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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국체전에 발목 잡힌 박태환 최악의 위기

[취재파일] 전국체전에 발목 잡힌 박태환 최악의 위기
도핑 파문을 일으킨 수영스타 박태환이 최악의 위기에 몰리고 있습니다. 대한체육회와 한국도핑방지위원회 등 관련 기관을 상대로 취재한 결과 그의 징계 시점(始點)이 당초 알려진 2014년 9월 3일이 아니라 2014년 12월 8일이 될 가능성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국제수영연맹(FINA)이 징계 시점을 예상대로 12월 8일으로 결정한다면 박태환의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은 사실상 무산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지약물을 복용한 선수의 징계가 언제 시작되고 언제 끝나는지는 국제수영연맹 도핑 청문위원들이 청문회를 마친 뒤 모든 사항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결정합니다. 박태환의 경우 징계가 시작되는 시점은 2가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FINA로부터 박태환이 도핑 검사를 받은 2014년 9월 3일이거나 아니면 B샘플 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와 '임시 선수자격 정지'가 확정된 12월 8일입니다.

박태환이 A샘플 검사에서 테스토스테론 양성반응을 통보받은 것은 2014년 10월 30일입니다. 이때 박태환이 도핑 사실을 그대로 시인하고 B샘플 조사를 포기했더라면 징계 시점은 소변 샘플 채취일인 9월 3일로 소급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박태환은 이에 불복해 B샘플 검사를 요청했습니다. 관련 규정에 따르면 '금지약물 1호'로 불리는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한 선수는 A샘플 양성반응을 통보받는 순간부터 거의 예외 없이 '의무적 임시 선수자격 정지' (Mandatory provisional suspension) 상태에 놓입니다. 원칙적으로 어떠한 공식 대회에도 출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박태환 도핑 캡쳐_

그런데도 박태환은 양성반응을 통보받은 10월 30일 이후에도 제주도에서 열린 전국체전(10월28일-11월3일)에 출전했습니다. 10월31일 남자일반부 자유형 200m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11월 1일에는 계영 4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며 4관왕에 올랐습니다. 박태환처럼 금지약물 양성반응 판정을 통보받은 선수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대회에 계속 출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국제수영연맹 도핑 규제 규정(Doping control rules) 제10장 11조는 자격정지가 언제부터 시작되는지에 대한 원칙과 소급 적용 혜택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습니다.

* 제10장11조2항(DC 10.11.2 Timely Admission)

"선수 또는 다른 개인이 FINA나 각국 연맹으로부터 반도핑 규정 위반에 걸렸을 경우 즉시에 이를 인정하면 자격정지 시점이 샘플 채취일까지 앞당겨져질 수 있다. 여기서 언급된 '즉시'는 해당 선수가 다시 대회에 출전하기 이전까지를 의미한다. (Where the Athlete or other Person promptly (which, in all events, means for an Athlete before the Athlete competes again) admits the anti-doping rule violation after being confronted with the anti-doping rule violation by FINA or a Member Federation, the period of Ineligibility may start as early as the date of Sample collection)

* 제10장11조4항(DC 10.11.4)

"선수 또는 다른 개인이 FINA나 각국 연맹으로부터 공문으로 임시 선수자격 정지를 통보받은 뒤에 이를 자발적으로 수용하고 그 뒤에 대회 출전을 자제한다면 최종적으로 부과되는 징계 기간에 임시 선수자격 정지 기간이 포함될 수 있다."( If an Athlete or the other Person voluntarily accepts a Provisional Suspension in writing from FINA or a Member Federation and thereafter refrains from competing, the Athlete or the other Person shall receive a credit for such period of voluntary Provisional Suspension against any period of Ineligibility which may ultimately be imposed.)


결론적으로 말하면 박태환은 도핑 사실을 즉시에 시인하지 않았고 양성반응 통보를 받고도 대회 출전을 강행했습니다. 이에 따라 징계 시점을 샘플 채취일로 앞당기는 '소급 적용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대한체육회의 고위 관계자는 "박태환의 경우 도핑 사실을 시인한 게 아니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기 때문에 징계 시점이 9월3일이 되기는 어렵다. 체육회는 12월 8일부터 징계가 시작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박태환이 양성반응을 통보받은 뒤에도 왜 전국체전 경기에 나왔는지는 정말 의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의 한 간부도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상으로 도핑 관련 교육을 할 때 양성반응을 통보받으면 대회에 절대 출전하지 말라고 수없이 강조했다"고 밝혔습니다. 이 관계자는 또 "샘플 채취일까지 소급 적용 혜택을 받으려면 도핑 사실을 즉시 시인 해야 하는데 박태환은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징계 시점이 9월3일이 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징계가 시작되는 날이 9월 3일이냐 아니면 12월 8일이냐에 따라 하늘과 땅의 차이가 납니다. 역대 도핑 관련 징계 사례와 판례를 보면 박태환의 경우 청문회에서 아무리 소명을 잘 한다고 해도 최소 18개월 이상의 자격정지 징계가 불가피해 보입니다. 2014년 12월 8일을 시점으로 18개월 징계를 받는다고 가정하면 2016년 6월 7일에 징계가 끝납니다. 리우 올림픽은 내년 8월 5일에 개막합니다. 통상 올림픽 개막 석 달 전에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릅니다. 내년 4월 말 또는 5월 초라는 얘기입니다.

박태환 1명의 올림픽 출전을 위해 대표 선발전을 6월 중순 이후에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또 '자격정지 종료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현 대한체육회 규정을 오로지 박태환 1명을 위해 징계가 풀리는 시점을 기다렸다는 듯이 전격적으로 변경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이런 엄청난 무리수를 두지 않으려면 박태환의 징계가 일단 16개월 미만으로 낮아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징계를 받은 역대 다른 외국 선수들과의 형평을 감안하면 이는 FINA 도핑 청문위원들이 해줄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결국 활로는 딱 한가지 밖에 없어 보입니다. '친한파'로 알려진 훌리오 마글리오네 현 국제수영연맹 회장이 온갖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눈 딱 감고 '특단의 선처'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의 스포츠 외교력이 총동원돼야 하고 2019년 광주 세계수영선수권 개최국이란 점을 내세워 '읍소 작전'도 펼쳐야 합니다.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막후에서 사생결단식의 로비라도 해야 박태환을 구제할 길이 열립니다.

박태환 측은 소명 자료 부족을 이유로 오는 27일로 예정됐던 청문회 연기를 요청했고 FINA는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고의성 여부를 떠나 박태환의 도핑 파문은 자신은 물론 한국 스포츠의 명예를 심각하게 떨어뜨렸습니다. 앞으로 넘어야 할 험한 산이 너무나 많고 짊어져야 할 짐도 무겁기만 합니다. 시간이 간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든 상황을 종합해보면 박태환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청문회 연기가 아니라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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