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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쓰나미'속 억울한 '어린 주검'…어른에게 책임 묻는다

[월드리포트] '쓰나미'속 억울한 '어린 주검'…어른에게 책임 묻는다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의 인명 피해는 모두 1만 8천483명입니다. 이 숫자를 통해 인명피해 규모를 한눈에 알 수 있지만, 숫자란 게 본디 사건을 너무 단순화시켜 버리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많은 주검의 과정이나 사연을 일일이 말해주진 못합니다.

모든 주검에는 사연이 있다고 했습니다. 비록 '천재(天災)'로 세상과 작별했다고 하더라도, 동일본대지진에는 1만 8천483가지의 주검과 관련된 사연이 있습니다. 이 사연 가운데는 '잘하면 살 수도 있었는데'라며 하늘을 두 번 원망하게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 '살 수도 있었던 죽음'이 어린 자식에 관한 것이라면 부모들은 그 구체성을 절대 잊지 못합니다.

최근 일본 사법부에선 1만 8천483명의 주검 가운데, 2건의 '사건'에 대해 어른들이 잘했더라면 아이들이 목숨을 건졌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천재 속 죽음'의 재구성을 통해 부모들의 한을 달래준 겁니다.

● 히요리유치원의 비극…어린이 5명 사망의 진실

대지진 발생 15분 뒤, 미야기현 이시노마키시의 히요리유치원은 원생 12명을 유치원 차량에 태웠습니다. 원생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아이들 집을 돌며 7명을 부모 품으로 돌려보냈을 때, 쓰나미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차량은 다시 유치원으로 향했습니다. 유치원이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어서 그곳이 안전지대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차량은 귀환 도중 쓰나미에 휩쓸렸습니다. 사흘 뒤 차량은 불에 탄 채로 발견됐고, 차에 타고 있던 어린이 5명은 꼭 껴안은 시신으로 발견됐습니다. 탑승했던 유치원 여선생님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차량 운전기사만 홀로 살아서 유치원으로 돌아왔습니다. 운전기사는 잠시 정신을 잃었다가 차량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습니다.

부모들은 어린 자식의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운전사의 나 홀로 생존도, 운전사 귀환 후 유치원 측이 즉각 구조활동에 나서지 않은 이유도 석연치 않았습니다. 유치원 측은 부모들에게 차량이 휩쓸렸다는 소식도 전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이 숨진 장소에서 밤 늦게까지 도와달라는 소리가 들렸다는 근처 주민의 증언도 나왔습니다. 쓰나미에 휩쓸려 차량에서 불이 나기까지 10시간의 여유가 있었던 겁니다.

부모들은 유치원 측의 대처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왜 구조활동에 나서지 않았는지, 왜 유치원에 아이들을 그대로 보호하고 있지 않았는지 두 가지였습니다. 고지대에 있던 유치원은 아무런 쓰나미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원장 측은 "쓰나미가 발생할 지 예상하지 못했다. 아이들이 추워했기 때문에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했다. 지진 발생 후 경황이 없어서 구조활동은…"이라며 말을 얼버무렸습니다.

부모들은 진실을 규명하지 않으면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2011년 8월에 2억 6천여만 엔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법원은 재해 발생 시 대처 요령을 담은 유치원 내부 매뉴얼에 주목했습니다. '보호자가 올 때까지 아이들을 유치원 내부에 보호하고 있는다'라고 적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매뉴얼을 직원들에게 배포하거나 교육하지 않고 그냥 원장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1심 법원은 배상을 명령했습니다. 소송은 3년 3개월간 이어지다 지난 달 화해로 끝났습니다. 유치원 측은 6천여만 엔을 배상하고, 진심으로 유가족들에게 사죄하기로 했습니다.

● 자동차 학교 26명의 주검

바닷가에서 7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미야기현 죠반모토야마 자동차 학교는 지진 발생 45분 뒤, 교습생 23명과 아르바이트생 1명 등 모두 24명을 4대의 차량에 태웠습니다. 교습생과 아르바이트생은 모두 방학을 맞은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차량이 학교를 나서자마자 쓰나미가 덮쳤습니다. 버스 4대에 탄 전원이 목숨을 잃었고, 걸어서 대피하던 학생 2명도 숨졌습니다. 지진 발생 후 45분간 머뭇거린 점이 치명타였습니다.

유가족은 학교 측을 상대로 2011년 10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학교 측은 재판 과정에서 불가항력이었다고 항변했습니다. 처음 6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예보됐고, 방파제가 6.2미터 높이였기 때문에 안전할 것으로 생각했다는 겁니다. 또, 학교가 있던 곳이 평소 쓰나미 안전지대로 분류된 지역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학교 측의 이런 주장을 인정하면서도, 학교 측의 배상을 이달 명령했습니다. 지진 발생 직후 소방차가 돌며 신속한 대피를 권유하는 방송을 했고, 학교 직원들이 그 방송을 들었다는 사실을 중시했습니다. '빨리 대피시키지 않은 점에서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고, 교습생의 죽음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결했습니다. 배상액은 유가족의 요구 19억 7천만 엔을 대부분 인정해, 19억 1천만 엔을 지급하도록 했습니다.       

비록 소송에서는 이겼지만, 살 수 있었던 주검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아닙니다. 유가족들은 한결같이 '어린 자식이 죽은 시간에 자신의 인생도 멈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천재(天災) 속 주검'에서 '인재(人災)'를 가려내는 작업은 후세를 위해 유의미합니다.

일본 법원은 '히요리유치원'의 경우 2심에서 화해가 성립됐지만, 이례적으로 '전문'이라는 것을 붙여 화해 결과를 언론에 설명했습니다. 이 '전문'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습니다. "이 중요한 화해 결과가 비바람에 없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반드시 기억의 장에 남겨 후세의 방재대책에 되살아나도록 해야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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