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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사다리로 만든 세상…연극 '라이온보이'

무대로 올라온 판타지 소설의 매력과 한계

[취재파일] 사다리로 만든 세상…연극 '라이온보이'
영국 극단 컴플리시테가 한국에 왔습니다. 연극 ‘라이온보이(Lion Boy)’의 공연을 위해섭니다. 컴플리시테는 셰익스피어로부터 이어져온 영국 연극의 전통에 저항하고, 이미지, 영상, 움직임 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영국의 현대 연극사를 새로 썼다는 평가를 받는 유명 극단입니다. 대본 암기를 통해 인물을 구축하는 대신 오랜 시간 연출가와 배우들이 즉흥적 사고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고 발전시켜가는 독특한 제작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영국 현대 연극의 대표적인 극단이 한국에 가져온 ‘라이온보이’는 어떤 작품일까요? 원작이 따로 있습니다. 지주 코더(Zizou Corder)라는 필명으로 어머니 루이나 영과 그녀의 딸이 2003년 함께 쓴 동명의 3부작 소설이 원작입니다. 영국에서는 ‘제 2의 해리포터가 탄생했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큰 인기를 얻었고, 그 흥미진진함에 매혹돼 할리우드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를 추진 중이라고 합니다. 어쩌면 멀지 않은 시기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로 다시 태어난 ‘라이온보이’를 스크린에서 볼 수도 있겠네요.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가까운 미래의 런던, 주인공은 찰리 아샨티라는 소년입니다. 배경이 되는 미래의 런던은 지구 온난화로 한겨울에도 나무에 망고가 열리고, 사람들은 태양열로 스마트폰을 충전하며 생활합니다. 평범한 소년 찰리는 어느 날 집에 돌아와 부모님이 사라진 것을 발견하죠. 독성학자인 아버지와 약품개발자인 어머니가 납치된 사실을 알게 된 찰리는 부모님을 구하기 위한 모험에 나섭니다.

이 과정에서 찰리의 특별한 재능, 즉 고양이과 동물(고양이는 물론 사자, 표범 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입니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능력이 극의 다양한 변주를 만들어 냅니다. 찰리의 등장으로 인해 극에는 말하는 고양이, 말하는 사자도 나오죠. 후반부에는 각국의 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카멜레온까지 등장합니다.

공간 이동도 다채롭습니다. 영국 런던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찰리의 여정을 따라 프랑스로 이탈리아로 또 모로코로 이어지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냅니다. 무대는 최첨단 미래도시에서 아프리카 초원으로 옮겨갔다 다시 건물 전체가 컴퓨터 시스템으로 제어되는 거대기업의 본사 안으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변화무쌍하죠.

스케일이 어마어마한 이런 판타지 소설을 무대 위로 가져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게다가 오랜 연극의 전통과 높은 기술 수준을 가진 영국이란 나라의 촉망받는 극단이니, 첨단 기술과 휘황찬란한 무대를 기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하지만 컴플리시테가 내놓는 답은 정반대입니다. 그들의 무대는 단순하다 못해 초라할 정도입니다. 둥그런 마당처럼 생긴 무대는 8명의 배우(모든 배우는 1인 다역을 소화합니다.)가 함께 왔다갔다 하다보면 꽉 차다 못 해 비좁아 보일 정도입니다.

다양한 소품을 쓰는 것도 아닙니다. 배우들은 의자나 사다리 같은 작고 단순한 소품들을 무대 여기저기에 놓았다 치웠다를 반복할 뿐입니다. 뒤에 선 사람이나 소품의 실루엣을 비춰 드러내는 얇은 흰 천과 하늘로 날아가는 작은 빨간 풍선에서조차도 대단한 기술을 발견할 순 없습니다.

분장은 또 어떤가요? 동물 역할을 맡은 배우들도 별다른 분장은 없습니다. 뮤지컬 캣츠 같은 정성 어린 분장은 보이지 않습니다. 별종 고양이는 자신의 성격을 드러내는 듯한 추레한 연미복을 입고 등장하고, 카멜레온은 반짝반짝 빛나는 스판 재질의 옷을 입은 채 헤드폰을 썼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매우 고양이스럽고, 카멜레온스럽다는 건 배우들의 빼어난 연기 덕분일 겁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미래세계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소설을 우리 눈앞에 펼쳐 보여줄 수 있을까요? 해답은 간단합니다. ‘그렇다 치고’. 배우들은 끊임없이 관객들에게 ‘그렇다 치고’ 볼 것을 요구합니다.

배우 두 명이 작은 사다리 두 개를 들어 붙이면 그건 배, 사다리 네 개를 일렬로 붙이면 그건 인공지능 건물의 좁은 통로, 사다리 네 개가 안에 적당한 공간을 두고 네모 모양으로 각을 이루면 그건 미래의 첨단 감옥, 뭐 이런 식입니다. 사다리와 의자가 허공을 휘저으면 도심의 가파른 계단과 좁은 골목 등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사라집니다. 한 마디로 사다리로 만든 세상이라고 해도 허황된 표현만은 아닙니다.

그런데 뛰어난 점은 그 세상이 조금도 허술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건 오로지 배우와 단순한 무대뿐인데, 제 상상력이 더해지면서 매 순간 눈앞에 보이는 않는 장면들을 썩 흥미롭게 구현해내고 있었습니다. 대단한 능력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 책을 읽을 때는 이런 식의 상상력을 동원하니까요.

어렸을 때 저희 집에는 ‘노래하는 그림 동화’라는 동화책 세트가 있었는데요, 제가 무척 좋아했었습니다. 책과 함께 동화 내용이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가 있었는데, 녹음된 이야기를 들으며 많은 상상을 했었습니다. 누가 그려 보여주지 않아도 제 마음 속에 신데렐라도 인어공주도 콩쥐팥쥐도 선명한 이미지와 함께 있었기에, 어떤 상황전개도 눈에 보이는 것처럼 상상할 수 있었습니다. 

컴플리시테가 보여주는 세상은 이런 세상입니다. 그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몰입하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컴퓨터 그래픽도, 현실을 복사한 듯 정교하게 만들어진 무대 세트도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책을 읽을 때 혹은 어렸을 때 엄마나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 이야기를 들을 때 동원했던 약간의 상상력과 호기심만 준비하면 됩니다.

배우들은 성실하고 정교한 연기로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를 끌어올립니다. 무대연출은 소박하지만 안정돼 있습니다. 다만 소극장에 더 잘 어울리는 무대를 대극장(국립극장 해오름극증)에 무리해 올린 듯한 느낌이 아쉽습니다. 영국에서처럼 적당한 규모의 소극장에서 이뤄졌다면 관객의 몰입도를 더 끌어올릴 수 있었을 겁니다. 연극의 특성상 배우의 움직임에 집중하는 게 중요한데 자막을 읽어야 한다는 한계가 우리 관객들에게는 적지 않은 장애가 될 것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극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흥미롭게 한 번 볼 만한 극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할리우드에서 이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면 그 영화도 한 번쯤 보러 가고 싶네요. 거대자본을 동원한 환상적인 비주얼을 기대해 봐도 되겠죠. 그래도 이 단순한 무대 위에 제가 구현한 비주얼보다 반드시 더 멋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가끔 좋아하는 책이 영화화 된 걸 보고 실망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처럼 말이죠.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성실한 독자 혹은 관객일 뿐만 아니라 타고난 스토리텔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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