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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미스 레바논,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취재파일] 미스 레바논,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이 사진 보실까요. 젊은 여성 4명이 밝은 표정으로 웃고 있습니다. 오는 21일부터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미스 유니버스대회 참가자들입니다. 왼쪽에서 두번째 여성을 자세히 보니, 웃고는 있지만 약간 억지웃음처럼 보이는데요, 후폭풍을 예상한 걸까요, 예상대로(?) 이 사진 한장이 정치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바로 왼쪽에 있는 두 여성 때문이죠.

맨 왼쪽에 있는 여성이 미스 이스라엘 '도론 마타론', 바로 옆이 미스 레바논 '샐리 그리그'입니다. 미스 이스라엘이 이 사진을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이게 레바논 국민들을 분노케 했습니다. 레바논 방송사인 알 자디드는 레바논인이 이스라엘인과 정겹게 사진을 찍었다며 비난을 쏟아냈습니다. 알 자디드는 그러면서 독서가 취미라는 그녀가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원수 지간'이라는 건 책에서 못 본거냐며 비꼬았습니다.

분노의 화살은 물론 미스 레바논 그리그에게도 쏟아졌고, 그리그는 페이스북에 바로 해명을 올렸습니다. 요지는 마타론과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고, 사진도 찍고 싶지 않아 잘 피해다니고 있었는데, 자신이 미스 재팬, 미스 슬로베니아와 사진을 찍으려는 순간, 갑자기 마탈론이 끼어들어 사진을 찍었고, SNS에 올려버렸다는 겁니다. 그리그는 억울하다며, 레바논 국민들에게 계속 자신을 지지해달라며 양해를 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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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타론은 씁쓸해 했습니다. "놀라울 건 없지만 슬프다"고 말했습니다. "3주간의 대회만이라도 적대감을 잊고, 원수로 지내온 이웃 국가를 포함해 세계 곳곳의 여성들을 만날 수 있길 원했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18세가 넘으면 여자도 2년간 의무적으로 군대에 다녀와야 하는데, 레바논 언론들은 미스 이스라엘이 '군대 다녀온 여자'라는 점도 부각하고 있습니다.

정치와 상관 없는 행사에서까지 으르렁거릴만큼 레바논과 이스라엘이 원수가 된 이유는 뭘까요?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의 전쟁에서 시작된 이들의 갈등은 레바논에 근거지를 둔 무슬림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2006년 이스라엘 병사 2명을 납치한 것을 계기로 불이 붙었습니다. 두 달간의 전쟁으로 레바논인 약 1천200명, 이스라엘인 약 160명이 숨졌습니다. 2009년엔 레바논에서 이스라엘로 로켓탄이 발사되고 이후에도 레바논과 이스라엘군이 국경지대에서 교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현재도 사실상 준전시 상태인 겁니다. 그런데 나라를 대표한 여성 2명이 현 상황과는 전혀 다르게 서로 웃고 있으니 사진 한장만 놓고보면 국민들이 보면 화가 치미는 겁니다. 

미스 유니버스대회에서 이런 일이 생긴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2002년엔 미스 레바논인 크리스티나 사와야가 참가를 취소한 적이 있는데, 미스 이스라엘과 같은 무대에 서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오는 25일 미국의 한 방송사에서 이번 대회를 방송하기로 예정됐는데, 이들의 표정이 어떨지 사뭇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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