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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진짜 있었네!

[월드리포트]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진짜 있었네!
결혼 서약문에서 흔히 보는 구절이 있습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어떠한 경우라도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늙어서 추해지고, 병들어서 짐이 되더라도 끝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이를 글자 그대로 지키는 커플이 얼마나 될까요? 경제적 어려움, 질병, 성격 차이, 집안 갈등, 자녀 문제 등 부부 사이를 갈라놓는 요인은 1백8가지가 넘습니다. 특히 질병은 감내하기 참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긴 병에 효자나 열부 없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최근 두 커플이 중국 사회에 진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사랑이 갈수록 가벼워지는 세태를 거스르는 이들의 묵직한 사랑을 소개해보죠.

중국 남동부, 타이완을 마주하고 있는 푸젠성 취안저우시에서 40분쯤 배를 타고 나가면 다주이다오라는 조그만 섬이 나옵니다. 이 섬의 주민은 단 2명입니다. 60대의 차이잉창과 쉐민 부부입니다.

부부는 섬을 관리하며 삽니다. 가끔 섬 해변을 찾아 해수욕과 야외 바베큐를 즐기는 여행객을 상대로 소소한 장사를 하기도 합니다. 대부분은 해변과 공공 화장실을 청소하고 선착장을 손보며 소일합니다.

부부는 이 섬 출신이 아닙니다. 취안저우 시내에서 살았습니다. 38년 전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살던 이들에게 갑작스런 불행이 다가왔습니다. 아내 쉐민이 괴이한 신경병에 걸린 것입니다. 외출할 수도, 누구를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조금만 큰 소리가 들리면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집안에 갇힌 채 증상을 억제하기 위해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날이 다르게 초췌해지는 아내를 보며 차이 씨는 애가 달았습니다. 사방으로 의사를 구해 진찰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차도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상태가 갈수록 악화됐습니다. 이들 부부를 안타깝게 생각하던 이웃이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습니다. "차라리 아무도 없는 섬에 들어가 안정적이고 조용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병이 더 깊어지지는 않겠네."

지극한 사랑

어이없는 이야기였지만 차이씨 에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내를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 할 작정이었습니다. 당장 자신과 아내의 짐을 쌌습니다. 세 아이는 근처에 사는 부모 집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섬을 찾아 온 곳이 다주이다오 섬입니다.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때 상황은 열악했습니다. 오래 전에 버려진, 다 쓰러져가는 헛간 같은 건물만 한 채 있었습니다. 물도, 전기도 없었습니다. 이웃이라고는 섬 쥐와 이를 잡아먹는 뱀뿐이었습니다. 차이 씨는 우선 낡은 집을 대충 고쳐 보금자리로 개조했습니다. 물은 섬 한가운데서 솟아나는 샘물을 퍼다 썼습니다. 가져온 채소 종자를 심어 텃밭을 꾸미고 타고 온 배로 고기를 잡고 해산물을 채취했습니다.

병 든 아내를 간호하고, 먹을 것을 구하고, 가끔 뭍으로 나가 생활용품을 사오고. 그마저도 할 일이 없으면 해변에서 낮에는 일광욕, 밤에는 별구경을 하며 보냈습니다. '무위자연'의 생활이었습니다. 그렇게 십 수 년이 흐르면서 아내의 병은 차츰차츰 좋아지더니 기적적으로 다 나았습니다. 발병 원인을 알 수 없으니, 쾌유한 이유도 모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자연에 몸을 맡긴 한적한 삶이, 무엇보다 남편의 지극한 사랑이 약이 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입니다.

병이 나은 아내는 차이 씨에게 다시 뭍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무엇보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학업을 포기해야 했던 세 자녀에게 미안했습니다. 하지만 부부는 그대로 섬에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미 섬 생활에 푹 젖어 더 이상 뭍에서 살기 어려울 듯해서였습니다. 또 번잡한 도시 생활이 아내의 병을 재발시킬까봐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38년이 흘렀습니다. 아내의 병 때문에 차이 씨는 생각지도 않은 삶의 굴곡을 겪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아요. 서로만 쳐다보며 사는 삶도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전교에서 1, 2등을 놓치지 않는 손자가 올 6월 바라던 명문 대학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이들의 안위를 살피기 위해 오는 파출소 경관의 말입니다. "버려진 채 아무도 모르던 섬이 이제는 주변에 소문이 났어요. 지극한 사랑의 전설이 남게 됐다고요."
지극한 사랑
또 한 커플은 아직 젊습니다. 남자인 딩이저우 씨는 27살, 함께 사는 여성 라이민 씨는 28살입니다. 이들은 모두 광시성 류저우시에 살았습니다. 둘은 어렸을 때 초등학교 동창이자 한 반 짝꿍이었습니다. 졸업하고 진학한 학교가 달라지면서 연락이 끊어지다시피 했습니다. 다만 중국판 카카오톡인 QQ 아이디는 서로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2012년 딩 씨는 전문대학을 나와 시내 한 이발소에 취직했습니다. 우연히 라이 씨가 QQ에 올린 글을 보는 순간 눈에 꽂혔습니다. "나는 뒷일을 무서워하지 않아. 다만 내 친구들이 내가 죽은 뒤 어떻게 할 지 걱정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옛 친구에게 무슨 일이 생겼기에 이렇게 슬픈 글을 썼을까? 딩 씨는 댓글을 올렸습니다.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없을까?"

딩 씨는 동창들로부터 라이 씨가 속칭 '펭귄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사실을 들었습니다. 유전적인 결함으로 소뇌의 기능이 파괴되면서 몸의 균형 조절 능력을 잃게 되는 병입니다. 그래서 펭귄처럼 뒤뚱거리게 된다고 그런 이름으로 불립니다.

발병하면 걷거나 서 있을 때 주변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져 바로 서있기 힘들게 됩니다. 또 언어 능력이 저하되고, 심지어 음식을 삼키기도 힘들어집니다. 때문에 발병자는 빠른 속도로 생명력을 잃어가게 되는 난치병입니다. 라이 씨가 조금 운이 좋았던 것은 일반적으로 유년기에 발병하는 다른 사람과 달리 21세에 처음 증상이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그녀는 부모에게 병을 숨기고 난닝의 한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효과도 보지 못했습니다. 병든 몸으로도 6년 동안 투자금융 회사에서 투자 설계사로 일했습니다. 2009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숨지고 6일 뒤 역시 펭귄병 환자였던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렇게 어렵고 힘든 순간 7년 동안 사귀었던 남자 친구와도 이별해야 했습니다. 마치 파도처럼 밀려오는 불행에 라이 씨는 오히려 더 강하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내 발병 사실을 모르게 돼 오히려 다행이야.'

라이 씨는 류저우로 돌아와 한 사설 영어학원의 강사로 일하게 됐습니다. 딩 씨를 다시 만난 것이 이 무렵입니다. 하지만 반년도 못가 학원을 그만뒀습니다.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어 휠체어에 앉게 됐기 때문입니다. 점차 딩씨가 유일한 의지처가 됐습니다. 딩씨는 처음에는 라이 씨를 동정심에서 보게 됐습니다. 그렇게 큰 고난을 당하면서도 낙천적인 미소와 태도를 잃지 않는 라이 씨가 신기했습니다. 그러다 감정이 점점 애틋해졌습니다. 둘은 결국 함께 살게 됐습니다.

당 씨는 다니던 이발소도 그만 뒀습니다. 라이 씨를 더 잘 돌보기 위해서였습니다. 매달 180만 원이나 드는 라이 씨의 약값에 둘이 모아놓은 돈은 점차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두 사람이 여행을 나서게 것은 우연이었습니다. 길지 않을지 모르는 여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을 얘기한 끝에 나왔습니다. 라이 씨는 그저 즐거운 상상이나 해보자는 심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딩 씨에게는 진심이었습니다. 남은 돈 700위안, 약 12만 원으로 여행 준비를 했습니다. 라이 씨의 휠체어를 더 튼튼하게 개조하는데 대부분 쓰였습니다. 텐트는 친구가 사줬습니다.

지난달 3일 딩과 라이, 그리고 그들의 애견 아바오, 일행 셋은 드디어 길을 떠났습니다. 딩 씨가 끄는 자전거에 아바오가 오른 편에서 함께 달리고 라이 씨의 휠체어는 끈으로 연결돼 따라왔습니다. 급히 서두를 이유도, 어디를 꼭 가야 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주변 풍광을 보며 달리다 쉬고, 다시 달리며 하루 10km쯤 전진했습니다. 그리고 매일의 여정을 글로 써 친구들에게 SNS로 전했습니다. 이 글은 친구들 뿐 아니라 여기저기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독자가 늘었습니다.

딩과 라이 커플의 동창, 친구들은 이들의 여행을 위해 십시일반 돈을 모았습니다. 약 180만 원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지극한 사랑
차를 몰고 지나쳐가던 이들도 딩 씨 일행을 알아보게 됐습니다. 대부분 속도를 늦추고 격려의 말을 했습니다. 심지어 차를 세우고 이들에게 돈을 쥐어주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딩 씨는 이를 모두 거절했습니다. "동창과 친구들이 모아준 돈 만으로도 여행비는 충분합니다. 괜히 여러분께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요. 또 우리의 여행이 모금을 위한 쇼로 오해 받기도 싫고요."

다만 베이징의 한 전동차 사업주가 보내주겠다고 한 전동차는 기쁜 마음으로 받기로 했습니다. "전동차로 가면 라이가 좀 더 편안하게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희가 감사하다며 그 분께 전동차 광고를 해드리겠다고 하니 극구 사양하시네요. 그냥 순수하게 돕고 싶다면서요."

난닝시 주변을 지나갈 때는 이들의 사연을 들은 주민들이 밤마다 돌아가며 나왔습니다. 어두운 길에 혹 사고라도 당할까봐 이들의 뒤에서 헤드라이트를 켜고 앞을 비춰줬습니다. 따뜻한 국을 권하는 주민, 아바오의 사료를 전해주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불편한 몸에 여행이 고단하고 힘겹지만 라이 씨는 요즘이 태어나서 가장 행복하다 말합니다.

"휠체어에 앉아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사랑하는 남편의 등입니다. 내 휠체어를 끄느라 땀으로 흠뻑 젖은 등을 보면 감동이 몰려옵니다. 죽으면 아무 것도 가져갈 수 없잖아요, 기억 밖에는. 그런데 제 가슴을 가득 채운 기억은 남편의 사랑입니다."

"예전에 같은 병에 걸린 환우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친구는 '무기력하고 겁난다'고 하소연하면서 울더군요.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무서운 것은 죽음 자체가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의 불안과 슬픔이라고. 저는 그런 감정 대신 기쁨과 사랑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지극한 사랑
사람은 왜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요? 상대방의 재력, 교양, 인격, 용모, 인생관 등 수많은 요인이 있겠죠. 하지만 건강은 그 모든 것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앞서 열거한 모든 요소들이 뒤틀리고 심지어 사라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고 곁을 지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사랑이 유통기한 3년짜리 호르몬 분비로 인해 생기는 감정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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