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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쌍용차 리콜'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았던 이유

[취재파일] '쌍용차 리콜' 소식이 반갑지만은 않았던 이유
지난 3월 31일, 저는 렉스턴과 액티언 등 쌍용차 일부 차종에서 주행 중 바퀴가 빠지는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는 내용의 보도를 했습니다. (▶해당 기사 바로가기)

이런 사고들에는 차체와 바퀴를 연결하는 볼 조인트 부분이 빠지거나 부서지며 발생하는 공통점이 있었는데,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구조적 결함 가능성을 지적했습니다. 바퀴는 자동차의 핵심이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고로 직결되는 만큼 제조사와 정부의 적극적인 조치를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보도 이후 국토부는 차량 결함 가능성에 대해 조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8개월 후인 어제, 렉스턴과 액티언, 액티언 스포츠, 카이런 등 쌍용차 4개 차종에 대해 리콜 조치를 내렸습니다. 3월 보도에 나왔던 대로 볼 조인트 부분에서 결함이 발견됐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대상 차량은 112,920대. 쌍용차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리콜입니다.

최초로 차량 결함 가능성을 보도한 기자 입장에서 국토부의 이번 리콜 조치는 반가운 소식이어야 합니다. 조사 기간이 8개월이나 걸려 그 동안 추가적인 피해를 입은 분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제기한 의혹이 사실임을 확인받은 것이니까요.

보도 취지대로 문제점을 지적해 개선하고, 그 결과 운전자들의 안전을 담보할 수 있게 됐으니 보람을 느껴야 하는 게 정상입니다. 이런 보람 때문에 기자를 한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죠. 그런데 저는 쌍용차 리콜 소식을 듣고 걱정이 앞섰습니다. 쌍용차 해직 노동자들 때문입니다.

쌍용 농성_640

● "보도가 해직자 복직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습니다."

"저희는 판매대수가 많지 않아서 이런 보도 나가면 큰 타격을 입습니다. 그렇게 되면 해고자 복직 문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3월 말, 쌍용차 차량 결함 문제를 취재하고 있던 기자에게 쌍용차 관계자가 한 말입니다. 회사의 어려움을 강조하면서 보도를 유보해 달라는 부탁이었죠. 이런 식의 부탁은 비판적인 내용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항상 겪어왔던 일이었습니다. 그런 부탁 때문에 취재를 접은 적도 없었죠. 그런데 쌍용차 관계자의 말은 듣고는 흔들렸던 것이 사실입니다.

중학생이던 1997년, 저는 'IMF사태'로 불리는 외환위기를 경험했습니다. 10년 넘게 다녔던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정리해고 당하고, 그 여파로 한 가정이 붕괴되는 것을 주위에서 많이 지켜봤죠. 사춘기에 겪은 일이다 보니 어느 때보다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외환위기의 여파는 저희 집도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직장을 잃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뼛속 깊이 자각하는 계기였죠. 

이런 경험 때문에 쌍용차 관계자의 마지막 말이 더 신경 쓰이고, 또 걱정됐는지 모릅니다. 이보다 앞선 2월 7일, 서울고법이 쌍용차 해직자들에 대한 복직 결정을 내린 상태였기 때문에, '정말 회사가 해직자 복직을 준비하고 있구나.', '내 보도가 해고자 복직에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보도를 접는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죠.

결국 방송은 나갔습니다. 해직자 복직에 대한 걱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문제된 차량을 타는 운전자들의 안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제 보도가 해직자 복직에 부정적인 영행을 줄 수 있다고 얘기하던 쌍용차 사측은 서울고법 판결이 나온 당일 대법원에 항고했다는 걸 나중에 알게 됐습니다.

3월 제게 해직자 복직을 준비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지만, 해직자들을 복직시키겠다는 의사가 처음부터 없었던 거죠. 사실, 창사 이래 최대  매출실적을 달성한 지난해에도 해고자 복직은 한 번도 입에 올린 적 없는 쌍용차였습니다. 제가 너무 순진했던 거죠.

지난달 대법원은 해고는 정당했다며 쌍용차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해고자 복직을 인정한 2월 서울고법의 판결을 지지할 수 없으니 다시 판결하라고 파기환송한 겁니다. 이후 쌍용차 해직자 중 26번 째 사망자가 나왔습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2명의 노동자가 쌍용차 평택공장 안 굴뚝 위에 올라갔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사측은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리콜 조치는 '경영상의 어려움'이라는, 대화에 소극적일 수 있는 또 다른 핑계거리를 제공할 수도 있습니다. 차량 결함 가능성을 처음 보도했고, 그 가능성이 사실임을 확인해 준 리콜 조치였지만,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입니다.

쌍용차 티볼리


● 다른 것 같지만 닮은 땅콩 회항과 쌍용차 문제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소위 '땅콩 회항'이 화제입니다. 모든 언론이 해당 소식을 말 그대로 쏟아내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사람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재벌 자제면 이래도 되는 것이냐며 분노하고 있습니다. 반면, 26명이 죽고, 2명의 노동자가 굴뚝까지 올라갔지만, 쌍용차 소식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언론도, 그리고 시민들도 별로 관심을 갖지 않고 있죠.

그런데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2개의 사건. 사람들의 관심도 극과 극인 이 2개의 사건의 본질은 서로 닿아있는 것 같습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의 사건이 승무원을 하인 부리듯 해서 발생한 사건이라면, 쌍용차 문제는 사람을 비용으로 취급해 발생한 사건입니다.

결국, 사람을 사람으로 대접하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둘은 닮았습니다. 아니, 하루아침에 밥줄을 끊었다는 점에서 쌍용차 문제가 오히려 더 심각한 일인 것 같습니다. 쌍용차 문제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지는 않지만요.

쌍용차 문제는 이효리 씨의 트위터 내용이 알려지면서 다시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기자로서 안타깝고 부끄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효리를 통해 사람들이 다시 관심을 가지지 시작한 건 다행입니다.

다만, 관심이 관심으로만 그칠 때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건이 발생하고도 뻣뻣하던 대한항공이 결국 고개를 숙인 것은 사람들의 관심이 분노로 이어졌기 때문이죠. 이효리 씨가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를 입고 춤추는 모습을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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