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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납득되지 않는 국민 건강 체조 선정

[취재파일] 납득되지 않는 국민 건강 체조 선정
 국민 건강 체조 선정을 둘러싼 잡음으로 체육계가 시끄럽습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지난해 1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새로 만든 건강 체조인 이른바 ‘늘품 체조’ 시연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정행 대한체육회장, 서상기 국민생활체육회장,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에 ‘도마의 신’ 양학선 선수,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선수까지 동석했습니다. 한국 스포츠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사가 모두 나온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3분 동안 ‘늘품 체조’의 각 동작을 일일이 따라 배운 뒤 “100세 시대를 맞아서 활기차고 건강한 노후생활을 보내는 게 중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며 정성껏 만든 '늘품 체조'가 확산되도록 동영상이나 문화센터, 학교를 통해 많이 확산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습니다. 이때부터 ‘늘품 체조’는 모든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사실상 ‘국가 공인 체조’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을 억울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일명 ‘코리아 체조’를 만든 주역들이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초부터 새로운 건강 체조 개발에 나섰습니다. 정부 산하 기관인 한국스포츠개발원(전 한국체육과학연구원)에 소속된 체육학 박사, 운동발달전문가, 운동생리학자, 운동역학전문가, 무용학자, 음악전문가, 사회학자, 교육부와 체육담당자, 현장 교사, 대학교수 등이 모두 동원된 국가적인 프로젝트였습니다. 한국을 대표한다는 의미에서 이름도 ‘코리아 체조’로 정했습니다. 국가 예산 2억원이 들어갔습니다. 체육학 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 토론회를 벌였고 태릉선수촌에서 첨단 장치로 심박수 및 에너지 소비량 측정, 근전도 검사 등 각종 실험을 거쳐 운동 역학적으로 거의 완벽한 동작을 개발했습니다. 그런 다음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직접 다니며 테스트까지 마쳤습니다.

1년 동안 엄청난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코리아 체조’는 결국 ‘늘품 체조’에 밀렸습니다. ‘코리아 체조’가 정부, 즉 문화체육관광부의 주도 아래 개발된 것인데도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정작 시범을 보인 체조는 ‘늘품 체조’이었기 때문입니다. ‘늘품 체조’는 1명의 피트니스 강사와 몇몇 안무가 등 민간인들이 만든 체조로 개발기간이 ‘코리아 체조’에 비해 훨씬 짧고 개발인력도 훨씬 적습니다. ‘코리아 체조’를 개발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쉽게 말해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격이 된 것입니다. 이들은 “권력 실세가 개입하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코리아 체조’와 관련된 한 사람은 개인 블로그에 “권력과 대한민국 사회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권력 실세가 구체적으로 누구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문체부보다 더 큰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 아니겠느냐?”는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코리아체조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들은 "권력 실세 개입은 완전히 소설"이라며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포츠개발원이 만든 ‘코리아 체조’가 어느 정도 완성됐을 때 중간 점검을 해보니 ‘Fun' 즉 재미가 없었다. 스트레칭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국군도수체조처럼 너무 딱딱하다. 아무리 운동 효과가 있으면 무엇 하나? 체조는 온 국민이 즐겁게 따라해야 한다. 그래서 또 다른 체조를 급히 만든 것이다. ‘늘품 체조‘는 에어로빅이 가미돼 빠르고 경쾌하다. 박근혜 대통령 앞에서 둘 중의 하나를 시연해야 하는데 TV 뉴스를 생각할 때 아무래도 흥겨운 ’늘품 체조‘를 선택한 것이다. 앞으로 ‘코리아 체조’는 학교를 통해, ‘늘품 체조’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각각 보급할 것이다.”  

문화체육부의 해명은 여러 가지 면에서 납득이 잘 되지 않습니다. 문체부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4개 빙상장 건설비 삭감 규모를 놓고 강원도와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문체부가 동계올림픽에는 그렇게 국민 혈세를 아끼려 하면서 건강 체조에는 왜 이중의 비용을 지불했는지 궁금합니다. ‘코리아 체조’에 2억원을 써놓고 또다시 ‘늘품 체조’ 개발에 상당한 금액을 썼기 때문입니다. 만약 ‘코리아 체조’가 정말 딱딱하고 재미가 없었다면 이를 수정 보완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문체부는 ‘코리아 체조’를 초중고 각 학교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재미있는 ‘늘품 체조’를 놔두고 재미없는 ‘코리아 체조’를 따라하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와 관련해 교육부 관계자는 SBS와 통화에서 “각 학교에 ‘코리아 체조’를 홍보하겠지만 선택여부는 전적으로 그 학교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학교들이 재미가 없다고 ‘코리아 체조’를 선택하지 않으면 쉽게 말해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문체부 스스로가 ‘늘품 체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한 것입니다. 문체부 관계자는 “급히 만들다 보니 음악과 동작이 잘 맞지 않는 점이 있다. 스포츠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늘품 체조’에는 미비한 점이 있다. 그래서 수정 보완할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지난해 11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은 정부 산하 기관이 오랜 연구 끝에 개발한 ‘코리아 체조’ 대신 단지 재미있다는 이유로 민간인이 급조하고 운동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늘품 체조’를 따라한 셈이 됐습니다. 이보다 더 황당한 것은 문체부가 ‘늘품 체조’의 보완을 ‘코리아 체조’를 개발한 한국스포츠개발원에 의뢰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병주고 약주는’ 격입니다. 상식적으로 봤을 때 ‘늘품 체조’에 허점이 있다면 이를 개발한 당사자에게 수정하도록 하는 게 맞습니다.
코리아체조
심혈을 기울여 ‘코리아 체조’를 만든 사람들은 허탈하고 억울한 심정이지만 속내를 쉽게 털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체부가 ‘갑’이고 자신들이 ‘을’이기 때문입니다. 공식적으로 의혹을 제기할 경우 예상되는 엄청난 보복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한국 스포츠 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은 직원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1년 전에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그런데도 영어 이름은 ‘KISS’(Korea Institute of Sports Science) 그대로입니다.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인 것입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의 명칭 변경 역시 문체부의 작품입니다. 박근혜 정부는 줄곧 ‘비정상의 정상화’를 주장해 왔습니다. 문체부가 지금 하는 일이 정상인지 자문자답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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