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내가 낸 세금은 어디 쓰고 복지 위해 증세?"

[취재파일] "내가 낸 세금은 어디 쓰고 복지 위해 증세?"
"아니 다달이 꼬박꼬박 받아간 세금은 어디다 쓰고 복지 때문에 돈이 없다는 거야?  해 준 것도 별로 없으면서 말이야."

"복지 제대로 하겠다면 세금 더 낼 수도 있겠는데, 그렇게 내는 세금 진짜 복지 위해서 쓰는 거 맞아? 지금도 다른데 돈 쓰면서 복지 때문에 돈 없다는 거 아냐? 진짜 복지 때문에 돈 필요하다면 우선 다른데 들어갈 것 줄여서 복지에 쓰고, 그 다음에 세금 더 걷겠다고 해야 하는 것 아냐?“

"아니 이제 걸핏하면 복지 때문이래. 어린이집 폭행 사건 터지니까, 갑자기 무상보육 때문이라며 복지 축소해야한다는 사람들도 있잖아. 복지 위해서 증세하자, 증세하지 말고 복지 축소하자는 것도 다 정치적 의도가 있어서 그런 것 아냐?"


최근 출근길 버스 안에서 옆 자리에 있던 승객들이 나눈 대화의 한 토막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니 '증세를 통한 복지'를 하자, 아니다 무상복지를 선별적 복지로 바꿔서 '증세 없는 복지축소'로 가자. 증세를 할 거면 법인세를 올리자, 아니다 그러면 경제가 어려워지니 부가세나 주민세, 소득세를 올리자. 복지와 증세를 높고 정부와 정치권의 논쟁이 뜨겁습니다.

너무 당연해서 일까요? 정치권은 우리 복지 지출 현실에 대한 진단은 건너뛴 채 논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앞서 소개한 버스 승객의 대화에서처럼 일반 국민들은 대체 복지에 얼마나 돈을 쓰길래 복지 때문에 돈이 없다고 하는지를 궁금해 하고 있는 건 아닐까요?

● 사회복지지출, OECD 국가 중 뒤에서 2등

정치권이 건너 뛴 이 대목에 대한 답을 지난 해 12월 국회예산정책처가 펴낸 '우리나라 사회복지지출 수준의 국제비교 평가'라는 보고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2011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 비율은 9.1%.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입니다. OECD 평균인 21.7%의 절반도 안 됩니다. 1위인 프랑스는 32%, 2위 덴마크는 30.6%, 3위 벨기에는 29.7%로 우리의 3배 수준이고, 일본과 미국도 각각 22.4%(2010년 기준), 19.6%를 기록해 우리와는 큰 격차를 보였습니다.

해당 수치는 민간 부분을 제외한 정부 지출만을 계산한 것입니다. 일부에서 복지가 나라를 망친다거나, 무상 복지 때문에 어린이집 교사 폭행 사건도 발생했다고 하는 걸 들으면 우리 정부가 복지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 같지만, 현실은 OECD 평균의 절반도 안 되는 9.1%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다면 OECD 국가 대부분은 복지 때문에 파산됐거나, 어린이집 폭행 사건보다 더 엽기적인 사회문제들이 발생했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죠. 결국, ‘복지 디폴트’란 말은 우리 현실을 오도하고 있고, ‘증세 없는 복지축소’는 가뜩이나 OECD 국가 중 꼴등 수준인 우리 사회복지지출 비율을 더 후퇴키겠다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 국민부담률, OECD 국가 중 뒤에서 4등

이런 현실 때문일까요?  ‘증세를 통한 복지 확대’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큰 근거는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 더 나아가 세금에 연금 등을 더한 국민부담률이 다른 나라보다 낮다는 겁니다. 국민부담률이 낮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국회예산처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은 25.9%. 19.7%인 멕시코, 21.2%의 칠레, 24%의 미국에서 이어 뒤에서 4번째입니다. OECD 국가 평균은 34.1%. 1위는  47.7%의 덴마크, 2위는 44.2%의 스웨덴, 3위는 44.1% 프랑스로 우리와 격차가 큽니다. 이웃나라 일본도 우리보다 높은 28.6%를 기록했습니다.

사회복지지출 상위권인 덴마크와 프랑스 등이 국민부담률도 높은 걸 보면, 역시 '증세 없는 복지'는 환상이다, 복지를 위해서는 증세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법 합니다. 그런데 정말 세금을 많이 내면 사회복지지출이 급격히 늘어날까요? 정말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 국민들 보다 세금을 적게 내고 있는 걸까요?

한국 행복지수 낮음
● 우리 국민은 정말 세금을 적게 내고 있는 것일까?

진짜 우리 국민이 세금을 적게 내고 있는지를 비교하려면, 정부의 사회복지지출이 어느 정도인지, 즉 국민들이 어느 정도의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는지를 같이 비교해 봐야할 겁니다. 50원을 내고 50원의 혜택을 보는 사람과 30원을 내고 10원의 혜택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30원을 내고 있는 사람이 진정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테니까요.

앞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나라의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9.1%로 21.7%인 OECD 평균의 41.9% 수준입니다. 반면, 국민부담률은 25.9%로 역시 평균인 34.1%, 보다는 낮지만, 사회복지지출 비율보다는 훨씬 높은 평균의 76% 수준입니다. 우리 정부가 다른 OECD 국가들과 같은 비율로 사회복지에 지출했다면, 우리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6.5%기 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보다 훨씬 낮은 9.1%. 결국, 우리 국민들은  다른 국민들보다 세금 대비 낮은 수준의 복지만 받고 있는 겁니다.

우리나라와 국민부담률이 비슷한 2개 국가와 비교해 볼까요? 호주와 미국의 2011년 국민부담률은 각각 26.5%와 24%로 25.9%인 우리나라와 크게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18.2%, 19.6%로 9.1%인 우리나라의2배 수준입니다. 즉, 우리 국민들은 호주나 미국 국민과 비슷한 세금을 내고, 복지 혜택은 절반만 누리고 있는 겁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 국민이 호주나 미국 국민보다 세금을 배 이상 많이 내고 있는 셈 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국민이 세금을 적게 내기 때문에 복지 수준이 낮다는 일반적 생각은 사실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세출 구조 조정 없는 증세…국민 동의 구할 수 있을까?

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2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입 대비 우리 정부의 지출 규모, 즉 세출 규모가 굉장히 작아서 사회복지 분야에 지출할 여력이 물리적으로 적을 가능성입니다. 하나는 우리 정부가 다른 국가에 비해서 복지를 제외한 다른 분야에 더 많은 비중의 돈을 쓰고 있을 가능성입니다.

첫 번째 이유가 맞다면, 우리 정부는 대규모 재정 흑자를 기록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2011년 우리 정부는 4조 8천억 원 정도의 재정 흑자를 기록한 뒤, 이후 최근 3년간은 재정적자 상태입니다. 걷는 돈 보다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우리 정부가 다른 국가에 비해 복지가 아닌 다른 분야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을 가능성입니다. 사실이라면, 복지 때문에 정부 재정이 바닥나고 있다지만, 이런 핑계는 과장됐을 수도 있습니다.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GDP 대비 우리 정부의 경제업무 지출 비율은 6.64%. 아이슬란드와 체코에 이어 3번째로 높습니다. OECD 평균은 4.72%입니다.(호주 등 일부 국가 제외) 한국은행에 따르면, 경제업무 지출은 정부가 ‘경제’와 관련해 지출한 정부 지출의 총합으로, 기업 등에 대한 연구지원비, 경제 활성화를 위해 투입한 비용, 현 정부의 경우 창조 경제 관련 예산이 경제업무에 포함됩니다.

한편, GDP대비 우리나라의 국방비 지출 비율도 2.57%로 이스라엘, 미국 등에 이어 5위입니다. OECD 평균은 1.68%입니다.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OECD 평균의 41.7%인 우리나라가 경제업무와 국방비 지출 비중은 평균보다 40%와 53% 더 많이 쓰고 있는 겁니다. 결국 이렇게 보면, 몇 년 전부터 복지가 사회의 화두였다지만, 아직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복지는 밀려나 있는 겁니다.
박원경-사회복지지출
위 그래프는 2011년 기준, OECD가 각국의 정부 지출을 10가지 항목으로 나눠 비교한 것입니다. 사회복지지출을 건강, 사회보호 등으로 더 세분화한 이 그래프는 정말 우리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넘치거나 모자란 부분은 무엇인지 더 섬세히 비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사회복지 부분을 건강과 사회적 보호 등으로 세분화했기 때문에 국가 간 사회복지 부분을 비교하기에 더 용이합니다.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 정부가 OECD 국가들보다 눈에 띠게 많이 지출하는 부분은 국방비와 경제업무 부분입니다. 각각 2.6배와 2배 정도 수준이죠. 눈에 띠게 적은 부분은 사회적 보호 부분으로 평균의 36% 수준입니다. 요즘 정치권에서 증세를 통해서 복지 증대를 하자고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복지’의 상당 부분은 OECD 평균의 36%인 사회적 보호 부분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 지출을 늘리기 위해서 세금을 더 걷는 방법 밖에 없을까요? 살다보면 평소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거나 예상치 못한 질병으로 병원비 지출이 생기는 경우가 그렇죠. 이런 지출은 단기에 끝나지 않고, 장기적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대다수 가계는 다른 지출을 줄이고, 돈이 필요한 곳에 지출을 늘리는 것으로 대응합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거나 지인에게 돈을 빌려는 것은 그 이후에 생각하죠.

정부 지출에도 이런 방식을 적용해 볼 수 있을 겁니다. 만약 국방비와 경제업무를 OECD 평균 수준으로 줄이고, 그 차액만큼을 사회적 보호 부분에 쓰면 어떨까요? 그렇게 되면 사회 보호 부분에 대한 정부 지출은 28.1%까지 증가하게 됩니다. 굳이 세금을 더 내라고 이야기 할 필요는 없는 거죠. 이렇게 조정을 하고도 복지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경우, 증세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 "세출 조정과 세입 증대로 복지 재원 마련"
증세 재추진 캡쳐_
물론, 세출 조정만으로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할 수는 없습니다. 노령 인구가 급격히 늘어나고, 출생률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니 현재와 같은 복지 수준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는 않을 겁니다. 때문에 정부는 솔직히 증세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야죠.

다만, 복지가 정말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 증세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정부는 세출 조정을 통해 복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내 놓아야 합니다. 이런 노력 없이 다른 분야에 지금처럼 돈을 쓰면서, 복지를 위해 돈이 더 필요하니 세금을 더 내라고 하면, 글쎄요, 쉽게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더욱이 지금처럼 세금이 복지혜택으로 돌아오는 비율이 다른 국가들보다 낮은 상황에서는 동의를 구하기 더 어렵겠죠.

“복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출 구조조정과 세입 증대가 균형 있게 이뤄져야 하며, 세출구조조정의 방안으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줄여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통령 당선 전인 2011년, 국회 기재위 국감장에서 한 발언입니다. ‘증세 없는 복지’라는 공약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겠죠. 하지만, 경제 살리기 명목으로 추경까지 하면서 세출 구조는 기존보다 더 경제 위주로 변했습니다. 세입 증대 방안으로 내세웠던 지하경제 양성화는 실현 가능성이 난망한 상황이죠. 이런 상황에서 정말 복지 재원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 됐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할까요? 

*앞서 언급한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 수치는 OECD 자료를 인용한 것이며, 해당 보고서는 각 국가의 경제적, 사회적 환경의 차이를 고려해 수치를 조정했는데, 조정한 이 수치도 OECD 자료 수치와 경향성 면에서 크게 차이는 없습니다. 해당 보고서 전문은 아래 주소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OECD 보고서 보러가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