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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모니카의 평양, 그리고 서울

불통의 시대에 그녀가 주는 그리움

[취재파일] 모니카의 평양, 그리고 서울

 

● 모니카의 고향은 '한반도'
 
한국어를 모국어처럼 말하는 이 흑인 여성의 이름은 '모니카 마시아스'다. 보통은 아프리카 적도 부근에 있겠거니 추측만 할 수 있는 '적도 기니'라는 나라가 모니카가 태어난 곳이다. 그녀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들고, 철이 들고, 어른이 된 곳은 한반도였다. 7살부터 20대 초반까지 그녀가 자란 곳은 평양이었다. 서울은 30대의 열정을 불태운 곳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고향을 한반도라고 말한다. 

 

● 평양에 남겨진 3남매

취파


그녀의 아버지 '프란시스코 마시아스'는 스페인에서 막 독립한 '적도 기니'의 초대 대통령이었다. 혼돈의 시대였다. 그는 쿠데타 가능성을 감지했고,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사까지 담보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부인과 자식들을 평양의 김일성 주석에게 보내기로 한다. 1970년대의 세계 정치 상황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체제 속에서 북한은 서구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제 3세계 국가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던 시대였다.
 
모니카가 엄마와 언니, 오빠와 평양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 암살 소식이 전해졌다. 적도 기니엔 모니카의 큰 오빠 혼자 남겨졌다. 어머니는 세 남매를 북한에 남겨두고 적도 기니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세 남매와 생이별하는 고통을 감수하며 북한을 떠나야 했던 건 고국에 남은 큰아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 망각…그리고 북한의 삶

7살이었던 모니카는 엄마의 부재를 배신으로 인식했다고 했다. 어린 그녀에게 사람들은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낯선 북한에서의 삶은 매일이 불안함이었다. 그 상황에서 엄마가 떠났다는 현실은 마지막 동아줄이 끊어진 듯 절망감을 던져줬다. 그 충격은 모국어에 대한 상실로 표현됐다. 한 순간에 스페인어를 까맣게 잊어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빠른 속도로 한글이 차지했다고 한다. 글자인지 그림인지 구분하기 힘들었던 한글을 불과 두 달 만에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됐던 것이다. 

 

● '친구여'와 '행진'

취파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조용필의 '친구여'와 들국화의 '행진'이라고 했다. 기댈 곳이 많지 않던 그녀를 지탱해 준 가장 큰 힘은 친구였고 세상을 헤쳐 나갈 용기가 부족할 때마다 행진이란 노래를 들으며 힘을 얻었다고 했다.
 
김일성 주석은 평생 살아도 된다고 허락했지만 세 남매는 대학을 졸업하면서 나란히 북한을 떠난다. 북한에서 건축을 전공한 오빠 파코는 적도 기니에서 전공을 살려 조국 재건의 역군이 되고 있다. 언니 마르셀은 엄마의 고향 스페인으로 돌아가 평범한 주부가 됐다. 모니카는 스페인, 중국, 한국, 뉴욕에서 살며 자유와 열정의 향기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공부와 일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런던에서 지내고 있는데 런던대학교 대학원 입학 허가를 받아 9월부터 국제관계학을 공부할 예정이다. 그녀는 스페인어, 영어, 한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다, (중국어도 의사소통 정도는 가능하다) 그 누구보다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자유롭고 합리적으로 바라보는 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런던대학은 그녀의 입학 지원을 장학금으로 화답하기로 했다.
 
 

● 편견과 오해

그녀도 북한 정권의 문제점을 적극 비판하고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누구보다 걱정한다. 그녀를 키워준 곳은 평양이지만 20여년의 삶 동안 밖에서 공부하며 북한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녀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마음을 열고 듣는 사람이 있는 반면, 북한과 우리의 차이점만을 집요하게 확인하려 하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대통령의 선언이 과거 초등학교 반공표어 만큼 공허하게 느껴지는 시기에 통일의 당위성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그녀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척 단순하고, 지혜롭다.
 
 


▶ [영상토크] 나는 평양의 모니카
▶ [현장 21] 모니카의 평양 그리고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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