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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정(政)피아' 감사님은 비리 깜깜이

"당(黨)에서 보냈습니다"- 박근혜 정부 2년 낙하산 318명 취재기

[취재파일] '정(政)피아' 감사님은 비리 깜깜이
● 지사장이 브로커 노릇…비리 만연한 농어촌공사

지난 11일 대전지검 홍성지청은 A4용지 12장 분량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최근 7개월 동안 한국농어촌공사와 납품업체 사이에 벌어진 45억 원대 부당거래였다. 충남 공주와 보령, 전북 군산, 경북 고성 등 전국 공사에서 지사장만 8명이 비리를 저질렀고, 과장급 이상 17명의 간부가 재판을 받고 있다.

비리 수법은 간단했다. 자기 지사에서 발주한 수리시설 개선 공사과정에 특정 펌프를 써주는 대가로 뒷돈을 챙기는 거였다. 1억 4천만 원을 챙겨 1심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은 지사장도 있다. 퇴직도 안 한 지사장이 납품업체 브로커로 취직해 공사 수주를 알선하는가 하면, 전직 지사장 중에선 펌프 업체 영업본부장 직함을 얻어 현직 공사 후배를 상대로 로비를 벌인 걸로 조사됐다.

모든 공사는 수의계약으로 발주됐는데, 공사 예정금액의 98% 이상 높은 금액이 업체로 흘러갔다. 검찰은 경쟁 입찰의 통상 발주가를 88%로 봤다. 10% 넘게 부풀려진 돈은 모두 농어촌공사 비리 간부 주머니로 들어갔다고 검찰은 밝혔다. 심지어 뒷돈을 받은 지사장 2명은 공사 허락을 받고 공로연수를 떠난 상태였다.

정부 사무를 대신하는 공기업 간부들의 행태라고 믿기 어려운 비리가 사방에 만연한 것이다. 기강 해이를 넘어 집단적 도덕적 해이 상황이다.
한국농어촌공사 낙하
취파

한국농어촌공사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이다. 농어촌 용수 공급 효율화, 수질오염 방지, 농지 담보 대출 등 농어민의 생산 활동과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을 주라고 만든 기관이다. 정부 부처보다 효율적으로 이런 일을 하라고 1970년 공사가 됐다.
 
정부 일을 대신 잘하라고 임명된 경영진은 과연 뭘 한 걸까. 농어촌공사는 박근혜 정부 출범 뒤 기관장과 감사, 대부분 이사 등 13명이 신규 임명되면서 경영진이 거의 전부 물갈이된 상태다. SBS 탐사보도팀은 이들의 이력을 분석했다. 경영진 가운데 4명이 새누리당 소속 이른바 '정(政)피아', 1명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농업인, 1명은 농림부 관료 출신의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 캠프 소속 이력이 있었다. 정치권 낙하산 인사가 임원의 46.1%인 공사 조직.

혹시 낙하산 인사의 폐해가 비리를 키우는 결과로 이어진 건 아닐까.

● 새누리당 당료 출신 감사는 '비리 깜깜이'

한국농어촌공사는 전남 나주 혁신도시로 이전한 상태다. 지난해 1월 업무를 시작한 공사 감사에게 비리 감시 상황을 묻기 위해 지난 6일 나주를 찾았다. 오전에 인터뷰를 요청하고, 오후가 되자 김종훈 감사에게 전화가 왔다. 사무실 번호였다. 그는 양해를 구한다며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사무실로 곧바로 찾아갔지만 그는 없었다. 업무 관련해 다른 부서에 갔다는 비서의 답변뿐이었다.
한국농어촌공사 낙하

김 감사는 한나라당 때부터 10년 가까이 정당인 생활을 해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과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다. 17대엔 부대변인과 조직특보, 전북도당 언론대책위원장을 지낸 뒤, 2008년 한나라당 공천을 받아 전북 고창ㆍ부안에서 18대 총선에 출마했다.

2012년 새누리당 이 지역 당원협의회 운영위원장을 지냈고, 18대 대선 중앙선거대책위원회에선 양대 조직인 조직총괄본부에 몸담았다. 그의 당시 직함은 호남권 조직전략위원장이다. 농업 분야 조직을 이끌거나 회계 감사 업무를 본 적이 없었다. 전형적인 지역 당료, '로컬 정피아'의 약력으로 내려온 낙하산 인사다.
한국농어촌공사 낙하

퇴근 시간이 지나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저녁 6시 반쯤 비서실로 전화가 한 통 왔다. 그는 자신은 퇴근했으니 모두 퇴근하라는 말을 전했다. 다음날 그를 찾아갔지만 1박 2일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간 상태였다. 검찰 수사결과를 보니, 그가 부임한 뒤에도 수의계약으로 공사비를 부풀리고 이걸 돌려받는 범죄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대부분 50대 후반, 퇴직을 코앞에 둔 공사 간부들은 감사와 감사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전화 인터뷰를 끝으로 정확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정치권에서 왔기 때문에 더 겸허한 자세로 좀 낮게 있어야 한다. 특히, 저는 실력이 많이 부족한 사람이다. 죄송하다."라는 입장만을 남겼다.

● 당료+캠프+지지선언 = 낙하산 황금비율?

한국농어촌공사 이사 연봉은 지난해 8,327만 원, 재작년엔 1억 3,514만 원(성과급 3,783만 원 포함)에 달했다. (공사 사장은 각각 1억 409만 원과 1억 4,051만 원이었다.) 이런 자리를 꿰찬 낙하산 인사 6명 가운데 2명은 새누리당 공천신청자였다. 지난해 12월 선임된 전평진 이사는 전직 국희의원 비서관이다.

한나라당 전남도당 부위원장을 거쳐, 2012년부터 새누리당 장흥·강진·영암당원협의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19대 총선에선 장흥·강진·영암 지역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가 가진 다른 이력은 한 건설사 이사뿐이다.

또 다른 비상임이사 이상곤 씨 역시 새누리당 부대변인 출신 '정피아'인사였다. 경북 포항 출신으로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실 행정관 경력이 있는 그는,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경북선거대책본부 언론특보를 지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선 경북포항 북구에 새누리당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다.
취파

이런 정당 소속 정피아 외에 대선 캠프 조직에 몸담은 인사도 2명 있다. 공사 이상무 사장은 박근혜 후보 농업 분야 대선공약을 주도한 인물이다. 농림부 시절부터 재직한 농업 분야 관료 출신으로 18대 대선 박근혜 후보 중앙선대위 행복한농어촌추진단장을 맡았다. 영남대 출신 대학교수인 이병기 이사 역시 선거조직 인맥이다. 그는 2012년 8월 박근혜 당시 후보가 새누리당 후보로 선정된 직후 조직된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행복한농어촌추진단 추진위원을 맡았다.

이 밖에도 공사엔 심지어 지역 농협 조합장 선거 비리로 실형을 살고 나온 인사도 이사에 임명돼 있었다. 다음 달 11일 전국 농협 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경찰청과 선관위까지 나서 고질적인 금품살포 범죄를 막겠다고 감시에 나선 상태다. 지금도 이런데, 10년쯤 전 조합장 자리를 둘러싼 부정은 훨씬 심각했다. 2004년 4월 한국농어민신문이 보도한 다음 기사를 보자.

금품 살포 등 선거법 위반 혐의로 법정에 선 지역농협 조합장이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대전지법강경지원은 지난 22일 선고공판을 열고 지난달 25일 열린 1심 심리에서 검찰로부터 '조합장 선거 당시 조합원에게 금품을 살포한 혐의'로 1년6월의 실형을 구형 받은 논산 연무농협 성효용 조합장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날 선고와 관련, 성 조합장이 이처럼 중벌을 선고받은 것은 피의자 성 조합장이 그동안 죄를 뉘우치지 않은 채 불법 선거 자체를 부인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재판부는 성 조합장의 금품 살포를 양심 고백한 이명구 조합원에게는 죄를 뉘우치고 반성하고 있는 점을 참작해 징역 2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에 따라 연무농협은 당분간 이사회에서 선임된 조합장 직무대행 체제로 경영된다. 조합장 재선거는 성 조합장이 상소할 경우 이에 따른 최종 유죄 확정판결이 나와야만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번 사건의 전말은 조합원 이명구 씨가 성 조합장으로부터 선거 당시 조합원 8명에게 1인당 15만 원씩 전해줄 것을 요청 받고 총 120만 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4월 26일)


충남지역 농협 조합장에 출마했다가 금품 살포 혐의로 성효용 조합장이 실형을 살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의 이름이 농어촌공사 임원 명단에서 발견됐다. 정부 공공기관 경영공시에 공개된 그의 이력은 연무농협 조합장, 전국 새농민회회장(13-14대)뿐. 확인 결과, 지난해 3월 공사 비상임이사에 임명된 그는 2012년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한 농축산업인 115인에 이름을 올린 이력을 갖고 있었다. 

한국농어촌공사 13명의 임원 인사 실태는 이번 정부 낙하산 인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다. SBS 탐사보도팀 분석 결과, 박근혜 정부 2년 정치권 등 낙하산은 318명이었다. 기관 한 곳당 평균 1.04명꼴. 공공기관 신규 임원의 17.1%가 낙하산 인사로 채워졌다.

● 박근혜 정부 공공기관 낙하산, 어떻게 조사했나
오디오 취재파일 박

이번 정부에서 공공기관 경영공시 사이트 '알리오(www.alio.go.kr)'에 공시된 적 있는 기관은 모두 303곳이다. 기관장과 감사, 이사 등 임원 자리는 모두 2,448개. 박근혜 정부 취임 이후 2년 동안 2,109명이 임명돼 임원의 86.1%가 물갈이된 상황이다. SBS 탐사보도팀은 지난 3개월 간 2,109명의 기관장과 감사, 이사들의 경력을 파악했다. 이 가운데 주무부처 차관 등 당연직 인사를 제외한 1,858명이 분석 대상이었다.

탐사보도팀은 이들의 경력 정보를 취합하고 확인한 뒤, 데이터 저널리즘에 입각해 정치권 출신 인사를 분류했다.  '대선'이나 '경선', '당협위원장' 등 정치권 경력에 관한 키워드를 엄선해 해당 임원들을 새누리당 관련 인사와 대선 캠프, 지지선언 전문가, 싱크탱크, 지지단체 등 10개 범주로 분류했다.

이 범주를 중복을 허용해 성향별로 분석했다. 낙하산 분류에서 대통령 자문회의에 소속된 교수나 관료 출신 청와대 파견 인사는 낙하산 인사에서 제외했다. 그 결과 절대 다수인 93%는 국회의원이나 그 보좌관 출신, 새누리당(또는 한나라당) 당협위원장 등 당료, 대통령직 인수위, 정권 청와대 근무 경력자 등 정치권 인맥이었다. 넓은 의미에서'정(政)피아'로 규정할 수 있는 그룹이다.

정치권과 인연 없이 대선 직전 지지를 선언한 전문가 그룹은 전체 낙하산 인사의 7%에 불과했다. 낙하산 인사 318명을 직위별로 보면, 기관장 77명, 감사 45명, 이사 225명이다. 기관장 임명과 동시에 다른 기관 이사가 겸직되는 인사가 포함됐기에, 중복을 허용한 수치다.

▶ [취재파일] "총재님이 많이 놀라셨잖아요!"
▶ [뉴스토리] 박근혜 정부 2년 공공기관 인사보고서 - "당(黨)에서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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