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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도핑, '몰랐다'는 말의 분석

[취재파일] 도핑, '몰랐다'는 말의 분석
● 몰랐을 리 없다?
 
박태환 선수가 맞은 주사는 테스토스테론이라는 남성호르몬입니다. 남성호르몬이 부족해 성장이 더뎌질 것이 우려되는 어린이나 남성 갱년기 환자에게는 치료 약으로 쓰일 수 있지만 대회에 출전하는 운동 선수에게는 금지돼있고 치료 목적이라도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박태환 선수가 몇 차례나 이 주사를 맞았는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정황으로는 2013년 12월 어느 날과 2014년 7월 29일 최소한 두 차례 맞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맞았던 남성호르몬 주사의 성분이 몸 속에 남아 있다가 35일 뒤인 2014년 9월 3일, 인천 아시아게임을 보름 앞둔 시점에서 불시에 시행된 도핑 테스트에 양성 반응이 나타난 겁니다.

지금까지는 박태환 선수와 박태환 선수에게 주사를 놓았던 의사 모두 몰랐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의사가 어떤 약품인지 모르고 환자에게 주사를 놓을 수는 없으니까, 해당 의사가 몰랐다는 건 남성호르몬 주사가 운동선수에게 금지된 약물인지 몰랐다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약품 설명서에 운동선수가 도핑 테스트를 받으면 금지 약물 양성 반응이 나올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쓰여있습니다. 그리고 해당 의사는 우리나라 최고급 호텔 안에 자리 잡은 의원에서, ‘안티-에이징’을 표방하며 그런 종류의 치료제를 주로 처방해왔습니다. 박태환 선수 역시 약물검사를 불시에 받아야 하는 처지여서 자신이 어떤 약을 먹는지 어떤 주사를 맞는지 묻고 이를 즉시 확인하는 방법을 여러 차례 교육받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입니다.
 
●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박태환 선수의 경우에는 몰랐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과거에 도핑 테스트 적발된 선수들이 사용했던 남성 호르몬은 반감기가 3주 정도입니다. 그 호르몬을 맞았을 때 근육이 강화되는 효과가 3주 정도 지속된다는 것인데, 그 3 주는 도핑테스트에 적발될 수 있는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영악한 선수는 주치의와 짜고 소량씩 맞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이럴 경우 단순 혈액검사로는 애매하게 나타나는데, 미국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이 그랬습니다. 그런데 박 선수가 맞았던 바이엘 제약의 네비도라는 약물은 기능이 강화된 2세대 남성호르몬으로 지속 기간이 3개월이나 됩니다. 도핑테스트에 적발될 기간 역시 3개월입니다. 그런데 박태환 선수는 네비도를 2014년 7월 29일에 마지막으로 맞았습니다. 그렇다면 10월 29일까지는 도핑테스트에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채 한 달도 되지 않는 2014년 8월 23일, '팬퍼시픽 수영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이 대회에서 전문가들은 박 선수의 우승을 예상했고, 우승할 경우 도핑테스트 대상자로 선정될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실제로 박 선수 400m 종목에서 2014년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습니다. 폭탄을 들고 불구덩이로 들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이렇게 무방비로 도핑테스트에 적발된 선수는 매우 드물다는 점에서 박 선수가 몰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 겁니다. 
박태환 도핑 캡쳐_
 
● 도핑 양성 판정이 문제가 될 줄도 몰랐다?
 
운이 좋게도 박 선수는 팬퍼시픽 수영대회에서 우승을 했는데도 도핑 테스트 대상자로 선정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운은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습니다. 지난해 9월 3일 도핑테스트 검사관이 불시에 수영 연습 중인 박 선수에게 소변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변에서 남성호르몬 양성 판정을 받았습니다. 박 선수 측은 이 통보를 10월, 아시안게임 이후에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 이전일 것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대한올림픽위원회 의무위원장을 역임했던 박원하 삼성서울병원 스포츠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세계반도핑기구(WADA)가 샘플 채취 후 그 결과를 해당 선수에게 통보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통상 1주일이라고 말했습니다. 2014년 9월 3일 실시된 도핑테스트라면 그 결과가 9월 10일 정도에는 선수에게 통보됐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 박 선수는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도핑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다른 샘플로 추가 조사를 받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후자의 경우라도 검사 과정이 열흘 정도 걸립니다. 그렇다면 9월 20일 즈음에는 세계반도핑기구의 최종 결정 즉 '도핑테스트 양성이니 청문회 일정이 잡히면 출두하라'는 통보를 받았을 것이라는 겁니다.

세계반도핑기구가 도핑 통보를 최대한 서두르는 건 선수 보호 차원이라고 했습니다. 도핑 결과에 대한 심리적 부담감을 최대한 빨리 덜어내주자는 겁니다. 도핑 청문회가 개최되기 전까지 비밀 유지를 원칙으로 심는 것 역시 선수 보호 차원입니다. 박 선수가 9월 20일 즈음에 최종 통보를 받았다면, 9월 23일에 열린 아시안게임 400m 경기의 저조한 성적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한 달 전 팬퍼시픽 대회보다 무려 5.18초나 늦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점이 있습니다. 두문불출해도 모자랄 박 선수가 아시안게임 이후에도 언론 활동을 활발히 했다는 겁니다. 도핑 양성 판정이 문제가 될 줄 몰랐어야만 가능한 일이 아닐까요?

● 몰랐다는 걸 입증한다면?
 
'돌팔이'는 의사에게 부끄러운 호칭이지만 의료 사고 법정에서는 의사에게 유리하게 작용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뇌종양 환자의 MRI를 정상으로 판독하고 아무 치료도 하지않은 의사는 뇌종양이라고 제대로 판독하고 치료하지 않은 의사보다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됩니다.

법원은 고의성보다는 무능한 게 덜 나쁜 것이라고 판단해왔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의 의사가 한결 같이 '남성호르몬 주사제가 금지약물인지 몰랐다'며 무능함을 주장하는 건 윤리적이지는 않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어법입니다.

하지만, 박 선수는 몰랐다는 걸 입증하더라도 방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도핑 검사에서 양성 판정을 받은 선수들이 대부분 '몰랐다'고 말을 해온 탓에 세계반도핑기구는 선수에게 치료 목적의 약이라도 금지약물인지 살필 의무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박 선수가 맞았던 남성 호르몬 주사 약물에 대해서는 방어에 성공한 선수는 지금까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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