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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영혼을 울리고 싶었던 슈틸리케의 말

[취재파일] 영혼을 울리고 싶었던 슈틸리케의 말
슈틸리케 감독이 취임 4개월 만에 한국축구를 아시안컵 결승으로 이끌면서 마치 예언처럼 맞아 들어가는 그의 과거 발언이 일명 ‘족집게 어록’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명장은 명언을 남긴다고 하는데, 아직 명장으로 불리기에는 이른 감이 있지만 명장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한국 축구에서 어록하면 빼놓을 수 없는 명장은 히딩크 감독입니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루는 과정에서 숫한 명언들을 남겼죠. 박지성을 발굴하면서 ‘멀티플레이어’라는 말을 유행시켰고, “축구는 테니스가 아니다.”라는 말로 몸싸움과 체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며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히딩크는 16강 진출에 성공한 뒤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며 거침없이 진격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처럼 히딩크의 어록은 짧고, 위트 있고, 직설적이었습니다.

반면 슈틸리케의 어록은 좀 현란하고 장황합니다. 다양한 은유와 비유를 섞어가면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슈슈틸리케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슈틸리케 스타일”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습니다.

“팬들은 점유율, 패스, 슈팅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승리가 중요합니다. 어떤 날은 티키타카, 어떤 날은 공중볼이 승리를 위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승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말은 최근 ‘실학축구’를 예언하는 말로 더욱 화제가 됐습니다. 슈틸리케의 어록은 마치 시인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낭만적일 때도 있습니다.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확신에 차면서도 따뜻한 말을 남겼습니다.

“한국 축구에 도약 가능과 희망이 없다면 저는 감독을 맡지 않았을 겁니다.
저는 선수들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영혼을 울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취임 후 첫 소집 훈련에서 밝힌 포부도 낭만적입니다.
슈틸리케
“오늘부터 한국축구는 새롭게 출발합니다. 저와 함께 새로운 여행을 떠날겁니다.”

그리고 다양한 비유를 들어 자신의 축구 색깔을 확실히 드러냈습니다.

“제가 수비에 집중하는 건 집을 짓는 데 비유할 수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든 지붕을 먼저 짓지 않습니다. 기초를 탄탄히 받치고 나서 지붕을 올립니다. NBA에는 이런 명언이 있습니다. 공격을 잘하는 팀은 1승을 하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을 차지한다는 겁니다. 지금 이 격언을 실천해 나가고 있는 겁니다.”

히딩크는 감독이 배고프다고 했지만, 슈틸리케는 배고픈 선수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브라질 월드컵 멤버 11명이 빠진 파격적인 아시안컵 명단을 짰습니다. 그리고 감독의 열정과 확신을 보여주며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 줬습니다.

“제게는 열정이 있고, 배가 고픈 선수가 필요합니다. 경험과 나이에 관계없이 발탁했습니다.
이 팀은 굉장히 젊고 미래가 있기 때문에 지켜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선수들이 능력을 100% 보여준다면 우리는 1월 31일 결승에서 살아남을 거라고 믿습니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할 때는 역설적인 화법을 씁니다. 아시안컵에서 쿠웨이트와 2차전에서 졸전을 치른 뒤 슈틸리케는 “우리는 우승후보에서 제외됐다.”며 쓴소리를 했는데, 이 말의 전문은 이렇습니다.

“오늘 경기에서 두 가지 좋은 점(two good things)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2경기를 치르고 승점 6점을 땄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가 우승후보에서 제외됐다는 점입니다. 이런 축구를 하면 우승할 수 없습니다.”

슈틸리케는 우리가 우승후보에서 제외됐다는 소식을 좋은(good) 소식으로 전했습니다. 다른  우승후보들에게 좋은 뉴스를 만들어 줬다는 역설적인 질타일 겁니다. 이후 선수들은 투지를 불태웠고, 승승장구했습니다. 슈틸리케는 4강 진출을 확정한 뒤 기자들에게 “아직도 우리가 우승후보에서 제외됐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슈틸리케는 다시 한 번 시인이 됐습니다.

“저는 그 때(쿠웨이트전) 펼쳐진 경기를 분석했을 뿐입니다. 꿈을 꾸기만 하면 안 됩니다. 꿈은 우리를 결승으로 데려다 주지 않습니다.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가 중요합니다.”

이렇게 취임 4개월 된 슈틸리케 감독은 숫한 명언을 남기며 한국축구를 27년 만에 아시안컵 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감독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줬습니다.

슈틸리케에게는 아직 명장이라는 말보다 운장(運將)이 더 어울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슈틸리케 감독은 자신의 말 대로 이기는 축구를 했고, 한국 축구에 ’승리 DNA‘를 심고 있다는 겁니다.

“선수들의 마음으로 들어가 영혼을 울리고 싶다.“던 슈틸리케 감독과 말이 아직도 귀에서 울리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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