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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전자발찌 부착했는데…사라진 의문의 3시간

교정당국이 놓친 3시간 틈 타 성폭행 시도

[취재파일] 전자발찌 부착했는데…사라진 의문의 3시간
 지난 20일 밤 자정쯤, 으슥한 골목길에 나타난 한 남성이 누군가를 바삐 쫓아갑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남성 옆을 지나던 한 중국집 배달원이 이를 이상히 여깁니다. 잠시 뒤 어떤 여성의 비명 소리가 들려오고, 중국집 배달원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급히 달려갑니다. 아까 수상했던 그 남성과 함께 있는 여성을 보고 ‘아는 사이냐’고 묻자, 여성은 모르는 사이라고, 살려달라고 말합니다. 배달원은 남성을 제압해 경찰에 신고합니다. 남성은 체포됐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남성은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남성은 이미 2차례 성폭행을 저질러 12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성범죄 전력자였습니다. 그날 밤 1차례 성추행을 저지르고, 다시 다른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을 시도하다 덜미를 잡힌 겁니다. 경찰에 붙잡힌 41살 이모씨는 구속됐습니다. 
전자발찌 도주 성추
그런데 궁금증이 남았습니다. 어떻게 전자발찌를 부착하고도 또 다시 범행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경찰 조사에서 이씨는 원래 전자발찌를 부착하면 외출 시간이 제한돼 밤 11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집 밖에 나갈 수 없는데, 사건이 발생한 20일 이전에 외출 시간 연장을 신청했다고 말했습니다. 이 신청이 받아들여져 이씨는 새벽 2시까지 외출이 가능해졌다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외출 시간 연장은 어떤 경우에 허가 받을 수 있는 건지, 이씨의 진술이 사실인지 취재해보기로 했습니다.

이씨는 집 근처 주유소에서 일하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주유소 업무 특성상 야간 근무를 해야 해서 이씨는 범행 발생 8일 전인 지난 12일 외출이 가능한 시간을 밤 11시에서 새벽 2시로 연장해달라고 요청했고, 서울 남부보호관찰소는 이씨의 주유소 근무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허락해줬습니다. 이씨는 보호관찰관에게 오후 4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야간근무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외출 시간 연장은 일주일 단위로 하기 때문에 이씨는 범행 하루 전인 지난 19일 다시 2차 연장 신청을 했고, 남부보호관찰소는 2번째 신청도 받아들여줬습니다. 성범죄 전력자도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생업에 관련된 사안에 대해서는 제한적으로 외출 시간을 연장해준다는 게 법무부와 보호관찰소 측의 설명이었습니다.
그래픽_배달원성폭행
그렇게 취재를 마치려고 하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씨가 범행 당일 경찰에 체포된 시간은 11시 50분쯤이었습니다. 그럼 범행은 11시가 좀 지나서 발생했다는 얘긴데, 새벽 1시까지 근무한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 시간에 주유소가 아닌 골목길에 있었을까 하는 점이었습니다. 범행 장소도 이씨의 주거지나 주유소 근처가 아니었습니다. 이씨가 근무한 주유소를 찾아내 확인한 결과, 20일은 이씨가 쉬는 날이었습니다.

주유소 사장은 취재진에게 “이씨가 매주 화요일에 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씨가 범행 시간에 주유소가 아닌 곳에 있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의문점이 생겼습니다. 야간 근무 때문에 새벽 2시까지 외출 시간을 연장했는데, 이게 ‘근무일이 아닌 쉬는 날에도 적용이 될까?’하는 부분이었습니다.

남부보호관찰소 측에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자발찌 대상자가 외출시간을 연장한 경우, 쉬는 날에도 적용이 되는지를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변은 ‘불가능하다’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씨는 11시가 넘은 시간에 집 밖에 있었던 걸까요? 보호관찰소 측은 이씨가 쉬는 날인지 몰랐다고 답했습니다. 외출 시간 연장 신청을 일주일 단위로 하면서, 매주 쉬는 날을 보호관찰관에게 이씨 본인이 알려줘야 하는데, 20일이 쉬는 날이라고 안 알려줘서 몰랐다는 겁니다. 그럼 주유소 측에도 확인을 해야 하는 게 맞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의 말만 믿고, 근무일을 확인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남부보호관찰소 측은 전자발찌를 착용한 사람은 취업이 어렵기 때문에 주유소에서 이씨의 성범죄 전력을 모르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주유소 측에 이씨의 근무일과 쉬는 날을 직접 물어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결국 성범죄 전력자가 마음먹고 쉬는 날을 숨기면 연장된 3시간 동안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밤늦게 마음껏 외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보호관찰소는 본인들의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외출시간을 연장했구나..’라고 이해하고 말았다면 교정당국의 잘못을 확인하지 못할 뻔한  취재였습니다. 계속해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보호관찰소의 관리 허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이유에 대해서도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남부보호관찰소는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이씨를 담당하고 있는 보호관찰관의 경우 이씨를 포함해 모두 11명의 전자발찌 부착 대상자를 관리하고 있어 한계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전자발찌를 채워만 놓고, 제대로 관리할 수 없는 현실인 겁니다. 인적, 제도적 보완이 없다면 앞으로도 이씨처럼 교정당국이 놓친 3시간을 악용할 사례가 되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거창하게 시작해놓고, 흐지부지 사라지는 제도로 남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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