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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다시 보는 2·17 합의…깨진 원칙에 잉태된 혼란

[취재파일] 다시 보는 2·17 합의…깨진 원칙에 잉태된 혼란
2년 전 2월 17일.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하나금융과 외환은행 노조는 협상 타결을 선언했다. 금융위원회가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하자 외환은행 노조가 총파업을 선언하고 협상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이 날이 쟁의 조정기간 마감일이었다. 협상 타결을 선언하는 기자회견장에 금융위원장과 부위원장이 모습을 나타냈다. 이들은 김승유 당시 하나금융 회장과 김기철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의 손을 맞잡고 기념 사진을 찍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은 협상 타결에 금융당국의 주문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시사했다.

당시 합의문의 주요 대목을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1조 1항. “외환은행이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된 이후에도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존속하기로 하며, 외환은행의 법인 명칭을 유지 및 사용하기로 한다”

1조 2항. “1항에도 불구하고, 5년 경과 후 상호 합의를 통하여 하나은행과의 합병 등을 협의할 수 있으며, 합병은 대등 합병으로 하고 양사 중 경쟁력 있는 조직체계를 도입하기로 한다”

2조 1항. “독립법인으로 존속하는 동안 노사관계, 인사, 재무, 조직 등 경영활동 전반에 대하여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하기로 한다”

3조 1항. “인위적인 인원감축을 하지 않기로 하며, 현재 영업점 점포 수 이상의 점포망을 운영키로 한다”

3조 2항. “IT, 신용카드의 경우에는 금융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실행할 수 있다”


합의문은 모호했고, 논란을 잉태하고 있었다. 특히 5년 동안 독립법인으로 존속시킨다는 점, 그리고 그 이후에도 합병을 ‘협의할 수 있다’고 한 점이 대표적이었다. 5년이라는 시간은 금융시장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모를, 매우 긴 시간이었다. ‘협의할 수 있다’는 문구는 거꾸로 “합병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뜻이냐는 궁금증을 낳았다. 노사 양측은 자세한 말을 아꼈다. 각자 유리한 대로 해석하면 된다는 태도였다. 노조에서는 ‘5년’과 ‘합병 협의’를 협상의 대표적인 성과로 내세웠다.

협상이라는 게 기본적으로 양측이 한 발씩 양보해 성립하는 것이지만 당시 합의 문구는 하나금융이 더 많이 양보한 것처럼 비춰졌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때부터 특혜 시비에 휘말려온 금융당국이 모종의 압력을 가했다는 說이 파다했다.

잉태된 논란은 여지없이 표출됐다. 하나금융이 IT와 신용카드 통합에 나서자, 노조는 3조 2항의 “개선방안을 마련하여 실행할 수 있다”가 합의 문구라며 저항했다. ‘통합’에 합의해 준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카드 부문은 우선적으로 통합됐다. 지난해 하나금융지주가 조기 통합을 선언하자 또 시끄러워졌다. ‘5년 독립경영’ 약속을 지키라는 게 노조의 논리였다. 그럼에도 협상에는 응하겠다고 나왔고, 타협의 여지는 있어 보였다.

그러나 협상의 진도는 더뎠다. 노사 양측은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가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던 중 하나금융은 지난달 불쑥 금융위원회에 합병 예비인가를 신청했다. 노조는 뒤통수를 맞았다며 “더 이상의 대화는 없다”고 맞섰고, 곧바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법원 캡쳐_640
2월 4일 법원은 외환은행 노조가 “일방적인 통합 절차를 중지해 달라”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였다. 6월3 0일까지 합병 본인가 신청을 하지 말고, 합병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를 열지 말라고 명령했다. 법원은 2.17 합의서의 구속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지금 당장 합병하지 않으면 외환은행의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이 초래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합의서의 구속력을 부인할 정도로 ‘현저한 사정 변경’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나금융지주는 어쩔 수 없이 금융위원회에 제출한 합병 예비인가 승인 신청을 철회하기로 했다. 지난해 7월부터 추진해 온 조기 합병은 노사 간 극적인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 한 최소 5개월은 더 미뤄지게 됐다. 6월 말 이후에도 ‘현저한 사정변경’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하나금융지주로서는 고민일 터다.

이해당사자는 물론 주변에서도 찬반은 부딪히고 있다. ‘노사합의는 어떤 경우에도 지켜져야 한다’와 ‘경영상의 자율적인 판단을 제약한다’는 논리가 충돌한다. 우선 조기 통합 논의의 場에 나온 노조조차 설득하지 못한 하나금융지주 경영진의 협상력, 또는 리더십 부재를 탓할 수 있겠다. 반대로 무리한 요구를 관철시키려는 노조의 이기주의를 비판하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무엇보다 정부가 무리하게 어정쩡한 합의문에 타결을 종용한 것이 2년 넘게 이어지는 시비와 지금의 혼란을 초래한 것만은 분명하다. 원칙을 깨면 언제나 뒷감당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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