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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동갑 '갑' 앞에 '쩔쩔'…대형마트 '갑의 횡포'

<앵커>

한 중소기업이 물건을 납품하던 홈플러스를 공정위에 제소했습니다. 파견사원 강요에 강매까지, 이른바 갑의 횡포에 시달리며 수십억 원을 손해 봤지만 항의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취재진이 입수한 갑과 을의 통화 녹취에는 이런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김종원 기자의 생생 리포트입니다.

<기자>

신발회사의 여직원이 누군가에게 연신 사과를 해댑니다.

[예, 죄송합니다.]

임금과 퇴직금을 못 받았다는 항의 전화가 빗발치는 겁니다.

그런데 이 회사 사장에게 온 문자를 보면 뭔가 이상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모르는 거네요? (저도 모르는 거죠.)]  

처음 본다는 사람이, 그것도 홈플러스에서 일을 했다는 사람이, 왜 신발회사 사장에게 월급을 달라고 항의하는 걸까.

대형마트 매장에서 대형마트 유니폼을 입고 일을 하지만, 사실은 이런 신발회사 같은 납품업체가 임금을 대는 파견사원입니다.

정부는 대형마트가 납품업체에게 이런 파견사원을 쓰도록 강요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지만, 신발회사 사장은 홈플러스 측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파견사원 100명분의 임금을 떠맡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합니다.

[전진우/홈플러스 납품 신발업체 사장 : 전 얼굴도 몰라요. (홈플러스가) 하라 그래서 한 거예요. 저는 이런 계약서(파견사원 합의서) 체결한 적도 없고. (홈플러스) 매장에 가서 일을 하는 거고 봉급은 우리더러 주라는 거죠. 파견이 아니라 강제죠.]

이에 대해 홈플러스 측은 파견사원 고용은 납품업체의 의사를 반영한 결정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홈플러스 관계자 : 파견사원 같은 경우에는 업체에서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파견사원을 넣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런가 하면 계약 내용을 어기고 반품을 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했다고 신발회사 사장은 주장합니다.

신발 납품 계약서를 보면 을, 그러니까 이 신발회사의 물건을 임의로 반품할 수 없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홈플러스는 2007년부터 3년간 팔다 남은 신발을 15억 원어치나 반품처리 했습니다.

[(반품된 신발은) 사이즈도 안 맞고 색깔도 막 변하지 않습니까, 거기 형광등 밑에 있고 그러면. 이거를 (계약을 어기고) 무조건 저희한테 반품을 받으라는 거예요. 거절을 하면, 압박이 오는 거예요.]  

이에 대해서도 홈플러스 측은 반품 역시 업체 사장의 뜻이었다고 해명합니다.

[홈플러스 관계자 : 서로가 이야기가 된 상황에서 원하면 진행을 하시는 것이고, 원하지 않으면 진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양쪽의 통화 내용을 들어보면 갑과 을의 지위가 분명히 드러납니다.

[신발업체 사장(50세) : 전화 좀 드리라 해서 했습니다.]

[홈플러스 직원(38세) : 사장님은 사장님 편할 때만 전화하세요? (네?) 그러니까 사장님은 시간 될 때만 전화하시는 것 같다고요. (시간 될 때만 전화하는 게 무슨…) 사장님 시간 되실 때만 전화하시고, 시간 안 되면 전화 안 받고. (전화 안 받은 적 없는데요. 아이,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알겠습니다.(딸깍)]

전화를 제때 하지 않았다고 꾸짖듯 얘기하는 남성은 홈플러스 측 구매 담당자입니다.

[(통화한 직원이) 나랑 띠동갑이거든. 무서워서 통화를 못 해요. 전화 한 번 안 받지 않습니까? 난리가 나는 거예요, 난리가. 저도 화장실 좀 갈 수 있고 전화기 잠깐 놓고 나갔다 올 수 있잖아요.]

또 다른 통화 내용입니다.

[홈플러스 직원 : 지금 (납품) 업체들 모여서 '권유 판매' 좀 하려고 하는데, 이게 찬스인 거 같아. 오늘 내일 매출이 많이 나와야 되거든. 그러니까 내가 좀 몇 개 (물품을) 사라고 그럴거예요. 와서 한 뭐 50만 원, 100만 원어치 사주고 열심히 해보겠다고 (우리 직원들한테) 막 인사도 하고 그러면 좋을 거 같아요.]

[내가 '바이어(구매 담당자)한테 아부 떨 수 있는 찬스다', 그 뜻이에요. (홈플러스가 종종) 업체들을 불러서 '권유판매'라는 걸 하는데, 자기네 제품을 사서 매출을 좀 올려라 (라는 뜻이죠).]

강매를 오히려 잘 보일 수 있는 찬스라고 하는 마트 측, 명절 때면 마트 측의 상품권을 이런 식으로 수천만 원어치나 강매했다고 사장은 주장합니다.

홈플러스 측은 일부 직원의 실수로 야기된 일이며, 그래서 공정위 조정원의 중재로 지난해 8월 납품업체에 현금 4억 원을 포함해 총 13억 원을 보상해주기로 합의가 끝난 사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제보를 해 놓고도, 오늘 취재를 한다면서도 나는 겁이 나는 게 이제 끝이다. 이제 끝이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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