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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살벌한' 부녀(父女) 혈투…日 고민에 빠뜨린 '경영권 갈등'

[월드리포트] '살벌한' 부녀(父女) 혈투…日 고민에 빠뜨린 '경영권 갈등'
요즘 일본 경제계가 한 대기업 총수 부녀(父女)의 경영권 혈투로 시끌시끌합니다. 일본 가구 대기업 '오오츠카(大塚)'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창업주인 카츠히사(勝久) 회장과 그의 장녀 쿠미코(久美子) 사장이 경영권을 놓고 정면충돌하고 있습니다. 살벌한 인신공격까지 난무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5일, 카츠히사 회장이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선공(先功)에 나섰습니다.

"사장 선임을 잘못했다"는 말로 포문을 열었는데, 이 정도는 점잖은 편이었습니다. "이대로 가면 유능한 직원들이 회사를 다 떠난다." 심지어는 "나쁜 애(惡い子供)를 키웠다"는 인신공격성 폭언(?)까지 이어졌습니다.  쿠미코 사장보다 한 살 어린 장남과 회사 간부들까지 대동한 자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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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26일) 쿠미코 사장은 곧바로 반박 기자회견을 엽니다.

전날 부친의 기자회견을 '연출'이라고 일축하면서, "아버지의 경영방식으로는 회사의 미래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여론을 의식해서 인지 '나쁜 애(惡い子供)'라는 부친의 비난에 대해서는 최대한 낮은 자세를 취했지만, "여러 차례 말씀을 나눴지만, 소통이 잘 되지 않았다"면서 물러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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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츠히사 부녀의 갈등은, 일본 재계의 고민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측면이 있습니다. '경영 방침'을 둘러싼 창업주 세대와 2~3세대의 갈등입니다. 전통의 경영방식을 고수하려는 창업주 카츠히사 회장과, 저가 대중화 전략 이른바 아메리칸 스타일로 변화를 꾀하려는 딸 쿠미코 사장의 갈등입니다.

일본 가구회사 '오오츠카'는 고급 가구의 대명사였습니다. 1969년 창업한 카츠히사 회장은 철저한 '회원제 운영'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매장에 들어서면, '회원 등록->직원 동행->일괄 구매 상담->평생 관리'로 이어지는 운영 방침을 신봉해 왔습니다.

그런데 2009년 취임한 장녀 쿠미코 사장은(물론 이때까지는 표면적인 갈등은 없었습니다) '전통의 회원제' '고가 가구 이미지'를 벗어던졌습니다. 이케아와 니토리(일본판 이케아인 가구회사) 같은, 가격 경쟁력을 갖춘 국내외 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저가 대중화 트랜드'로의 변화가 절실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캐주얼 매장'이라는 개념으로 도쿄 주요 상점가에 매장을 열고, '누구나 손쉽게 접근 가능한 새로운 오오츠카'를 모토로 내걸었습니다. 회원제나 직원 동행 안내같은 전통의 운영방식을 대폭 축소했고, '일괄 구매(혼수품, 이삿짐 등)'가 아닌 '단품 구매'라도 개의치 않고, 친근한 이미지로 많이 파는 것이 최선이라는 방침을 밀어붙였습니다. 이게 시장에서 어느정도 통했습니다. 쿠미코 사장 취임 이후, 연간 영업이익은 100억 원 안팎 수준으로 꾸준히 흑자를 기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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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런 새로운 경영방식은 회사 안팎에서 '불만'에 부딪혔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회원관리에) 숙련된 직원들'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카츠히사 회장이 기자회견에 말한, '회사를 떠날지도 모를 유능한 직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쿠미코 사장의 경영방식 대로라면, 매장 인테리어와 전체적인 마케팅이 더 중요하지 '대면 접촉'을 통한 전통의 회원관리는 아무래도 뒤로 밀릴 수밖에 없겠죠.

회사 밖에서는 고급화·회원제에 익숙한 일부 '기존 회원들'이 반발했습니다. 뭔가 대접이 소홀해졌다는 겁니다. 직원들의 반발이 먼저인지, 기존 회원들의 불만이 먼저인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런 가운데 쿠미코 사장이 공을 들인 '캐주얼 매장' 몇곳이 문을 닫는 일이 벌어졌는데, 카츠히사 회장은 기다렸다는 듯이 칼을 빼들었습니다. 지난해 7월 주주총회에서 긴급동의를 통해 쿠미코 사장을 해임하고, 일선에 복귀합니다. 카츠히사 회장 지분이 18.04%로, 절반 수준인 쿠미코 사장 지분 9.75% 를 압도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카츠히사 회장 취임 직후인 지난해 하반기 실적이 120억 원 적자로 돌아섰다는 겁니다. 올해 1월, 쿠미코 사장은 즉각 반격에 나섰습니다. 실적에 불만을 가진 다른 주주들을 묶어 세워서, 아버지 카츠히사 회장을 해임하고 사장으로 다시 복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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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는 앞서 말씀드린 난타전 기자회견입니다. 살벌한 부녀 대결은, 오는 27일 오오츠카 주주총회에서 '표대결'로 매듭이 지어질 예정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게, 카츠히사 부녀에 대한 업계의 평가입니다. 업계 사람들은, "父女의 성격이 똑같다", "아버지 카츠히사 회장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이 바로 장녀 쿠미코 사장이다"라고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경영 방침과 생각의 방향은 정반대지만, 자신의 뜻을 관철하는 '제왕적 일처리 방식'은 그야말로 '판박이'이라는 게 압도적인 평가입니다.

50~60년대 기업을 일으킨 일본 창업주 세대 경영방식은, 좋게 말하면 신뢰를 중시하는 '화(和)의 경영'입니다.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짬짜미'에 바탕을 둔 '담합 경영'일 때가 많습니다. 업종간 철저한 칸막이와 관행을 중시하는 경영이죠.

반면 2~3세대는 이른바 '미국식 합리성'을 받아들이려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이른바 아메리칸 스타일은 '숫자'에는 강할지 몰라도, '사람'을 껴안지 못하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경쟁력'이라는 이름으로, '고용'과 '사람'이 뒷전으로 밀리기 일쑵니다. 오오츠카의 카츠히사 부녀 갈등을 지켜보는 일본인들의 눈빛이 그래서 미묘한가 봅니다. 전통의 '화(和) 경영'이냐, 미국식 합리주의냐, 어느쪽 편을 들어야 할지 헷갈리는 겁니다.

우리 재계에도 가족간의 경영권 갈등이 꽤 있었죠. 부녀간 갈등보다는 주로 형제간 갈등이 많았습니다. 싸움의 전개과정은 훨씬 더 살벌한 경우도 많았고. 아쉬운 점은, 싸우는 이유가 '욕망'뿐인 듯 보일 때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기왕에 싸울거면 벌거벗은 욕망만 분출하는 싸움보다는 내용이 있는 갈등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재미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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