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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②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②
▶[취재파일] 불행, 행운, 다시 불행…희한한 보이스피싱 ①

나는 기자다. 족발집 주인을 만나러 장안동에 갔다. 테이블 4~5개. 주택가 뒷골목의 전형적인 동네 식당이다. 주인이 들려준 사연은 딱했다. 이건 전형적인 보이스피싱이다. 그러면서도 다소 특수한 보이스피싱이다.

우선 사기범들은 족발집 주인 컴퓨터에 바이러스를 심어 놨을 것이다. 주인이 인터넷뱅킹 접속을 시도하자 개인정보가 떴을 것이다. 전화를 걸어 주인을 겁박한 뒤에 비밀번호 등 계좌이체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냈을 것이다. 그리고 돈을 빼낼 동안 신고하지 못 하도록 10분 동안 전화기를 꺼두라고 했을 것이다.

보통의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은 사기에 이용할 계좌의 이상 여부를 우선 확인한다. 100원씩 입금했다 인출해 보는 방법 등으로. 입금과 인출에 이상이 없을 때 그 계좌를 보이스피싱에 활용하는 것이다. 물론 사기범들이 통장을 확보한 이후에 압류가 걸렸을 수도 있다. 아니라면 범행의 기본적인 준비도 제대로 하지 않은 어설픈 사기범일 테다.

주인이 들려준 전화 녹취는 안쓰러웠다. 주인은 절박했다. 하지만 상대방(서울보증보험 압류 담당자)은 사무적이었다. 그런 태도가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채권 확보를 위해 취한 압류 조치를 단지 사정이 딱하다고 풀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나름의 규정이 있을테지. 주인의 요구대로 압류를 풀어줬는데 정** 씨가 바로 돈을 인출해 잠적이라도 한다면? 

서울보증보험에 먼저 취재를 했다. 자신들이 압류한 계좌이고, 보이스피싱으로 신고돼 지금 지급정지가 돼 있는 게 맞단다. 어느 누구도 돈을 빼 내갈 수 없는 상황이란다. 보이스피싱으로 인한 피해금이라는 게 확인된다면 돌려주는 방법을 검토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에서 받은 ‘사건사고 사실 확인원’만으로는 부족하단다. 보이스피싱이라는 확정된 결정이 나와야 한단다.
통장 캡쳐_500
확정된 결정이란? 지금 상황에서는 민사소송을 해야 한단다. 족발집 주인이 통장 명의인인 정** 씨에 대해서.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을 내고 확정 판결을 받아야 한단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압류를 풀어 돈을 족발집 주인에게 돌려주면 담당자가 업무를 해태한 것이란다. 압류를 풀어줘 족발집 주인이 돈을 찾아갔고, 다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민원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처한 것이라고 칭찬받을 일이란다. 하지만 만일 정** 씨가 돈을 인출해서 잠적한다면? 정** 씨가 왜 자신의 돈을 족발집 주인에게 줬냐고 따지고 나온다면? 회사의 업무를 취급하는 담당자 입장에서는 그런 리스크를 지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다음으로 금융감독원에 취재를 했다. 취재의 결과는 이렇다. 보이스피싱이나 대출사기 피해인 경우, 예전에는 ‘부당이득 반환청구 소송’같은 민사사송을 통해 피해금 잔액에 대해 돌려받을 수 있었다. 물론 사기범들이 돈을 모두 빼내가지 않아서 일부라도 남아 있을 때만. 하지만 최소 6개월에서 3년이라는 오랜 민사소송 과정을 거쳐야 했다. 당장 쓸 돈이 급한 서민들로서는 너무 긴 시간이고, 너무 힘들고 비싼 재판이다.

그래서‘전기통신 금융사기 피해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이라는 게 생겼다. 사기 피해자들이 지급 정지된 피해금을 별도의 소송 절차 없이 돌려받을 수 있게 한 법이다. 특별법의 환급 절차는 이렇다.

사기 피해자가 자신의 돈이 이체된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를 신청한다. 지급정지된 계좌에 대해 ‘피해구제 신청서’를 제출한다. 신청서를 받은 금융회사는 금융감독원에 예금채권에 대한 소멸 공고를 요청한다. 금감원은 2개월 동안 채권소멸 공고를 내고, 사기에 이용된 계좌 명의인(예금주)에게 소멸공고에 대해 안내한다. 채권소멸 공고 기한 내에 예금주로부터 이의제기가 없으면 채권이 소멸한다. 피해자들은 이로부터 14일 이내에 피해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 2~3개월 내에 피해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족발집 주인은 그런데 이 특별법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 특별법 5조 1항. ‘압류, 가압류 또는 가처분의 명령이 집행된 경우’ 예금채권의 소멸공고를 요청할 수 없게 돼 있다. 족발집 주인의 돈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계좌도 압류된 계좌다. 특별법의 예외에 해당된다. 족발집 주인은 너무 긴, 너무 힘들고 비싼 재판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별법은 생겼지만 여전히 법으로 보호할 수 없는 사각지대는 남아 있다.

지난 2012년 금융감독원은 대대적인 선전을 했다. 보이스피싱이나 대출사기 등 서민을 상대로 한 불법사금융에 대해 원스톱으로, 또 1대1로 상담해 주겠다고. 서울보증보험과 금융감독원과 우체국이 머리를 맞대면 족발집 주인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족발집 주인에게 원스톱, 1대1 상담이라는 선전은 벌써 남의 나라 얘기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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