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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영란법, '위법'과 '적법'의 애매한 경계

사례로 본 김영란 법의 모호성

[취재파일] 김영란법, '위법'과 '적법'의 애매한 경계
대부분의 법은 '나쁜 사람'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합니다. 그렇다면, 김영란 법에서 말하는 '나쁜 사람'은 누굴 뜻하는 걸까요. '부패한 공직자'입니다. 부패한 공직자, 당연히 나쁩니다. 하지만, 쟁점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부패한 공직자를 어떻게 규정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김영란 법이 규정한 '부패한 공직자'는 제8조 나와 있습니다. 그대로 옮겨 쓰면,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 후원, 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 동일인으로부터 1회에 100만 원 또는 매 회계연도에 3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 등을 받거나 요구 또는 약속한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은 '직무 관련 여부 및 기부, 후원, 증여 등 그 명목에 관계없이'란 말입니다. 형법상 뇌물죄는 직무 관련성이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했지만, 이젠 직무 관련성이 있든 없든 받기만 해도 나쁜 공직자로 규정했습니다. 다만, 신고를 하고 받은 금품을 반환했다면 면책됩니다. (참고로 형법상 뇌물죄의 직무 관련성은 특정한 직무의 처리에 관련된 것, 즉 대가성까지를 포함한 개념입니다. 뇌물을 받고 특별히 그 직무 처리를 유리하게 봐주면 '수뢰후 부정처사'라는 더 무거운 죄를 구성하게 됩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사례를 통해 풀어보겠습니다.

학부모가 교장에게 150만 원짜리 시계를 선물했다면? 김영란 법 위반입니다. 교장은 공직자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100만 원이 넘으면 직무 관련성과 상관없이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물론 교장이 신고를 하고 반환한다면 면책이 됩니다.

이 시계를 교장이 아닌 교장 부인에게 선물했다면? 역시 김영란 법 위반입니다. 김영란 법은 가족의 범위를 '부부'로 한정하고 있습니다. 공직자에게 주나 공직자 부인에게 주나 마찬가집니다. 만일 교장의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줬다면 김영란 법 위반이 아닙니다. 다만, 교장 아들이나 며느리에게 아이를 입학시켜 달라는 목적이나 좋은 성적을 받게 해달라고 하는 취지로 건넨 거라면 김영란 법이 아니라도 뇌물죄가 성립하기 때문에 형법으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시계는 과한 것 같아 교장에게 7만 원짜리 식사대접을 했다면? 한 번에 100만 원 이하라면 직무 관련성이 있어도 형사 처벌은 되지 않습니다. 다만 과태료 대상인데, 얼마 이상 금품을 받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지는 대통령령으로 결정하게 돼 있습니다. 현재 국민권익위원회에서 공무원행동강령으로 3만 원 이상의 식사 대접은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선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14만 원에서 35만 원의 과태료를 물게 됩니다.

교장에게 자잘한 식사대접을 1년에 400만 원 했다면? 김영란 법 위반입니다. 직무 관련성이 없어도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아까 100만 원 이하면 직무 관련성이 있어도 과태료 대상이라고 설명 드렸는데, 한 해 모두 합해 300만 원이 넘으면 한 번에 100만 원 넘는 금품을 받는 것과 같은 것으로 봅니다. 쪼개서 받는 걸 방지하기 위한 조치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지만, 법은 항상 해석의 문제가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사례들도 김영란 법이 제시하는 예외에 해당된다면 처벌이나 과태료 대상은 아닙니다. 만일, 이 교장과 학부모가 어릴 적부터 매우 친한 사이였다면 어떨까요. 기분 좋아 술 한 잔 먹은 게 10만 원이 나왔다면요? 당연히 김영란 법에 의해 과태료 대상이지만, 해석에 따라 달라질 여지도 있습니다. 김영란 법 8조 3항은 예외 규정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상규에 따라 허용되는 금품'은 이에 해당합니다. '교장과 학부모'와 '절친한 친구' 가운데, 둘 사이에 어떤 정체성이 더 강할지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규명에 대한 판단은 사법 기관의 몫입니다.

김영란 법이 규정한 '나쁜 공직자'는 부정청탁을 받고 들어준 사람도 포함됩니다. 당연히 부정청탁의 기준이 문제겠죠. 김영란 법 5조는 부정청탁의 유형을 15가지로 설명해놓고 있습니다. 이 중에 한 가지만 소개하죠. 5조 1항 1호를 보면, "인가,허가, 면허, 특허, 승인, 검사, 검정, 시험, 인증, 확인 등 법령에서 일정한 요건을 정해 놓고 직무 관련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처리하는 직무에 대해 법령을 위반하여 처리하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마찬가지로 알아서 신고하면 면책입니다.
그래픽_김영란법

좀 어렵습니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뒷돈이 오가지 않으면 처벌할 근거가 없었는데, 김영란 법은 이러 저러한 경우를 들면서 처벌의지를 강하게 표명한 거라고 보면 됩니다. 사례를 통해 보죠.

구청 직원의 이웃이 건축허가 경과를 알아봐달라고 해당 직원에게 문의했다면? 김영란 법 위반이 아닙니다. 워낙 법이 강력하다는 인식 때문에 위반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김영란 법 5조 2항을 보면 '확인, 문의'는 예외로 둔다고 돼 있습니다.

만일 건축 허가를 빨리 내달라고 부탁했다면? 김영란 법 위반입니다. 단순한 문의는 예외로 두고 있지만, 김영란 법은 허가와 관련한 청탁은 부정 청탁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웃은 과태료를 물어야 하고, 구청 직원은 부정 청탁을 받았다고 신고해야 합니다. 신고하지 않으면 과태료를 물어야 합니다.

친구를 통해 구청 직원에게 허가를 빨리 내달라고 청탁했다면? 구청 직원 친구도 김영란 법 위반입니다. 김영란 법은 제3자를 통한 부정청탁도 금지하고 있습니다. 역시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

구청 직원이 이 부탁을 듣고 정말 허가를 내줬다면? 당연히 김영란 법 위반이고, 이런 경우는 형사 처벌 대상입니다. 김영란 법은 청탁을 수행할 경우 엄격하게 처벌합니다.

하지만, 아는 국회의원을 통해 같은 부탁을 했다면 어떨까요. 이건 김영란 법 위반이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습니다. 김영란 법에서는 선출직 공직자가 제3자의 고충민원을 전달하는 건 예외로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공익적인 목적'이란 단서가 붙습니다. 해당 지역에 요양 시설이 없는데, 대규모 요양 시설이 필요해 증축해야 한다는 공익적 목적을 들며 국회의원에게 청탁하면 어떨까요. 공익적인 것 같으면서도, 청탁자의 사익이 걸려 있으니 애매모호 합니다. 이건 법원의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금품 수수 부분의 '사회 상규'와 부정 청탁 부분의 '공익적 목적', 두 사례에서 알 수 있듯 김영란 법은 어쩔 땐 해당되고, 어쩔 땐 해당이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거죠. 하지만, 이런 모호성은 그냥 넘길 만한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명확한 법이라고 해도 법을 지킨 사람과 법을 위반한 사람 사이에 적용이 애매한 사람이 생깁니다. 나쁜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덜 나쁜 사람, 나쁘지 않은 사람까지 그 스펙트럼은 다양합니다. 이렇게 애매한 경우, 결과적으로 무죄가 나오더라도 혐의를 받은 사람의 내상은 엄청날 겁니다. 법의 심판대에 일단 올라가면, 그 때 부터는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지지부진한 소명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증거도 수집해야 하고, 심하면 변호사까지 선임해야 합니다. 그 시간과 비용,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데 법 자체가 애매합니다. 일각에서는 애초 '그럴 행동' 안하면 될 거 아니냐고 반박하지만, '그럴 행동'이 어떤 건지 법조계에서조차 해석이 분분합니다. 오만 가지 경우의 수를, 법을 잘 모르는 일반 사람이, 이 애매한 법률에 적용해 해석해 낸다는 게 과연 쉬울까요. 저만 해도 가장 친한 대학 친구가 언론 업무를 담당하는 홍보실 직원인데, 이제 녀석과 저의 관계를 규정하는 관계의 정체성이 어떤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직무 관련성'이 먼저일까요, 아니면 '대학 친구'가 먼저일까요. 대학 동창은 '사회 상규상' 친구 아닌가 싶은데, 김영란 법은 기자와 홍보실 직원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걸로 봅니다. 이 친구와 자주 만나 번갈아가며 술값을 계산하곤 했는데, 만일 '직무 관련성'이 먼저라면, 지금대로라면 그 녀석이 낸 술값의 2~5배의 과태료를 물어야 되겠죠.

처벌을 위한 법은 신중해야 합니다. '명확'의 '명확'을 거듭해도 항상 2% 부족한 게 처벌 관련법입니다. 법이 명확하지 않으면 선의의 피해자는 그만큼 많아집니다. 3년 간 계류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본회의에 통과됐다고는 하지만, 저같이 법조 출입 한 번 안 해본 아마추어가 보기에도 경우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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