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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위안부 피해자들은 왜 미국 역사학자들에게 편지를 썼나?

[취재파일] 위안부 피해자들은 왜 미국 역사학자들에게 편지를 썼나?
● 소녀들의 끔찍한 기억

“삿쿠(콘돔)는 우리에게 맡겼다. 그런데 삿쿠가 아주 귀했다. 그래서 한번 쓴 삿쿠를 병에 모아 두었다가 시간이 있을 때 냇가에 가서 빨았다. 비누로 씻어서 햇볕에 말린 다음 하얀 가루로 된 소독제를 뿌려 다시 사용했다. 이 일을 할 때가 제일 싫고 죽고 싶었다.”

 성노예로 일본군에 끌려갔던 김복선 할머니 증언의 일부입니다. 1930년대부터 일본은 위안부라는 명목으로 한국 소녀들을 전쟁의 한복판으로 끌고 갔습니다. 소녀들은 군인들이 옮긴 성병으로 고통스러워했고, 강제로 낙태 시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또 성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하면 그대로 맞아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런 끔찍한 기억들을 가진 수 십 만 명의 소녀들 중 238명만이 스스로 피해자임을 밝혔습니다. 어쩌면 그런 피해를 당했다는 사실 조차 그녀들은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그녀들이 이제 노환으로 하나 둘 세상을 떠나 단 53명만 남았습니다. 

● 끔찍한 기억 되새기기
[취재파일] 노유진
 지난 5일, 성노예로 끌려갔던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영어로 쓰인 편지에 지장을 찍었습니다. 미국 역사학자들에게 보내는 감사편지입니다. 편지에는 ‘일본 정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대응 해 준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써있습니다. 또 ‘정확한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데 있어서 우리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도 적혀있습니다.

 편지에서 말하는 일본 정부의 잘못된 행동은 무엇일까요?

바로 지난 해 말, 뉴욕 주재 일본 총영사가 미국 맥그로힐 출판사를 찾아가 위안부 관련 내용을 담고 있는 교과서를 수정해 달라고 요청한 것 입니다. 일본이 중대한 오류가 있다면서 수정을 요청한 책은 주로 미국 공립 고등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는 세계사 교과서입니다. 이 책에는 ‘일본군은 14~20살 사이의 약 20만 명의 여성을 위안소에서 일을 시키기 위해 강제적으로 모집·징용했다’고 적혀 있습니다.

 일본 아베 총리는 이런 내용이 미국 교과서에 담겨 있어 깜짝 놀랐다면서 정정해야 할 것을 바로 잡지 않아 이런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맥그로힐 출판사는 일본의 수정 요청을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또 교과서의 공동저자인 하와이대 허버트 지글러 교수는 어떤 정부도 역사를 검열할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미국 역사학자 19명은 ‘standing with historians of japan’(일본의 역사과들과 함께 서서)라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이 성명서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다른 나라의 역사교과서 기술을 억압하려고 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특히 아베 총리의 말을 언급하면서 어떤 정부도 역사를 검열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합니다.

●  기억을 공유하기
[슬라이드 포토]
 할머니들은 바로 이 성명서를 보고 감사의 편지를 보낸 겁니다. 이 편지를 대신 19명의 교수에게 보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지금쯤 편지가 교수들에게 전달됐을 거라면서, 답신이 오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할머니들은 그 편지에 정확한 사실이 세계에 알려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 모두가 같은 사실을 공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을 겁니다. 일본 정부는 전후 70년을 맞아 이번 여름에 담화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이 담화에서 기존 담화들과 마찬가지로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통렬히 반성하고 사과할지 우리는 지켜봐야만 합니다.

 “나는 꼭 여자로 다시 한번 태어나고 싶다. 요즘 같이 좋은 세상에 부모 밑에서 공부 많이 하고, 좋은 사람에게 시집가 자식 낳고 살고 싶다...밤에 자다가 깨면 ‘내가 왜 이렇게 독수공방을 하나? 내가 왜 이리 혼자 사나?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왜 우리가 나라를 빼앗겼었나?’하는 생각에 잠이 달아나 버린다...

 남의 일생을 이렇게 망쳐 놓고 일본은 이제 와서 발뺌을 하니 되는 소린가? 시집도 못 가게 남의 일생을 망쳐 놓고 입에 발린 사과나 한다니 말이나 되는가? 내가 눈 감고 죽기 전에는 내가 당한 일을 잊을 수 없다. 아니 죽어서도 못 잊을 것이다”


 그래야 이런 말을 남긴 윤두리 할머니 같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조금이나마 풀어드릴 수 있지 않을까요.

- '위안부'라는 용어는 일본군의 입장이 반영된 단어입니다. 이 글에서는 강제로 성폭행을 당했던 피해자들의 입장을 반영해 단어를 '성노예'로 쓰려 노력했지만 글의 흐름상 위안부라고 쓴 곳도 있습니다.

- 이 글에 쓰인 성노예 피해자들의 증언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서 발행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증언집에서 발췌했습니다. 


▶ [슬라이드 포토] 위안부 할머니, '日 역사왜곡 반대' 미국학자에 감사편지
▶ 위안부 할머니, '日 역사왜곡 반대' 미국학자에 감사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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