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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보험사기 표적, 미수선 수리비가 뭐길래?

[취재파일] 보험사기 표적, 미수선 수리비가 뭐길래?
서울지방경찰청이 보험사기를 적발했다. 외제차로 교통사고를 위장해 수억 원의 보험금을 부당하게 받아낸 운전자와 정비 상담사 등이다. 최근 빈발하는 유형의 사기다. 다만, 수입차 공식 딜러의 정비 상담사가 돈을 받고 허위 견적서를 발행한 혐의로 적발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일부러 땅을 파 내고 외제차 바퀴를 빠뜨려 사고를 위장한 수법은 실소마저 자아낸다. 경찰은 이들이 미수선 수리비를 노린 것으로 보고 있다.

미수선 수리비는 자동차 사고가 났을 때 차량에 대한 수리를 하지 않고 보험회사에서 예상되는 수리비를 현금으로 직접 받는 것을 말한다. 현금으로 보험금을 받으면 저렴한 중고부품으로 대충 수리하고 차액을 챙길 수도 있고, 수리를 하지 않고 있다가 다른 사고를 유발하고 보험금을 이중으로 청구할 수도 있다. 보험사기에 악용되기 쉬운 제도인 셈이다.

외제차의 평균 미수선 수리비는 240만 1천 원이다. 국산차의 평균 미수선 수리비 61만 7천 원의 3.9배에 달한다. 실제 차를 고쳤을 때, 외제차의 평균 수리비는 276만 1천원이다. 국산차의 평균 수리비 93만 9천 원의 2.9배다. 3.9배와 2.9배. 즉 외제차의 부품 값과 작업비용이 국산차보다 더 비싸다는 점을 감안해도 외제차의 미수선 수리비가 과다하게 지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난 2009년 전체 국산차의 미수선 수리비는 3,657억 원. 2013년에는 5,445억 원으로 늘었다. 연평균 10.5%의 증가율이다. 이에 비해 전체 외제차의 미수선 수리비는 같은 기간 726억 원에서 2,016억 원으로 증가했다. 연평균 29.1%의 증가율로, 국산차보다 3배 가까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외제차의 미수선 수리비로 인한 보험금 누수가 가속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그래픽_자동차보험

외제차는 아무리 작은 고장이나 파손이라도, 일단 공식 딜러의 정비공장에 들어가면 수리기간은 부지하세월이다. 2013년 통계에 따르면 국산차의 평균 수리일 수는 4.9일인데 비해 외제차의 평균 수리일 수는 8.8일로 나흘 가까이 길다. 희귀한 차종, 부품일수록 수리기간은 더 길어진다. 수리기간 동안 외제차의 차주는 렌터카를 이용할 것이다. 렌터카 이용비용은 보험회사 부담이다. 주지하듯 중형 외제차 하루 렌트비용은 30~45만 원선. 동급 국산차의 2~3배 수준이다. 일부 렌터카 업체는 이중 요금제를 운영하기도 한다. 일반 렌트요금보다 보험사고 차량에 대한 렌트요금을 비싸게 청구하는 것이다. 때문에 수리비용보다 수리기간 동안의 렌트비용이 더 많이 나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차량 수리기간 중에 이용한 렌터카 비용이 차량 수리비를 초과하는 사례의 통계도 있다. 국산차는 2009년 4천 건에서 2013년 1만 2천 건으로 약 3배 증가했다. 외제차는 같은 기간 1만 1천 건에서 3만 5천 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절대 건수도 차량 대수가 훨씬 많은 국산차의 3배에 가깝다. 배꼽이 배보다 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외제차의 수리비는 검증하기 어렵다. 부품 값이나 마진, 작업비용 모두 불투명하다. 이 때 사고 당한 운전자가 미수선 수리비를 요구한다면? 보험회사는 기로에 선다. 검증하기 어려운 수리비에다 가늠하기 어려운 수리기간 동안, 그래서 수리비보다 더 나올 렌트비용까지 감수할 지, 아니면 대충 미수선 수리비, 즉 현금을 주고 합의에 응할 지를. 많은 경우 후자를 선택했고, 보험사기의 표적이 됐다. 그 결과 위의 숫자가 보여주듯 외제차 미수선 수리비는 빠르게 증가했다.

그러면 미수선 수리비를 없애면 되지 않는가? 불가능하다. 손해배상의 방법에는 원상회복주의와 금전배상주의가 있는데 우리 민법은 금전배상을 원칙으로 한다. 사고 당한 보험 가입자가 현금으로 달라고 하면 안 줄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최근 들어 일부 보험회사는 빈번하게 미수선 수리비를 청구하는 사람에게는 현금 지급을 거부하기도 한다. 정비업소 현장 확인을 의무화하기도 했다. 미수선 수리비를 지급할 때 사고차량의 파손 부위를 사진으로 보관하고 다른 보험회사와 공유하는 체계도 추진되고 있다. 금융당국도 보험업계에 미수선 수리비의 지급 기준을 마련하고 철저히 검증할 것을 지도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기 사건에서 보듯 한계는 여전하다.   

선량한 자동차 보험 가입자가 보험 사기범의 주머니를 채워주는 현실, 국산차 운전자의 보험료로 외제차 운전자의 수리비를 보전해주는 현실, 오랜 병폐인데도 과감한 제도 개선은 보이지 않는다. 관계부처가 얽혀 있고, 이해 집단이 첨예하게 맞서기 때문이다. 누구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그 사이에도 선량한 국산차 운전자는 자신의 보험료로 남의 주머니를 계속 채워주고 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을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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