출판'으로 책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제 책을 한 번 만들어 보고 싶었고, 거기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2012년입니다. 이후 2013년 12월부터 '워크진'이라고 한 달에 한 권씩 시리즈로 내게 됐고, 지금까지 모두 19종 3천부를 펴냈어요. 한 번에 목돈이 들지는 않기 때문에 꾸준히 발행할 수 있어요."
 
- 잡지와 사진집 말고 텍스트가 위주인 단행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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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기지 만들기'는 나만의 비밀기지의 의미와 만드는 방법을 진지하게 탐구합니다. '탐정사전'은 각 문학작품에 나왔던 다양한 탐정들을 망라합니다. 대부분의 '다수'에게는 외면받을지 모르지만, 특정한 '소수'는 열광할 책들입니다.

● 독립출판은 진짜 무엇?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볼까요. '독립출판' 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뜻이 가장 궁금해집니다. '독립'? 무엇으로부터?

국립중앙도서관의 '독립출판 전시' 기획자이자 계간 '그래픽'지의 발행인 겸 편집장인 김광철 씨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독립출판은 먼저 '자본'으로부터의 독립. 또 기존 출판 관행으로부터는 독립을 뜻합니다.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젊은 사람들이 인디 음악 하듯이, '마이너'하고 '키치적인' 방식이 있고요, 다른 하나는 소형 출판사 단위의 독립출판이 있어요. 프로파간다, 이안북스, 워크룸프레스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공통점은 독자 위주, 시장 위주가 아니라, 펴내는 사람 위주로, 자신의 비전이나 목표를 가지고하는 출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기획 방향이 아주 예리합니다."


요약하면, 돈이 벌릴지, 사람들이 많이 읽을지를 따지지 않고, '내'가 펴내고 싶은 내용을 출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업계에서도 이 '독립출판'이라는 용어의 적용범위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의 '독립출판 전시' 공동 기획자인 북아티스트 김명수씨는 이렇게 말합니다.

"독립출판은 자가출판부터 소규모 출판사까지 계속 분화하고 있는 추세라서, 앞으로도 독립출판에 대한 개념이라든가 그런 것들은 계속 확장될 거고, 계속 다시 정의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미국의 경우, 대형 출판사가 펴내는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독립출판'으로 구분하고 있어서, 독립출판물이 기성 출판물을 양적으로 크게 앞지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6~7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독립출판'이 활발해지기 시작해서, 지금은 연간 400~600종 정도가 나오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추정하고 있습니다.

● 이런 책은 어디서 파나?

"교보문고나 반디앤 루니스, 인터파크나 예스 24에서는 이런 책을 한 번도 못봤는 걸" 하실 겁니다. 네, 일부 책들은 기존 서점에서 팔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독립출판물'들은 대체로 '독립서점'이라고 불리는 새로운 스타일의 동네 책방에서 주로 유통됩니다. 홍대 근처의 '유어 마인드'나 '헬로 인디북스', '별책부록',  대학로의 '이음 책방', 용산의 '스토리지 북앤필름', 성북동의 '오디너리북샵' 등 전국에 38곳 정도가 있습니다.

(자주 다니시는 분들은 책방 이름만 들어도 반가우시죠? 지난해 8뉴스에서 이런 개성 있는 책방들을 소개했었죠. 당시 기사를 다시 보시고 싶으시면, 여기 ▶해당 기사 보러 가기 당시 취재파일을 읽고 싶으시면 여기 ▶해당 기사 보러 가기) 서울에 가장 많지만, 부산과 대구, 대전, 포항, 강릉, 제주, 청주에도 있습니다. 특히 제주에는 세 곳이나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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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 용산의 '스토리지 북앤필름'은 앞서 소개한 사진집 '워크진' 시리즈를 펴내는 강영규 씨가 운영하는 서점입니다. 직장인이던 강영규 씨는 책을 펴내면서, 책을 팔아줄 서점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예 '책방 주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하냐에 대해서는 여전히 고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강영규 씨는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출판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에게 '자가 출판'에 대해 알리는 등 매일매일 워크샵을 열고 있습니다.

● 국립중앙도서관 '독립출판 특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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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 가지 않아도 독립출판물들은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3월 한 달 동안 국립중앙도서관에서 '독립출판 열람실'이라는 특별한 전시를 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시'라고 하지만, 책들이 유리틀 속에 들어가 있는 게 아니고, 서가에 놓여 있기 때문에 편하게 꺼내서 읽어볼 수 있습니다. 책상과 의자도 비치도 있어서 마음껏 시간을 보내도 좋습니다.

이 전시를 기획한 계간 '그래픽' 발행인 김광철 씨는 "400종 600권의 독립출판물을 한데 모으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협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유통 총판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만도 합니다. 게다가 그냥 모으기만 한 게 아니라, 독립출판물로는 처음으로 종류를 나눠 분류 번호를 매겼습니다. 독립출판물에 대해 공공기관이 체계적 분류와 아카이빙에 나선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독립출판은 '젊은 사람들'의 유행 정도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출판물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할'이라는 잡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을 담았는데, 실제로 국립중앙도서관 전시에서 많은 장년층이 관심있게 본 콘텐츠라고 합니다. 또 제게 퍽 인상적이었던 '안녕, 둔촌 주공아파트'는, 굳이 '둔촌주공'이 아니더라도, 1980년대 주공아파트에 살았던 사람이라면 반가울 만한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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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읽을 시간도 없는데, 언제 독립출판물까지 보냐고요? 일단 한 번 보고 나면, '나도 책 한 번 내볼까' 하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이 내용은 8뉴스에도 방송됐습니다.

▶ [8뉴스] 나만의 책 만들어볼까…'독립출판' 약진
▶ [취재파일] 그 '책방'에는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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