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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합의' 따로 '해석' 따로…기자들도 못 믿는 정치인의 말

[취재파일] '합의' 따로 '해석' 따로…기자들도 못 믿는 정치인의 말
정치란 사람들을 설득해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쉽게 얘기하면 마음을 얻는 겁니다. 마음을 얻어 내 편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다소 반대가 있는 정책이라도 뚝심 있게 밀고 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예는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정치인들이 무엇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까요? 말과 행동입니다. 그러기에 정치인의 말과 행동은 일관되고 명확해야 하며 또 신중해야만 합니다.
 
지난 12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의 임명 동의안 처리를 놓고 여야는 격하게 대립했습니다. 새누리당은 의사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차 터키에 가 있는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모든 의원들에게 오전부터 총동원령을 내렸습니다. 오후 들어 새누리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청문경과보고서를 단독으로 채택하자 새정치민주연합은 규탄성명을 발표하는 위기 상황까지 치달았지만 결국은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합의의 원동력이 대화와 타협의 정신이었는지, 여야의 합의 없이는 사회를 볼 수 없다고 버틴 정의화 국회의장의 뚝심과 그의 적절한 중재였는지, 아니면 설 연휴 이전에 어떻게든 총리를 임명하고 청와대 및 내각 개편을 단행해 자유낙하하고 있는 지지율을 붙잡아야 하는 새누리당의 절박함과 연거푸 세 번이나 총리 후보를 낙마시키는 부담 대신 부정적인 여론에 못 이겨 이완구 후보자 스스로 물러나주기를 바라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속내가 맞아 떨어진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여야는 합의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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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문은 달랑 한 줄입니다.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12일 본회의 의사일정을 16일 오후 2시로 연기하는 데 합의한다”입니다. 그런데 이 합의문에 대한 여야의 해석은 달랐습니다. 합의문에 직접 서명까지 한 새누리당 조해진 원내수석과 새정치민주연합 안규백 원내수석은 기자들 앞에서, 그것도 서로를 옆에 두고 정반대의 해석을 내놨습니다. 새누리당 조 수석은 “합의의 핵심은 당초 오늘 본회의에 안건으로 잡혔던 국무총리 임명동의안 등을 16일 본회의에 다시 그대로 올리는 것이다”라고 말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안 수석은 “본회의 일정만 연기했을 뿐 안건에 대해서는 추후에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안 수석은 안건과 관련한 조 수석의 설명에 왜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있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그랬다”고 답했습니다.
 
사달은 여기서 그친 게 아닙니다. 이튿날 야당 대표와 여당 원내대표는 합의에 대한 각자의 해석을 바탕으로 가시 돋친 감정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전날 합의에 대한 새정치연합식 해석대로 본회의 일정만 16일로 연기됐으니 이완구 총리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여부를 여론조사로 정하고 그 결과에 승복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새누리당 해석대로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이 안건으로 본회의에 올라가 있는데도 야당 대표가 하룻만에 말을 바꿨다며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여기에 문 대표는 다시 여당이 합의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고 맞받았습니다. 정치인들의 합의와 해석은 왜 다를까요?
 
 
선출된 권력인 국회의원의 경우 지지층으로부터의 동의는 필수적입니다. 현대 정당정치가 지배와 복종이 아닌 설득과 동의를 전제로 한다면 정치인들의 일관되고 신중하며 명확한 말과 행동 외에 다른 수단은 없어 보입니다. 보는 앞에서 서명한 합의의 내용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발표하는 것도 모자라 정정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건 자신의 지지층만 쳐다보며 하고 싶은 말만 하겠다는 심사 같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 전통적 지지층도 예전처럼 그리 호락호락하게 마음을 내줄 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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