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잊혀지지 않는게 있었습니다. 바로 그의 엄청난 근육질 몸이었습니다. 정말 대단했습니다. 속으로 "이야! 몸 진짜 좋네"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습니다.
● 어른 같은 소년을 만나다.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부산시 씨름협회 박상규 감독이었습니다.
"정말 특이한 아이가 하나 있는데...저번에 이 기자도 봤던 아이예요"
몸이 아주 좋았던, 외모로만 보면 어른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그가 알고보니 1991년생 초등학교 6학년이었습니다. 씨름을 시작한지 1년 8개월. 짧은 시간동안 전국대회를 휩쓰는 엄청난 아이라는 겁니다.
● 새터민 가정…그리고 분노조절 장애
그 아이의 이름은 이 신.
1998년 북한을 탈출한 어머니가 중국에서 숨어살며 낳았고, 나중에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북한으로 꺼져라" "김정은한테 돌아가라" "중국놈이 왜 왔냐" 중국어가 더 익숙했던 신이는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준다는 생각에 웃기만 했습니다. 나중에 신이가 한국어를 조금씩 배워가면서 그 의미를 알았을 때 어땠을까요?
신이는 충격으로 분노조절장애도 겪었습니다. 자기 감정을 조절하지 못했고, 폭력을 휘두르기도 했습니다.
● 씨름을 만나다…천하장사라는 그 이름.
아침 7시에 1시간 반 거리의 학교로 가 수업이 끝난 뒤 5시부터 훈련을 시작해 10시에 마치면 또 1시간 반 거리의 집으로 돌아옵니다. 자정이 다 된 시간이지만 신이는 씨름으로 성공하겠다는 일념으로 끊임없이 근육 운동을 했습니다. 매일 4-5시간만 자며 오로지 씨름만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년만에 만든 몸이 바로 이 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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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복근에 터질 듯한 이두박근. 엄청난 힘으로 신이는 전국 4개 대회에서 3개를 휩쓰는 어린이 씨름왕이 됐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신이에겐 목숨과도 같은 어머니를 위해서입니다.
어머니는 탈북한 뒤 숨어살던 중국에서 1000마리의 돼지를 혼자 사육하는 중노동을 하며 온몸이 만신창이가 됐습니다. 관절염에 허리 디스크에 제대로 걷지도 못해 누워있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한 달 몇 십만 원의 정부지원비가 생활비의 전부입니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신이는 하루도 쉴 수가 없습니다.
● "연아 누나처럼"
신이는 이만기 아저씨처럼 훌륭한 천하장사를 꿈꾸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허황된 얘기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씨름으로 스포츠 외교를 하는 게 최종 목표입니다. 피겨퀸으로 평창올림픽 유치에 힘썼던 연아 누나가 그래서 너무 좋답니다. 가장 이쁜 누나도 김연아 선수랍니다.
● 신이의 꿈을 응원합니다.
신이에게, 신이 어머니에게, 그리고 신이의 스승 박 감독님에게 받은 고맙다는 한 통의 전화는 1월 1일 새해 첫 날, 제가 받은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신이의 꿈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