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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도 독일의 일부분'…포용세력이 반이슬람 압도

주류 정치권 지지 아래 이슬람 등 다양성, 관용 주장 득세

프랑스 파리 테러 이후 독일에서 처음 열린 '유럽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들'(PEGIDA·페기다) 주도의 반(反)이슬람 집회는 인종주의 배척과 다민족 공존을 강조하는 반페기다 세력의 결집에 압도당했다.

12일(현지시간)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과 제1공영 ARD 방송 등에 따르면 이날 저녁에도 어김없이 페기다가 앞장서 마련한 월요집회와 이에 맞서는 집회가 수도 베를린뿐 아니라 페기다 근거지인 드레스덴, 뮌헨, 뒤셀도르프, 하노버 등 독일 곳곳에서 열렸다.

이날 저녁 현재 베를린에서 브란덴부르크문을 기점으로 연방의회 의사당 등지에 마련된 페기다의 반이슬람 집회 참가자는 애초 600명을 예상했으나, 300명이 모이는 데 그쳤다.

반면 반페기다 집회에는 시민 4천명이 참가했다.

베를린에서는 앞서 지난 5일 처음 같은 양상의 양측 집회가 각각 마련됐으나 역시나 페기다 집회 참가자는 300명에 불과했던 데 비해 반페기다 집회 참가 인원은 5천명으로 압도적인 세력 우위를 보였다.

월요시위의 본고장인 라이프치히에서도 이날 처음으로 페기다 집회가 열렸고, 반페기다 동조자들이 이를 규탄하며 맞섰다.

라이프치히는 1989년 당시 동독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던 월요시위의 중심부였다. 페기다가 지난해 10월 20일부터 시작한 월요시위는 이를 흉내 낸 것이다.

이날 라이프치히의 집회 대결도 반페기다 세력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반페기다의 깃발 아래 모인 시민은 7천300명을 헤아렸지만, 페기다 쪽은 50명도 안 되는 규모였다.

옛 동독 민주화 운동의 산실이자 월요기도의 아지트였던 니콜라이 교회에는 시민 2천500명가량이 들러 평화를 기원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뮌헨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반페기다 지지 집회에 가세한 시민 2만명이 300명의 페기다 지지자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뮌헨의 반페기다 시민들은 "뮌헨은 다양하다"라거나 "우리는 세계시민이다"라며 인종적 편견을 버리고 용광로같은 다양성의 독일을 만들자는 취지를 강조했다.

디터 라이터 뮌헨시장은 집회에서 "우리는 모든 형태의 인종주의와 극우 폭력에 맞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노버도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반페기다 집회 참가를 희망한 이들은 1만명 이상이었으나, 페기다 쪽은 많아야 1천명 가량이었다.

이처럼 소셜미디어에서도 페기다에 반대한다는 글과 트윗이 잇따르며 사이버 공간에서마저 반페기다의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이날 페기다의 중심 무대인 드레스덴에서는 페기다 세력이 애초 파리 테러를 추모하는 형태로 집회를 계획했으나, 테러를 정치적으로 악용한다는 각계의 비난이 쏟아지자 입지가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드레스덴은 지난 5일 페기다 집회에 1만8천 명이 모여 페기다의 득세에 대한 반대 세력의 우려를 자아낸 곳이다. 그런 걱정은 지난 10일 3만5천 명의 반페기다 시민의 결집으로 이어졌다.

이 도시는 작년 10월 20일 처음으로 월요시위를 시작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유력 주간지 슈피겔은 최근 과격 이슬람 세력을 공격해온 훌리건 준동의 영향, 보수 정치권의 영향력에 비례한 일부 극우 기류, 신나치 활동의 자극, 옛 동독 지역이 가진 소외감이 겹쳐 드레스덴이 반이슬람의 근거지가 됐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드레스덴의 페기다 운동은 다른 도시로도 어느 정도 확산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독일 정치권과 주류 사회의 걱정을 배가시켰다.

그러자 여러 주정부와 도시 집권세력의 다수를 점하는 사회민주당(SPD) 등이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더불어 반이슬람 세력을 앞장서 규탄하며 반페기다 시민들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면서 상황이 크게 달라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5일 있었던 월요시위 경우만 보더라도 거리에 나온 시민의 숫자로 보면 페기다는 1만9천여 명이었지만, 반페기다는 4만8천여 명이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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