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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삼성은 왜 저항하는가?

삼성의 저항…그리고 삼성의, 삼성을 위한, 삼성에 의한 좌초

[취재파일] 삼성은 왜 저항하는가?
- 12월 1일.

삼성그룹은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일부 금융계열사 사장도 포함됐다. 삼성그룹은 “사장단 인사를 내정, 발표했다”고 표현했다. 매년 12월 초, 이렇게 삼성’그룹’에서 사장단 ‘내정’을 발표하는 게 관례다. 당연시되는 이런 관례는 그런데 옳은가?

- 상법 389조.

‘회사는 이사회의 결의로 회사를 대표할 이사를 선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정관으로 주주총회에서 이를 선정할 것을 정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대표이사 선임 권한은 이사회와 주총에 있다는 뜻. 그런데 삼성’그룹’이 사장단 인사를 발표하기 전, 각 계열사들이 대표이사를 선임하기 위해 이사회나 주총을 열었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비정상이 당연시되는 기현상이다.

- 조직적 대응.

취재하러 다니다 삼성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을 몇 차례 만났다. 과거부터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뜬금없이, 아니 느닷없이 금융위원회가 마련 중인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규준’에 대한 문제점을 화제로 꺼냈다. 아니, 집중적으로 성토했다는 표현이 옳겠다. 이 정도면 감으로 알 수 있다. ‘아~ 삼성이 조직적으로 나섰구나’

- 포화.

외견상으로는 재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이 총대를 멨다. 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모범규준’을 성토하는 토론회까지 열었다. 이미 신문 지면은 ‘물정 모르고 법도 제대로 모르는 금융위원회’에 대한 성토 일색이다. ‘충분한 수’의 사외이사를 포함한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상시 가동해서 CEO와 임원을 추천받도록 한 조항(모범규준 제14조)가 단연 화살받이가 됐다. ‘주주권리의 침해. 反 자본주의적 정책’이라는 비판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주인없는 은행은 ‘모범규준’이 필요할 지 몰라도, 확실한 오너가 있는 2금융권까지 임추위를 설치하라는 것은 책임경영을 어렵게 하고, 경영환경 변화에 따른 탄력적인 대응도 힘들게 한다는 논리도 폈다.

- 의문.

그런데 왜 이게 주주권리의 침해인지 의문이었다. 다수의 주주가 있는 주식회사는 이사회에 주주들이 권한을 위임한다. 주주들의 ‘대리인’으로서 이사회가 임원후보를 추천받는데 왜 주주권리를 침해하는 것인가? 혹자는 지배주주의 권리를 침해한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불과 20~30%(그 이하도 많다)의 지분을 가진 지배주주가 나머지 70~80% 주주의 의사도 묻지 않고, 삼성처럼, CEO를 ‘내정’하는 게 주주권리의 존중인가? 이런 게 자본주의의 원리인가.

- 승리와 패배.

금융위원회는 ‘모범규준’의 입법예고 기간을 2주 연기했다. 그리고 제2금융권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 의무 설치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모범규준’을 후퇴시킬 태세다. 금융당국은 1차 전투에서 패배했고, 삼성은 승리했다.

- 해소된 갈증.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라는 곳이 있다. 이 곳에서 15일 하나의 보고서가 나왔다. 결론이 명쾌하고 주옥 같아서 그대로 요약해 본다.

“CEO 선임과 승계는 결국 이사회, 또는 이사회가 책임을 위임한 위원회의 고유한 책임이다. 이는 소유구조 또는 최대주주 존재 여부와 무관하다. 미국의 상장사들은 CEO 승계를 흔히 담당하는 지명위원회나 보상위원회를 100% 독립이사로 구성한다. 따라서 임추위에 사외이사가 다수 포함되는데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 CEO 후보를 향해 직접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국내 최대주주는 이미 충분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최대주주의 CEO 추천권 자체가 해외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임추위가 이를 제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주주권리 침해라는 주장은 가당치 않다는 뜻이겠다.
 
“독일의 대형 금융회사들은 노동자 대표가 1/2이나 포함된 감독이사회에서 CEO를 선임한다. 국내에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규정이다. 이 정도인데 CEO 후보를 임추위에서 추천하도록 한 정도의 조치를 反 자본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지나치다” ‘反 자본주의’라는 주장을 대놓고 반박하고 있다.

“최대주주가 있든 없든, CEO 리스크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런 위험의 발생은 상장 여부나 업권도 불문한다. 또 금융회사에는 주식과 회사채, 펀드 투자자, 보험계약자 등 여러 이해관계자가 있다. 더구나 국내 금융회사는 산업자본과 얽혀 있어(삼성이 대표적이다) 이해상충 가능성이 높다. 기업집단의 소유구조에서 최대주주와 그 일가의 직접 지분율이 낮은 점도 문제다… 이런 점을 종합하면 임추위 구성과 경영 승계규정 마련 조항을 일정 규모 이상의 금융회사 전체에 확대, 적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2금융권은 빼 달라는 논리가 궁색하다는 뜻이겠다.

“임추위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이 있다. 그런데 상법이 임의기구 설치를 허용한데다 이미 많은 국내 금융회사가 임의기구인 보상위원회와 위험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운영 중임을 고려할 때 설득력이 약하다” 법적 근거 운운하지 말라는 뜻이겠다.

- 취지.

‘모범규준’의 기본적인 취지는 이렇다. 금융은 금융 전문가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한 회사의 문제가 경제 전체의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수 있는 금융회사의 특성에 맞게 말이다. 오너가 측근에게 전리품 주듯 금융회사 CEO 자리를 안기는 일을 막자는 것이다.
삼성 연합

- 금융의 삼성전자?

최근 이런 얘기들이 자주 회자됐다. 왜 금융 부문에서는 제조업의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나오지 못하나? 관련해서 지인의 이런 말이 기억에 남는다. “삼성그룹 금융계열사 임원들은 회사에 불리하거나 오너가 편치 않아 할 법과 규정을 막고, 유리한 쪽으로 이끄는 데 사력을 다한다. 주로 그런 쪽에 관심과, 에너지를 쏟는다. 그러니 금융의 삼성전자가 나올 수 있겠나?” 조직적 대응으로 삼성이 이번 작은 전투에서 이겼을 지 모른다. 하지만 금융의 삼성전자는 더 멀어지고 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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