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119 아닌 '사설'도 구급차는 구급차다!

얼마 전 SBS 8뉴스에서 구급차가 승용차를 추돌해 사고가 나자 승용차 운전자가 사고 처리를 하고 가라며 구급차를 막아섰다는 내용이 보도됐습니다. (  ▶ 구급차 아이 죽어가는데…"보험처리 하고 가라" ) 물론 SNS와 인터넷에서는 이 승용차 운전자를 비난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하루 평균 6백 건이 넘는 교통사고가 일어납니다. 그런데 왜 이 사고가 유독 관심을 끌었는지, 또 그 배경엔 무엇이 있었는지, 뉴스토리팀은 다시 한번 면밀히 취재해 보기로 했습니다.

사건은 지난 17일 오후 1시 반쯤 인천 남동구의 장승백이 교차로에서 일어났습니다. 세살 먹은 뇌병변 아이를 태운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앞서 가는 차들에게 길을 터줄 것을 호소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편도 2차선 도로였는데, 직진과 좌회선이 동시에 허용되는 1차선으로  달리던 승용차는 길을 비켜주는 대신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미처 좌회전을 하기 전 신호가 바뀌자 승용차는 급정거를 했고 구급차가 그 뒤를 들이받았습니다. 문제는 그 뒤에 벌어졌습니다.
뉴스토리_ 구급차

구급차 대원은 승용차 운전자에게 자신의 명함을 주며 위급상황을 알렸지만 승용차 운전자는 차를 빼는 대신 사고 상황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개인 연락처와 사건 처리를 요구했습니다.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고 교통 자원봉사자가 와서 차를 빼라고 말하자 구급차 기사가 직접 승용차를 앞으로 뺀 뒤 자신의 운전면허증을 주고 병원으로 출발했습니다. 이 때 걸린 시간은 블랙박스 기준으로 3분 정도였습니다.

구급차엔 뇌병변 어린이가 타고 있었습니다. 간질 증세로 입원했다 퇴원하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산소 수치가 한계치까지 떨어지면서 위급해졌고, 구급차 안의 간호사가 병원으로 급히 가야 한다며 사이렌을 울릴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런 경우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6분 정도라고 합니다. 소중한 골든타임의 절반 정도를 길에서 시비를 가리다 허비한 셈이 됐습니다.

이 사건이 보도된 뒤 네티즌은 물론 인터뷰에 응한 일반 운전자들도 승용차 운전자의 행태에 분노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취재팀은 질문을 조금 구체적으로 바꿔서 다시 물어봤습니다. 

"그게 119 구급차가 아니라 사설 구급차였대요."

그러자 대답이 바뀌었습니다.

김 모씨(회사원)
"그 응급차가 정말 환자를 태우고 움직였을까? 한번쯤 생각해봤겠죠."

배 모씨(택시기사)
"딱 보면 알거든, 아 지금 장난치는구나. 바쁘지도 않으면서 환자도 없는데 그런 거 많단 말이죠. 우리는 솔직히 119는 잘 비켜주죠. 그런데 이런 사설차나 병원 차는 솔직히 신뢰가 안 가지."

그렇습니다. '민간 사설 구급차'였던 게 문제였던 겁니다. 실제 어렵게 통화가 된 사고 승용차 운전자의 부인은 이렇게 하소연했습니다.

"그 구급차는 사설이었어요. 이 차가 차라리 119 구급차였으면 남편이 사진 같은 거 찍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방송 나가기 전날 밤에 남편이 그러더라고요. 과연 진짜 사람이 타고 있었을까?"

그러면서 방송을 보고난 뒤 후회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그 차 안에 환자가 타고 있었는지 정말 몰랐어요. 알았다면 그렇게 3분이라는 시간도 지체하지 않고 보내드렸을 겁니다. 오해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정말로..."

 '사이렌' 울리는 사설구급차도 '구급차'

사설 구급차를 따라가보니 골프장으로 간다더라, 또는 연예인이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사설 구급차를 이용했다더라...이런 과거의 잘못이 지금까지도 많은 시민들에게 '불신'의 이유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설 구급차도 엄연히 '구급차'입니다.

구급차 이용 건수는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19 구급차는 1,250대에 불과합니다. 119가 아닌 병원이나 복지시설, 민간이송업체의 구급차는 4,200대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모든 구급차가 응급환자를 태우는 업무를 맡고 있습니다. 119는 물론 사설 구급차에도 골든타임이 분명 있습니다.

도로교통법상 119나 사설구급차나 똑같은 지위를 인정받습니다. 사설 구급차를 포함한 모든 구급자동차에 대해 일반 운전자는 양보해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지키지 않으면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나 범칙금을 내야 합니다.

구급차 운전기사도 사고가 나면 '일반 운전자'

그런데 이런 '길터주기 법' 이른바 '모세의 기적법'의 실효성에 대해 실제 구급차 운전자들은 현실에선 유명무실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길을 터주지 않은 사실, 특히 고의성을 입증할 책임이 구급차 기사에게 있는데 이게 너무 모호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단 구급이송 업무가 끝나면 유야무야... 사고 안 난 게 천만 다행이라며 매듭짓기 일쑤라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관련법이 만들어지고 3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고의성이 인정돼 과태료가 부과된 것은 109건에 불과합니다. 과태료 금액도 1건당 평균 4만 원에 불과합니다. 구급차 운전자를 불안하게 하는 것은 양보해주지 않는 운전자 뿐 아닙니다. 일단 사고가 나면 '일반 교통사고 피의자'가 된다는 점입니다. 신호위반이나 차선위반은 알아서 잘 해야 합니다. 긴급 상황에서는 다 봐줍니다. 그러나 일단 사고가 나면 일반 운전자와 똑같이 경찰 조사를 받고 보험 처리나 합의를 해야 하고, 벌점도 먹어야 합니다. '운전의 달인'이 돼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번 사건에서도 승용차를 들이받은 구급차 기사는 경찰 조사를 받았습니다. 보험으로 승용차에 배상 처리를 해주기로 했고, 벌점 15을 부과받았고, 범칙금 통지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뉴스토리_ 구급차

구급차와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가장 궁금한 게 '이게 내 상황이었으면 어떻게 했어야 하나'라는 점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선 교통사고 전문인 한문철 변호사에게 의견을 들었습니다.

"사설 구급차도 앰뷸런스입니다. 구급차는 구급차입니다. 급한 상황에서는 사설이든 119든 병원 구급차든 똑같습니다. 이런 차와 사고가 나면 명함 받고 차 사진 찍어두면 됩니다. 명함 있겠다 차 번호 있겠다 운전자 얼굴 있겠다...그거 못 찾겠어요? 명함 받고 핸드폰 번호 모르더라도 그 사무실로 연락하면 되죠. 만약 아니라면 경찰에게 수배하면 되고, 가짜 명함이면 뺑소니잖아요."

형사적으로 앞차는 별로 잘못한 게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 변호사는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민사적으로는 다를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사실 이번에 앞차를 처벌할 수 있는 근거는 없는 것 같아요. 일부러 막은 건 아닌 것으로 보이니까요. 잘못한 구급차가 보험처리 하고 가라, 이러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겁니다. 하지만 민사적으로는 다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구급차가 가짜일 수 있다고 막아선 것은 그 나름대로 합당한 이유로 보이지만, 만약 그것 때문에 아이가 병원에 빨리 못가서 안 좋은 일이 생겼다면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사망하거나 했다면 과실률이 20~30%는 있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1월 광주지방법원에서 이번과 비슷한 사고에 대해 의미있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경미한 접촉사고를 내고도 뒷처리를 하지 않고 그대로 병원으로 간 구급차 기사에 대해 '뺑소니 무죄'판결이 나온 겁니다. 법원은 일반차량 운전자의 부상이 경미한 것으로 보이고, 구급차에 위급한 환자가 타고 있었다면 '긴급피난'에 해당된다고 판결했습니다. 뺑소니는 뺑소니인데 죄는 없다는 것이죠.

한문철 변호사는 이 판결을 예로 들며 이번 사건에서도 사설 구급차 기사가 실랑이를 벌이는 대신, 앞 차에 탄 사람들이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 확인했다면 그대로 병원으로 달려 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응급차에 탈 수 있다...'신뢰 회복해야'

이번 취재를 통해 사설 구급차 기사와 119 구급차 기사 모두 공통으로 한 말이 있습니다. 누구나 응급차를 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나 가족이 타고 있다고 생각하면 과연 길을 비켜주지 않을 수 있을까라는 말이었습니다.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사설 구급차'가 일탈을 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극소수입니다. 대부분의 사설 구급차들은 응급환자의 '골든타임'을 지켜주기 위해 운전자 개인의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고 있습니다.

일단 이들을 믿어줘야 합니다. 설사 99%가 거짓이라도, 진짜 환자가 탔을 가능성이 1%밖에 안 되더라도 소중한 생명을 지켜주기 위해서 몇 초, 몇 미터 정도...비켜줄 수 없을까요. 거짓 응급차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도 좋고, 응급차에 비켜주지 않은 차량을 엄격히 단속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시급한 것은 시민들의 불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고에서 가장 애를 태웠던 아기 엄마의 한마디를 전해드립니다. (이 말을 하면서 이 엄마는 눈물을 참지 못했습니다. 한숨도 몇번이나 쉬었는지 모릅니다)

"속는 셈치고 비켜주시면 한 생명, 두 생명, 아니 1백 생명 다 살릴 수 있습니다. 부디 자신의 이득만 생각하지 마시고, 어려운 사람 한발짝 물러나서 도와준다 생각하면 조금 더 나눔의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뉴스토리 다시보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