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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기획된 양비론…땅콩 회항 '1타 2피' 찌라시

[취재파일] 기획된 양비론…땅콩 회항 '1타 2피' 찌라시
대한항공 땅콩 회항 사태가 처음 보도된 지난해 12월 8일, 박창진 사무장은 국토교통부 조사를 받고 있었다. 당시 그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잘못이 없다는 진술을 하고 있었다. 이건 그가 사흘 뒤 폭로한 대로, 강요된 거짓 진술이었다.

여론의 관심이 폭증하던 이 나흘 동안,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선 사태 내막이 담긴 듯한 문건이 화제였다. 사태 초기, 이른바 '1타 2피' 찌라시가 급속히 유포되고 있었다. 12월 10일 유포된 해당 찌라시의 내용은 이렇다.
조현아 법원 출석

■ 대한항공 조 부사장 관련

- 조 부사장은 언론에 공개된 후 부사장실에서 2시간 동안 울었다고 함. 그 이유는 이전에도 여러 번 소리를 질렀는데 이번에만 이렇게 질타를 받아서 그렇다고함.
 
- 아울러 승무원과 객실을 조 부사장이 담당하고 있는데 조 부사장이 성질은 부리지만 승무원 위상과 복지 수준을 엄청나게 업그레이드 시켜 놓은 측면도 있어 승무원·객실 관련 부서는 이번 사건으로 조 부사장이 물러날 경우 기존의 위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함

- 대한항공 내에서는 1타 2피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고 함. 항공기에서 내린 사무장은 44세의 남자 미혼 사무장으로 집안도 좋다고 함. 하지만 이 사무장도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으며 평소에 운동을 좋아해서 자신의 근육 잡힌 거의 전라 사진을 공개해서 징계를 받아 한직에 있다가 한 달 전에 사무장으로 복귀를 했다고 함.
 
- 그래서 둘 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 입장에서는 1타 2피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다고 함.

 
대한항공 1타 2피
▲ '땅콩 회항' 사태 초기인 지난해 12월 8일부터 급속히 유포된 이른바 대한항공 '1타 2피' 찌라시


● 기획된 양비론…그들이 심으려던 두 가지 정보
박창진 사무장 캡쳐

해당 찌라시는 두 가지 새로운 정보를 담고 있다.

① 조현아 부사장은 승무원 복지 수준은 높였다.
② 박창진 사무장은 행실이 나빠서 평판이 안 좋다.

이 찌라시에 따르면, 조현아는 알고 보면 자기 일은 하는 사람이다. 조 전 부사장은 "이전에도 여러 번 소리를 질렀는데, 이번에만 질타"를 받는 '사적'인 문제는 있지만, "조 부사장이 물러날 경우 기존의 (승무원) 위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공적'인 책임감은 뛰어나다는 관점이다.

반면, 박 사무장에겐 정반대 시선을 취한다. 국토부 조사와 검찰 수사내용을 보면, 그는 조 전 부사장에게 매뉴얼을 제시하다가 폭행과 하기 지시를 받았다. '공적' 책임을 다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박 사무장에게 찌라시 작성자는 '사적' 잣대를 들이댄다.

해당 찌라시는 우선, 박 사무장을 "44세 남자 미혼"에 "집안이 좋다고" 규정한다. 그리고는 자기도취적인 행실 탓에 평판이 안 좋다며, 본론을 구성하고 있다.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아", "1타 2피'란 얘기가 나온다는 게 결론이다. 심지어, 지난 10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보도된 유사 찌라시에선 아예 성희롱 가해자로 묘사되기도 했다. '공적' 책임을 다한 모습엔 일언반구도 없이, 공사 구분을 못 하는 사무장으로 단언한 것이다.

이 찌라시는 언뜻 보면 양비론처럼 보인다. '때린 놈도 잘못이지만, 맞은 놈도 평소에 맞을 짓 했다'는 논리다. 하지만, 가해자의 공적 책임감은 부각하면서, 객관적 사실로 드러날 피해자의 그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되려 (허위사실이나 다름없는) 사적 구설수를 부각한다. 하지만, 이면엔 교묘한 기획이 숨어 있다. 찌라시의 수용자이자 매개체인 SNS 이용자에게,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정보를 각인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 "조현아가 승무원 복지를 늘렸다고?"

그럼 찌라시 내용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우선 박창진 사무장에 대해선,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의 사실 검증이 있었다. 박 사무장은 18년을 대한항공에 근무했다. 그는 2002년 9월 이달의 우수 청송 승무원이었다. 청송장 또한 여러 번 받았다. 동료 승무원은 그가 성희롱 등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고 밝혔다. 승진 누락도 없을 만큼 모범적인 직원으로 평가받고 있다. 기자가 그의 선배 직원을 취재한 결과도 이와 같았다. 대한항공 직원들의 익명 게시판에서도 이런 내용을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대한항공 찌라시 그
 
조 전 부사장에 대한 내용은 얼마나 사실일까? 찌라시에 적힌 대로 "승무원 위상과 복지 수준을 엄청나게 업그레이드 시켜놓은 측면"은 실체가 있는 걸까?

2010년 전무로 승진과 함께, 조현아 전 부사장은 기내식기판본부장에 취임했다. 조 전 사장은 당시, 사내 공청회를 열어가며 승무원 복지 향상 방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핵심 사업은 국제선 승무원들이 해외에서 체류하며 묵는 호텔에서 와이파이 이용료를 내지 않게 됐다는 거였다.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현직 승무원은 "회사 측이 와이파이 무료화 한 건을 대대적인 복지 확대로 선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승무원 처우는 나아진 게 없었다. 오히려 개악됐다고 승무원들은 입을 모았다. 대표적인 게 일상 업무인 기내 면세품 판매 과정에서 받는 인센티브를 '조건부'로 바꾼 거였다. 조 전 사장이 해당 임원으로 부임하기 이전, 대한항공 승무원은 기내 면세품 가격의 1.9%를 판매 인센티브로 받았다. 기내 서비스와 비행 안전 관리라는 본분 외에 면세품을 직접 판매하는 고충을 배려한 제도였다.

그러나, 조 전 사장은 이 제도를 실적이 좋을 때만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인센티브로 바꿨다. 사측이 매달 전체 기내 면세품 판매 목표치를 제시하고, 이걸 달성하지 못하면 모든 승무원에게 단 한 푼도 주지 않는 것이다. 면세품은 소비자가격의 50~60%를 대한항공이 가져간다. 여기서 단 1.9%, 승무원 몫으로 무조건 지급하던 돈을 '성과제'로 바꾼 것이다. 승무원들이 사측이 제시한 목표치를 달성 못 한 달엔, 이 1.9%가 전액 회사 수익에 보태졌다. 이런 개악은 조 전 사장의 본부장 취임 뒤 첫 '경영성과'였고,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승무원들은 조 전 부사장이 본부장이 된 후, 사내 복지가 더욱 줄었다고 말했다. 금액의 규모를 떠나, 기내 면세품 판매 과정에 발생하는 여러 상황에 이 인센티브는 일종의 충당금으로 사용돼왔다. 승무원들은 과거 인센티브로 냈을 돈을, 사비를 털어 충당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사기 저하는 물론, 실제 처우마저 지속적으로 나빠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른바 '1타 2피' 찌라시 작성자는 "승무원과 객실 관련 부서는 이번 사건으로 조 부사장이 물러날 경우 기존의 위상이 무너질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고 대한항공 사내 분위기를 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자는 이런 우려를 하는 승무원을 찾을 수 없었다.

이 기획된 양비론의 작성자는 누구일까? 해당 찌라시는 유포 1~2일 만에 당사자 귀에 들어갔을 만큼, 급속히 유포됐다. 피해자를 깎아내리고, 가해자의 업적을 지어낸 찌라시는 어떤 효과를 의도했을까? 땅콩 회항 사태 초기, 누군가 여론에 영향을 끼칠 목적으로 허위 사실을 작성하고 유포했다면, 이건 처벌이 필요한 범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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