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역시 28억이란 높은 전세가에 주목해 입주 당일 8뉴스에서 보도했던 만큼 저 역시 호기심을 갖고 공관을 찾았습니다.
가회동 북촌에 위치한 공관은 지하 1층, 지상 2층의 단독주택으로 대지 660 ㎡에 연면적 405 ㎡ 규모입니다. 일반 가정집이라면 꽤 크다고 할 수 있지만 막상 도착해서 보니 시장 공관치곤 오히려 좀 아담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 주인이 시장 공관으로 임대하기 전 상당 기간 빈 집으로 뒀던 탓에 마당 잔디도 죽어 있는 등 관리 또한 썩 잘 돼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도서와 파일 정리는 누구에게 맡길 성질의 일이 아니라 집들이 당일 새벽까지 본인이 직접 하나하나 정리했다"는 게 시장의 말이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틈틈히 모아온 장서 6만권 가운데 5만권은 수원시에 기증하고 나머지 책과 자료들을 공관과 청사 집무실에 나눠 보관중이라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장서가들이 흔히 그렇듯 기자들에게 희귀한 서적과 기록들을 자랑(?)하느라 20~30분이 훌쩍 지나가자 시장 부인 강난희여사가 적시에 나타나 슬그머니 시장 소매를 끌며 식사자리로 유도해 시장한 기자들의 환호가 터졌습니다.
식사는 마당에 설치한 임시천막 안에서 진행됐는데 간이 히터의 온기에다 때마침 불어닥친 강풍은 천막이 어느 정도는 막아줘 나름 아늑한 느낌을 줬습니다. 유기농 식당에 의뢰한 소박한 한식 뷔페가 차려졌고 소주와 맥주, 막걸리가 준비됐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공관 호화 논란 때문에 상 차림마저 위축된 것 아니냐는 농이 오갔습니다.
인사말을 위해 마이크를 잡은 시장은 공관 집들이인만큼 공관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소회부터 밝혔습니다.
"이렇게 호화 공관으로 비난받을 줄 알았음 전에 살던 은평구 40평대 전세아파트에서 그대로 살 걸 괜히 이사왔다. 외빈들 맞이할 때 호텔을 사용하면 비용도 더 많이 들고 청사에서 너무 멀어 긴급상황 발생시 신속한 대처가 힘들어 비효율적인 것 같아 이사를 결심했고 그나마 비용 적게 들이기 위해 구매를 포기하고 전세를 택한 건데 뜻하지않게 호화 공관이란 비난 받게 돼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다." 라는 요지였습니다.
"호화 공관 논란 덕에 대선후보 지지율이 뚝 떨어져 시정에만 전념할 수 있게 돼 시장으로선 명당이다"라는 뼈있는 유머도 덧붙였습니다.
강여사도 이 부분에 대해 할 말이 많은듯 했으나 말을 아끼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아마도 지난 서울시장 선거기간중 상대 진영의 공격 소재가 된 경험을 통해 공직자의 아내는 '침묵이 금'이란 나름의 뼈아픈 교훈을 얻은 듯 합니다.
강여사는 다만 식사 말미 인사말에서 독감을 앓는 와중임에도 여유있고 재치있는 말솜씨로 분위기를 띄워 오랜 사회생활에서 쌓은 공력이 적지 않음을 내비쳤습니다. 바깥 일 하다 집에만 있기 불편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굳이 부인을 하지 않는 모습에서 남편의 공직 때문에 본인의 일을 포기한 데서 오는 아쉬움 또한 느껴졌습니다.
서울시장과 비슷한 무게를 지녔다고 볼 수 있는 국무총리나 국회의장, 외교부 장관, 또 일부 광역자치단체장 관사는 규모 면에서 서울시장 관사보다 몇배에서 수십배 큽니다. 따라서 단순 비교만 해봐도 유독 박시장의 공관을 '황제 관사' '호화 관사'로 비난하는 건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서민시장'을 자임해 당선된 만큼 은평구가 멀어 불편했다면 시청과 가까운 지역에 비슷한 수준의 아파트를 얻었더라면 불필요한 논란도 차단하고 모양새도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그럴듯한 공관에 초대해 외빈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시민운동가 출신 서울시장에겐 서울시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서민들과 정서적으로 유리되지 않고 비슷한 환경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란 인식을 주는 게 훨씬 더 값어치 있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위치의 다른 공직자들과 비교할 때 오히려 소박한 공관을, 그것도 예산 아끼려 전세로 얻고도 호화 공관 비난을 뒤집어 썼으니 이번 공관 파동은 시장의 표현대로 '장고 끝 악수'가 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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