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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김영란법은 외통수"…정치적 부담에 울며 겨자 먹기 처리

김영란법 처리에 숨은 여당의 속내

[취재파일] "김영란법은 외통수"…정치적 부담에 울며 겨자 먹기 처리
재석 247명, 찬성 228명, 반대 4명, 기권 15명.

부정청탁과 금품수수를 금지하는 '김영란법'이 지난 3일 압도적 표차로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통과 다음 날부터 여야 원내대표가 보완 방침을 밝히고, 대한변협이 헌법소원을 내는 등 후폭풍이 일고 있습니다. 압도적인 찬성으로 가결된 법안이지만, 표결 결과와 무관하게 때늦은 설왕설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법안 통과를 지휘한 여야 지도부와 법안 심사를 담당했던 국회 정무위 여야 간사는 공직사회 청렴도를 높이기 위해 다소의 논란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일부 의원들은 위헌 가능성이 제기될 뿐만 아니라 법이 우리 사회에 적지 않은 혼선과 부작용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간 분야에 대한 과도한 규제, 모호한 부정청탁의 기준, 부정청탁 판정 주체의 자의적 해석 우려, 검찰과 경찰 권한의 비대화 가능성 등 김영란법의 문제점은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국회 본회의 처리 전 열린 법사위 주최 공청회에서도 보완, 수정 필요성을 강조한 전문가의 의견(5명)이 원안의 신속한 처리를 주장한 전문가 의견(1명)보다 더 많았습니다. 심지어 법안 처리에 합의한 여야 원내지도부도 협상 과정에서 위헌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공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위헌 가능성을 알고도 어쩔 수 없이 처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겁니다.

입법 전문가들이 모여있는 국회가 위헌 논란이 다분한 법률을 통과시킨 데에는 저간의 사정 몇 가지를 짚어볼 수 있습니다. 우선 '여론'입니다. 선거에서 '표'로 치환될 수도 있는 '여론'은 진작부터 김영란법 도입을 강력히 요구해왔습니다. 본회의 처리 다음 날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할 결과 응답자의 64%가 법 통과를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세월호 참사가 터진 후 김영란법은 '관피아 방지법'의 대표 주자로 불리며 이 법만 통과하면 모든 부패와 비리가 일소될 것 같은 기대를 심어줬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란법에 반대하면 '악(惡)', 찬성하면 '선(善)'이라는 이분법 구도가 형성됐습니다. 의원들이 법의 맹점이나 빈틈을 지적하는 목소리라도 내려면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자칫 김영란법에 반대하거나, 신중한 검토를 요구할 경우 부패 척결 의지가 없는 자로 낙인찍힐 게 두려워 나서기를 꺼린 측면이 없지 않습니다. 한 새누리당 의원은 "새정치연합이 김영란법 통과를 당론으로 정한 뒤 새누리당은 외통수에 걸렸다"고 설명했습니다. "새정치연합은 당론으로 부패 척결 의지를 밝히는 데 자칫 머뭇거렸다가는 옛 차떼기 정당일이 다시 거론되는 등 악재가 될 수도 있어서 정치적 부담이 컸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완구 국무총리가 여당 원내대표이던 지난 1월12일 여야 원내지도부는 회동을 통해 김영란법을 2월 임시국회에서 우선 처리하기로 입장을 정했습니다. 의원별로 입장이 갈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여야 원내지도부는 결국 법 처리를 추진했습니다. 여기엔 새누리당 새 원내지도부의 의지가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한 여당 의원의 설명입니다.

"김영란법은 폭탄 돌리기의 연속이었다. 허점이 많은 법안이었지만 정부가 그걸 걸러내지 못하고 국회에 덜컥 내민 게 첫번째 폭탄이었다. 그 뒤 법안이 넘어온 뒤 여당의 지도부를 몇 차례 거치며 폭탄 돌리기는 계속됐다. 그걸 이번에 유승민 원내대표가 '내 선에서 처리하고 가자'며 폭탄을 처리한 것이다"

이어지는 설명. "유 원내대표는 김영란법을 처리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김영란법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로는 경제활성화 법안과 공무원 연금 개혁 같은 과제를 이행할 수 없다고 보고 법안 처리를 결심했을 것이다"

'만시지탄'이라는 우윤근 새정치연합 원내대표의 말대로, 법은 통과했고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1년 6개월 뒤 한국사회에 큰 변혁을 초래할 김영란법은 시행되고, 그 사이 여야와 국민권익위원회가 시행령을 통해, 혹은 법 개정을 통해 허점을 보완할 예정입니다.

"법률적으로 통과돼선 안될 법이 정치적으로 통과했다(강석훈 의원)"는 말처럼, 이번 김영란법 처리는 한국 입법사에 진기한 사례로 남게 됐습니다. 논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대한변협의 헌법소원, 법 시행령 제정 과정, 법의 또 다른 한 축인 이해충돌 방지 조항 제정 등 남은 숙제가 많습니다. 국회와 정부가 어떤 생산적인 논쟁을 거쳐 제도를 안착시킬 수 있을지 김영란법 시즌 2는 벌써 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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