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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서울시교육청 '유치원 발표', 왜 하필 '금요일'이었을까

[취재파일] 서울시교육청 '유치원 발표', 왜 하필 '금요일'이었을까
지난주 금요일(23일), 교육청 기자단에 문자 한 통이 날아왔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유치원 중복지원 합격취소 방침을 철회한다는 보도자료를 보냈다는 겁니다. 자료 내용은 이렇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1월 가나다군 별 추첨제로 원아모집 방법을 개선하면서 군별 중복지원자에 대해 합격 취소 방침을 세우고, 중복지원자를 파악하고자 하였으나 명단 파악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유치원 단체로부터 중복지원자 합격 취소에 따른 현장의 혼란과 추가 원아모집으로 인해 새학기 유치원의 정상 운영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하는 의견 표명이 있었다.

이에, 서울교육청은 유아와 학부모에게 미칠 영향과 신학기 교육과정 정상 운영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일선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중복지원자의 합격을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는 올해 말에 있을 유치원 원아모집 관련 정책 로드맵까지 붙여서 보냈습니다.
[취재파일] 유치원

이런 중요한 발표를 왜 하필 금요일에 했을까 궁금했습니다.

국가기관이나 검찰 등에서 보통 불리하거나 곤란한 내용을 발표할 때 금요일에 기습적으로 하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금요일에 발표하면 보통 뉴스 수요가 적은 금요일 저녁 메인뉴스와 다음날 조간신문에 기사가 처리되고 주말을 지나면서 잊혀지곤 하지요. (관련 기사 : [취재파일] 검찰은 금요일을 좋아해)

교육청은 보통 주간 보도 계획에 따라 예정된 자료를 배포하고, 긴급한 필요가 있을 때 즉시 보도자료를 냅니다. '즉시 보도자료'라고 해서, 어떤 긴급한 필요가 있었는지 물어봤습니다. 기자단 백브리핑에 나온 교육청 관계자는 "19일에 '합격취소 방침 철회' 최종 결정을 내렸고, 관련 공문을 각 유치원에 내려보냈기 때문에 기자들이 공문을 보고 알게 될까 봐 발표하게 됐다"고 답했습니다.

19일은 월요일이고, 23일은 금요일입니다. 최종결정이 났다는 19일이야말로 '긴급한 필요'가 있었겠지만, 닷새나 지나서 얘기하는 긴급한 필요성은 잘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앞으로의 개선책을 밝힌 '2016 유치원 원아모집 정책 로드맵'까지 붙여서 냈다면, 정식 브리핑을 잡아서 제대로 알려야 하는 것 아닐까요?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결국 중복지원 안 하고 원칙을 지켰다가 피해를 봤다고 생각하는 학부모들에 대한 구제책은 있는지, 그냥 유감이라고 하고 넘어가면 되는 거냐, 이건 지난 수능 세계지리 오류 사태와 맞먹는 혼란을 일으킨 것 아니냐는 겁니다.

답을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그거 관련해서는 우리 과장님이 새로 오셨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지난 연말에 교육감님도 거기에 대해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미 마무리할 단계에서 저희가 할 얘기는 아닌 거 같고요. 우리가 (금요일 즉시 보도) 의도적인 거 아닙니다. 19일 날 내부적으로 결정 해놓고 기자님들 공문 보실까 봐 급하게 (자료 발표) 하게 됐습니다."
[8리/나리]조희연
지난 12월 30일 조희연 교육감은 연말 기자 간담회에서 중복지원자에 대한 합격취소 문제는 일주일 정도 더 고민해보고 결정하겠다고 말해 사실상 방침 철회를 시사한 바 있습니다. 조 교육감은 "유치원 문제는 사전에 시뮬레이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혼란에 대한 실무 책임을 지고 담당과장을 교체했다"고 말했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설명드린 과정을 보신 학부모님들께서 서울시교육청이 정식으로 유감을 표명했다고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7월 1일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취임하고 나서, 서울시교육청이 언론의 전면에 등장했던 주요 보도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자사고 지정취소 관련 교육부-서울시교육청간 대립이고, 다른 하나는 유치원 원아모집 중복지원 합격 취소 방침입니다.

두 가지 모두 결국 교육제도의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에게 어떠한 식으로든 큰 혼란을 줬습니다. 자사고 사태에는 정치논리가 개입되어 있었기 때문에 서울시교육청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물을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유치원 원아모집 관련 혼란은 오롯이 서울시교육청의 책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섣부른 행정실험으로 오락가락하는 사이, 유치원 원아모집 개선은 교육부로 공이 넘어갔습니다. 교육부는 최근 유치원 입학 시 학부모 불편과 과열경쟁을 해소해야 한다며 시·도교육청이 유치원 원아의 모집군 설정, 중복지원 및 등록제한, 입학취소를 할 수 있도록 연내 '유아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나리/아리]유치원
유치원 원아모집 개선 방안은 취임 후 조희연 교육감의 첫 행정실험으로 불립니다. 그간 지나치게 과열됐던 유치원 중복지원을 제도적으로 개선해 보겠다는 취지는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아쉬운 건, 실패로 끝난 이 행정실험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이 정책 발표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학부모들에게 사과를 구하고, 개선책을 주도적으로 밝혔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겁니다. 이런 점이야말로 그간 비판받아왔던 교육행정의 구태를 넘어, 진보 교육감 시대에는 '뭔가 다르다'라는 기대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개인적으로 금요일 기습 자료 발표에 대해 실망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기자의 서울시교육청 출입은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첫 번째는 지난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보수로 분류되던 공정택 교육감 시절에 출입했습니다. 그래서 이번 두 번째 출입에서 진보 교육감 시대를 맞이한 서울시교육청에 대한 기대가 컸습니다. 지난번 출입 때 느꼈던 교육계의 보수적 행정관행이나 경직된 조직문화에 진보교육감의 등장이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출입기자로서뿐만 아니라, 교육감 선거에서 한표를 행사했던 서울시 유권자로서 바랐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내일(29일) 조희연 교육감이 신년 주요 업무계획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이 있습니다. 저는 선출직 기관장이 빠지기 쉬운 가시적인 성과에 대한 조급증이 이번 유치원 정책 실패로 귀결됐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남은 임기가 많은 만큼, 유치원 사태 대신 서울시민의 뇌리에 오랫동안 남을, 완성도 있는 정책이 나오길 기대합니다.       


▶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유치원 혼란' 공식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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