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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취재파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기사 제목을 무엇으로 쓸까 참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썼다가 지우길 1시간 동안 반복했습니다.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다섯 살 태성이의 사진을 다시 봤습니다. 태성이는 유독 통통한 볼이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컴퓨터 모니터를 가득 채운 꼬마 천사의 환한 웃음, 그 웃음이 예뻐 또 한참을 울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을 정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 어느 평범한 날 다가온 '비극'

사고는 지난해 5월 7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날도 여느 평범한 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유치원에 등원한 태성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리며 놀았습니다. 그런데 이 '평범한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즐겁게 뛰어다니는 친구들과 달리, 어느 순간 무슨 일인지 태성이는 책상에 엎드려 머리를 들지 않았습니다. 태성이는 그렇게 한참을 책상에 엎드려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선생님이 선생님 엎드려 있는 태성이를 발견했습니다. 선생님은 태성이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다른 친구들과 뛰어놀라고 얘기했습니다. 태성이는 그럴 힘이 없었습니다. 태성인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습니다. TV를 보다간 절하듯 앞으로 고꾸라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태성이는 또 그렇게 고꾸라진 채로 혼자 한참을 있었습니다. 뒤늦게 태성이를 발견한 선생님은 태성이가 졸린다고 생각해 다른 방으로 데려가 뉘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평범한 어느 날 다가온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 중단된 심폐소생술

인기척이 없이 누워 있는 태성이를 발견한 것도 선생님이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선생님은 태성이의 호흡과 맥박을 확인해봤습니다. 하지만, 뭔가 잘못된 걸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놀란 교사는 숨이 멎은 태성이를 업고 1층 원장실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습니다. 심폐소생술은 유치원 원장이나 교사가 아닌 '군 의무병 출신'인 유치원 운전기사가 맡았습니다.
 
하지만, 유치원에서 태성이가 받았던 심폐소생술은 길지 않았습니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내용이지만, CCTV 영상에 기록된 시간으로 볼 때는 몇 분을 넘지 않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어떤 이유에이서인지, 유치원 교사는 심폐소생술을 중단하고 숨이 멎은 태성이를 데리고 근처 동네 병원으로 갔습니다. 유치원은 주택가에 있었고 차는 골목, 골목을 빠져나와 간신히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 병원엔 의사가 없었습니다. 점심을 먹으러 가 자리는 비운 것이었습니다.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순간이었습니다.
혼수상태 어린이집
 
● "심폐정지, 자발호흡 불가"


금쪽 같은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고, 신고 접수 후 8분 만에 드디어 구급차가 동네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태성이를 태운 구급차는 다시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태성이는 구급대원의 심폐소생술을 받으며 병원으로 급히 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응급실에 도착했을 땐 태성이는 이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산소 공급을 받지 못한 뇌가 이미 심각하게 손상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의료진이 심폐소생술을 계속해 간신히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지만,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Golden Time)'을 놓친 뒤였습니다. 당시 태성이의 상태를 기록한 의료기록지엔 “심폐정지 상태로 내원. 자발호흡은 회복되지 않아 기관 삽관 및 인공호흡기에 의하여 호흡을 유지. 저혈압으로 혈압상승제 투여”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 혼수상태에 빠진 태성이, 끝내 숨져

그날로부터 8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태성이 인공호흡기와 약물에 의지해 가느다란 생명의 끈을 붙잡고 힘겨운 싸움을 해왔습니다. 부모는 매일 하루 두 차례 중환자실에 누워 인공호흡기로 숨 쉬던 태성이를 면회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젠 그마저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태성이가 오늘(1월 27일) 짧았던 생을 마감했기 때문입니다. 태성이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자님, 주말부터 태성이 안 좋아졌는데, 기자님이 취재하시는 거 알고 이제 마음이 편해졌나 봐요. 그래서 마음을 놓기 시작했나 봐요. 태성이가 떠나기 전에 보도해 줘서 고마워요. 이제 편하게 보내줄 수 있을 거 같아요." 다섯 해 남짓 짧은 생을 산 꼬마 천사 태성이, 우리는 왜 태성이를 지켜줄 수 없었을까요?
 
취재 과정에서 가장 먼저 주목했던 것은 사고 당일 태성이의 몸 상태였습니다. 유치원 CCTV 영상을 보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태성이는 책상에 엎드리거나 절하듯 쓰러지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태성이 부모가 유치원에 태성의 건강 상태에 대해 유치원 측에 미리 알렸단 점입니다. 태성이 어머니는 태성이가 처음 유치원에 들어갈 때, 사고 발생 4개월 전인 2014년 1월, 생활조사표에 아이가 '열성 경기'를 세 차례 한 적이 있다고 적어서 제출했습니다. (※ 몸이 안 좋은 아이를 사고 당일에 보낸 건 아닙니다. 유치원에 갈 때까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태성이 부모는 말했습니다.)

이후 담임교사 면담 때도 이 같은 사실을 직접 얘기했습니다. 애초 처음 유치원을 갈 때, 아이가 열이 심하게 나 경련을 세 차례 했기 때문에 주의 깊게 봐달라고 부탁한 겁니다. 그럼에도, CCTV 영상을 보면, 오랜 시간 동안 태성이는 혼자 있었고 교사가 열을 잰다든지 병원으로 데려간다든지 학부모에게 연락하는 모습은 확인하기가 어려웠습니다.
 
● 제대로 시행되지 않은 심폐소생술

하지만, 이번 사고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유치원에서 시행한 심폐소생술이었습니다. 앞서 설명 드린대로, 유치원 측은 사고 직후 심폐소생술을 하다가 동네 병원으로 급히 태성이를 데리고 갔습니다. 하지만, 대한심폐소생협회 규정에는 심폐소생술을 할 때는 구급대원이 도착하거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제세동기를 쓸 수 있을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심폐소생술을 해야 위급 상황에서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 심장에 자극을 주기 위해선 흉강을 감싸고 있는 갈비뼈가 부러질 때까지 강하게 가슴을 압박해야 합니다.
 
이 기준을 토대로 유치원 측의 응급처치 대응과정을 보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심폐소생술을 계속하며 119구급차를 기다리지 않은 점, 심폐소생술을 규정에 맞춰 수행하지 않은 점, 그리고 그마저도 교사가 아닌 운전기사가 한 점 등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결과론적 관점에서, 인생에서 '만약'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만약' 태성이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고 현장에서 제대로 심폐소생술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응급의학 전문의들은 적어도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 거라며 안타까워했습니다.

● "제2, 제3의 태성이가 또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제2, 제3의 태성이가 언제든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 관광위원회 새누리당 이종훈 의원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유치원 안전사고는 지난 2010년 4500여 건에서 2013년에는 7000여 건으로 3년 새 55%나 급증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럼에도, 유치원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응급처치 교육은 부족하기 짝이 없습니다. 지난해 이 의원이 전국 유치원 7100곳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인 결과, 심폐소생술 등 안전교육을 받은 횟수는 한 해 평균 한 차례, 교육시간도 한 시간 반에 에 불과했습니다. 또, 교육 1회당 참여 교사 수도 유치원 평균 교사 5.3명에 절반 수준인 평균 3명에 그쳤습니다. 이처럼 응급처치 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상황에서 태성이를 지켜주지 못한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태성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이번 사고를 같이 취재했던 후배 기자와 함께 태성의 장례식장을 찾았습니다. 사진 속 태성이는 '통통한 볼'을 자랑하며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전 그 자리에서 전 태성이에게 마음을 다해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입니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언제, 어느 순간에도 침착하게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고백하건대, 이번 사고를 취재하면서는 전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무너지는 경험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호자와 통화하면서, 수사기관을 취재하면서, 유치원을 취재하면서 시도 때도 없이 감정이 무너졌습니다. 태성이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이 기사를 쓰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이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 많은 이들이 흘렸던 눈물이 한때 스쳐 가는 감정으로 남아선 안 될 겁니다. 다시는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또 제2, 제3의 태성이가 나오지 않게 막는 제도적 장치로 이어져야 할 것입니다. 그게 우리가 지켜주지 못한 태성이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고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내일이면, 목숨보다 사랑한 아들을 저 먼 세상으로 보내야 하는 태성이 아버지 얘기로 기사를 마치고 싶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보면서 저희 부부는 그래도 참 행복했다고 했어요. 적어도 제 아들은 제 옆에서 숨 쉬고 있었잖아요. 기자님, 그만 슬퍼하고, 인제 그만 울어요. 이제 세상에 모든 아이들이 우리 아이입니다. 세월호 때 먼저 간 아이들, 그리고 우리 아이, 그 친구들이 하늘에서 보고 있을 거예요. 기자님도 조금 더 좋은 세상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어서 기자 하셨잖아요. 이제 우리가 같이 그런 세상 만들어 가도록 해요."
 
※ 故 김태성 어린이의 명복을 빕니다. 


▶ [단독] 소생술 못해서…5살 아이, 8개월째 혼수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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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살 아이 혼수상태 유치원" 관련 반론보도문] 

 본 방송은 지난 1월 26일 '소생술 못해서… 5살 아이, 8개월째 혼수상태', 27일자 '[취재파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제목의 각 보도에서 서울 구로구의 한 유치원에 다니던 다섯 살 김모 군이 8개월 째 혼수상태에 빠져있다고 보도하면서,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의 과거 병력에 대해 유치원에 알리면서 주의를 요청했고, 유치원의 119 신고가 늦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해당 유치원은 해당 아이의 부모가 생활조사표에 경기 병력을 기재했으나 아이의 경기 형태가 호흡이 미약해지는 경기라는 구체적 사실을 알린 적이 없고, 사고 당일 아이는 교사의 관리 하에 있었다고 알려왔습니다. 

또한 아이의 상태를 발견한 후 54초 만에 119에 신고했고, 119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의무병 출신 운전기사와 인근 병원의 간호조무사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으며 아이의 혼수상태는 엔테로바이러스71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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