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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쉬쉬'하고 덮기에만 급급했던 경찰병원 성추행 사건

[취재파일] '쉬쉬'하고 덮기에만 급급했던 경찰병원 성추행 사건
경찰병원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지난 달 15일 이 병원 치과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회식 자리를 가졌습니다. 과장 이하 전문의, 수련의, 간호사까지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이 자리에는 고위직 간부도 함께 있었습니다. 실제 진료에는 참여하지 않지만, 병원 진료 전반을 아우르는 역할을 해오고 있는 사람입니다.

1차 식사 자리에서 술을 마신 이들은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 간부가 갑자기 여성 직원을 옆자리로 불러 볼에 뽀뽀를 하는 등 성추행을 했다고 합니다. 놀란 이 직원은 그 자리에서 나와 병원으로 돌아가 당직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지난 달 26일 병원 내 청문감사반에 해당 간부에 대해 징계를 청구했습니다. 이 사건은 경찰청으로 넘어갔고, 지난 2일 경찰청 인권센터에서 피해 사실에 대한 1차 조사를 받았습니다.

이 사건은, 최근 여러차례 보도된 다른 성범죄 사건과 많은 면에서 유사합니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직장 내 상하 관계,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무조건 혐의를 부인하고 보는 가해자의 대응, 그리고 피해자는 직장에 나올 수 없지만 정작 가해자는 당당하게 출근을 하고 있는 이 상황까지도 말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지금껏 뭘 하고 있었던 건지, 이 병원은 사건에 어떻게 대응해 온 건지... 피해자가 가해자를 신고하기까지 10일 넘게 걸렸습니다. 그 시간을 되짚어봤습니다.

피해 직원은 사건 당일 자리에서 나와 병원 당직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귀가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회식을 이어갔고요. 다음 날 직속 상사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얘기해 보려고 했는데, 마침 그 상사가 이 직원을 방으로 불렀습니다. 그 방에는 가해자인 간부가 있었습니다.

전날 밤 불미스런 사건이 있었다는 걸 스스로도 이미 알고 불렀던 겁니다. 그 자리에서 간부는 ‘술에 취해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사과는 커녕 뻔한 변명만 돌아오자, 이 직원은 더 이상 출근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상사에게 병가를 내겠다고 요청했습니다. ‘병가까지 내야겠느냐’는 퉁명스런 대꾸에도, 휴가는 쓸 수 있게 됐습니다.
성폭행 캡쳐_500
그런데 이상한 얘기가 들려왔습니다. 사건 직후 직속 상사가 의사 몇 명을 불러 ‘그 직원이 일을 크게 만든다’는 식으로 얘기했다는 겁니다. ‘추행’이 아니라 ‘술주정’ 쯤으로 여기면 되는데, 문제제기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식이었습니다. 당사자는 혐의를 부인했고, 직속 상사는 피해 직원을 ‘이상한 사람’으로 매도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미 병가를 낸 이 직원은 자신의 성적 수치심은 물론 직장 내에서 명예를 회복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근거없는 소문만 일파만파 퍼져 버렸습니다.

사건이 일어난 지 3일이 지난 18일, 간부가 피해 직원의 집을 찾아왔습니다.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에 사과하고 싶다’며 앞서 여러 차례 찾아왔었다고 했습니다. 이 애매모호한 표현이 뭘 의미하는 걸까요. 이 자리에서 피해 직원과 그 남편은 구체적으로 ‘성추행 한 사실을 인정하느냐’고 물었고, 간부는 ‘인정한다’, ‘미안하다’고 수차례 답했습니다. 대화 끝에 이 직원은 직장에 복귀할 수 있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잘잘못을 가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피해자인 이 직원이 가해자처럼 알려져 있는 걸 바로 잡아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날 대화는 잘 진행되는 듯 했습니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되어도 달라진 건 없었습니다. 자신의 집까지 찾아와 사과했던 간부는 병원에선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상사 역시 이 직원의 얘기에 귀 기울이기지 않았고, 악성 루머만 더 퍼졌다고 합니다. 이 직원은 26일에야 청문감사반에 찾아가 이 사건을 신고했습니다. 가해자인 간부와 직속 상사까지, 두 명에 대해 징계를 청구했습니다. 경찰 공무원 신분인 이들의 사건은 경찰청으로 넘어갔고, 피해 직원은 인권센터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피해자는 이 병원에서 10년 넘게 일해 왔습니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처럼 병원을 계속 다니길 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장 상사들이 이런 식이라면, 직원은 맘편히 직장에 복귀할 수 있을까요. 병원장은 이런 문제가 발생했는데도 진상조사 조차 하지 않았고 사건을 곧바로 경찰청에 넘겼습니다.

지난 주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당사자는 모두 병원에 없었고 통화도 쉽지 않았습니다. 간부에게 공식적인 해명을 요구하자, 역시 ‘그런 일(성추행 한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혐의가 없다는 분이 사건 발생 초기에 왜 피해 직원의 집까지 찾아가 연신 사과를 했을까요. 상사에게도 전화를 걸었지만, 곧바로 끊더군요. 사건을 쉬쉬하고 덮기에만 급급한 직장 문화가 피해자에게 또 한 번 상처를 준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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